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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감나무의 비밀

[미스터리 추리소설] 우리 집에 왜 왔니?

by 해달

그 뒤로 할머니는 내게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감나무 근처에만 얼씬도 못하게 하셨을 뿐.


세월이 흘러 어머니는 자식이라곤 하나뿐인 내게 그 감나무를 물려주셨다. 물론 내게도 이유를 말씀하진 않으셨다. 그러나 나는 당시 어머니가 일부러 함구하셨음을 알고 있었다.


감나무를 물려주시며 어머니는 내게 한 가지 원칙을 강조하셨다. 그것은 나무 앞에서 절대 피를 내지 말라는 당부였다. 당시 어머니는 ‘절대’라는 단어를 백 번쯤은 언급하셨다. 물론 나에게만 해당된 금기였다.


한 번씩 잉어가 죽어나가는 통에 아침부터 눈물을 훔치는 정희에게 내가 침묵한 이유이기도 했다. 오승욱 말대로 정말 잉어들의 죽음이 감나무 때문이라면 일이 커질 게 뻔하니까.


유산이 된 감나무의 비밀은 어머니의 귓속 당부였고 나는 앞으로도 그 약속들을 지킬 작정이었다.




“감나무를 왜 곁에 두라 하셨는지 이유라도 말씀해 주고 가셨더라면…….”




나무를 보고 있노라니 새삼 어머니가 떠올랐다.


27년 전 스산한 찬바람이 돌던 12월 어느 날, 어머니는 청악산에서 홀연히 사라지셨다.


이우준 모친보다 청악산 작두무당 이을녀로 더 유명했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내게 남겨주신 유산은 두 가지였다.


신통방통한 점괘와 아슬아슬한 작두 굿판으로 사들인 곡물을 잔뜩 쌓아놓은 곡간과 바로 이 감나무. 하여 당분간 먹고사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다만 큰방에 차려놓은 신당(神堂)과 즐비한 무녀복만이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


그러나 당시만 해도 나는 기독교인인 아내와 갓 태어난 손녀를 위해 어머니가 스스로 사라지신 거라 생각했었다.




“마 뒷방서는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믄서도 바깥서는 손가락질이나 해대는 연놈들 중에 지 새끼 무당집에 뼈를 묻으라며 그 집 귀신 돼라 보내는 것들 하나 읍따. 그라이께, 니는 한 눈 팔지 말고 평-생 정희에게 잘해야 한다. 알긋나?!”




결혼식 전, 귀가 따갑도록 어머니가 내게 하신 말씀이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정희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 청혼을 받아들인 여자였다.


경상북도 문경읍 소평리 이을녀하면 안팎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기센 작두무당의 아들놈 청혼을…….


내가 첫눈에 반한 정희는 성품이 고왔고 심성이 따뜻했다. 그러나 내 손을 잡는 대가로 그녀는 친정과의 연을 끊어야 했다.


물론 나와 어머니를 전도하겠다는 아내의 굳은 의지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간절한 노력과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수의 말씀은 결국 나라는 인간의 완악한 고집을 꺾지 못했으니까…….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 건 신의 실수였다.


하나 이것 말고도 어머니가 스스로 사라지셨다고 생각하는 데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어머니 나이 19살, 마을에서 가장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던 최 씨네 막내아들 최서평과 정분이 난 어머니는 어느 날 최서평 부모에게 그 사실을 들켰다고 했다. 이에 화가 난 최서평의 모친은 어머니를 멍석에 돌돌 말아 사정없이 매질을 하고는 산기슭에 버렸다고 했다.


이후 최서평은 다른 마을 부잣집 처자와 혼례를 올렸고 심한 매질 탓에 어머니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뚝이는 반병신이 되었다고 내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때 지켜낸 뱃속 아이가 바로 나라고 하셨다.


그렇게 무당이라는 이유로 천대받았던 어머니로서는 혹 내 앞날에 당신이 걸림돌이 될까, 연을 끊기로 작정하신 게 분명했다. 물론 추측에 기반한 근거이긴 했으나 나는 어느 정도 확신이 서있었다.


어머니가 실종된 이후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던 한낱 무명 글쟁이에게 곡간 속 곡물은 잿빛 하늘에 한줄기 빛과 같았다.


당장 수입이 없어도 아내와 딸을 굶기지는 않았으니까. 게다가 시간에 쫓길 일도 없었다. 결과론적이지만 결국 이렇게 성공했으니 쓰라린 과거도 아니었다.


다만 기별 하나 없이 사라진 어머니가 가끔은 섭섭했다. 그나마 어머니가 물려주신 감나무를 위안 삼아 이해하려 했을 뿐.


비록 생사는 알 수 없으나 늘 그래왔듯 어머니를 대신해 이 감나무가 내 앞길을 열어줄 거라 나는 굳게 믿어왔었다.


내 앞에 오승욱이란 놈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주양현…… 음지 깊숙이 묻어뒀던 그 이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 인생 일부에 그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단지 감나무에 매달린 원귀만 보았더라면 나는 오승욱을 의심하지 않았을 터였다.


내 어미 시중을 들던 스무 살 순이도 귀신을 봤었으니까. 목회자 눈에 원귀가 보인들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리 두려운 얼굴을 하고 계십니까?”라며 호기롭게 입을 뗀 놈의 얼굴에서 나는 분명히 보았다.


덕지덕지 기름때가 묻은 얼굴로 천연덕스럽게 웃어 보이던 주양현을…….


독기 품은 눈에 심술 난 볼을 내밀고 밤거리를 배회하던 내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뭣 때문에 그렇게 두려운 얼굴을 하고 있어?”




갓 배운 담배 연기를 잘못 삼켜 연신 콜록거리던 내게 다가와 건넨 첫마디. 같은 반이기는 했으나 말을 섞어본 적 없는 주양현이었다.


방과 후 녀석은 카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물론 친구가 되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기름때 묻은 앳된 녀석의 얼굴보다 잔뜩 화가 난 내 얼굴에서 두려움을 읽어낸 통찰력에 깜짝 놀랐었다.


며칠 전, 호랑이 발톱을 세운 나에게서 두려움을 읽어낸 오승욱처럼.


두려움. 그것은 이제껏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나의 내면이었다. 심지어 30년을 함께 한 정희조차 내게 두려움이 뭔지 모르는 사람 같다고 했었다.


그런데 18살의 주양현도 그리고 35살의 오승욱도 단번에 날 꿰뚫어 봤다. 하필 똑같은 얼굴을 하고서는.




“30년이라…… 뭔가 올 때가 되긴 했지.”




놀랍도록 순탄하기만 했던 지난 30년의 세월에 나는 지금의 고비가 어쩌면 그 대가가 아닐까도 싶었다. 고로 이 기괴한 시기만 잘 넘기면 죽는 날까지 무탈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잉어 사체를 봉투에 담은 나는 미련 없이 음식물쓰레기통에 내다 버린 후 툭툭 손을 털었다.


30년 전, 눈앞에서 주양현이 죽는 것을 똑똑히 본 나였다. 그 의미인 즉, 망자가 아니고서야 놈은 절대 살아있을 수 없다는 거였다.


물론 당장이라도 오승욱을 찾아가 정체를 확인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리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사랑에 빠진 내 딸, 유림이가 있으니까. 이제 겨우 빗장을 연 내 딸을 또다시 동굴 속에 가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과거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내게 늪에 빠질수록 침착하라 말씀하셨다. 세상은 지랄 같으니 보이는 것만 믿는 어리석은 편견도 갖지 말라 하셨다.




“일단, 저 감나무에 진짜 원귀가 매달려 있는지 확인해 보면 알겠지.”




신당이 있던 고향집이었으니 감나무에 잡귀 몇 마리쯤 붙어 온들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쫓아버리면 그만이니까.


사실 그간 나 또한 의심을 품지 않은 건 아니었다. 저 오래된 감나무에 새둥지는커녕, 참새 한 마리 쉬어가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그러나 분명한 건 나의 적은 이 감나무가 아니라 잡귀를 보는 예수쟁이라는 거였다.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혹 그런 능력으로 내 과거를 술술 읊어댈지도 모를 일이니.


하나 이제껏 그래왔듯 분명 이 기이한 시간도 바람처럼 지나갈 거라 나는 믿기로 했다.


다만, 필요하다면…… 정말 필요하다면…….



나는 홀연히 사라진 내 어머니를 찾아 나설 거다.





***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남자의 말에 깜짝 놀란 내가 물었다.


한참이나 감나무를 살피던, 나와 연배가 비슷한 박수(博數:남자) 무당 유학수였다.


일찍 화실에 간 유림이와 점심약속이 있는 정희로 집이 빈 수요일, 나는 서둘러 용한 무속인을 불러들였다. 듣기로는 한때 승려였다고 했다. 귀신을 잘 본다 하여 특별히 웃돈을 얹은 약속이었다. 정희가 알기 전 일을 끝내야 했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무속인은 체크무늬가 들어간 갈색정장에 깔끔하게 빗어 넘긴 올백머리, 턱을 덮어버린 수염에 검은색 서류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누가 봐도 무속인 같아 보이지 않는 이 박수무당의 예사롭지 않은 한마디에 놀란 내가 되물은 거였다.




“조상 가운데 기운이 강한 무당이 있었을 거라 했습니다. 맞지요?”




굼벵이 같은 그의 두툼한 입술에는 자신감이 차 있었다. 짙은 숯검댕이 눈썹에 두꺼운 쌍꺼풀, 부리부리한 눈동자가 부담스럽게 강한 인상이었다. 만약 점사가 틀렸다면 나는 당장 그를 내쫓았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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