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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박수무당 유학수

[미스터리 추리소설] 우리 집에 왜 왔니?

by 해달

“이 감나무만으로 그게 보이십니까?”

“감나무의 강한 기운이 선생님의 운을 다스리고 있는데, 모를 수가 없지요.”

“제 운을 다스리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살짝 흥분한 내 음성이 감나무 사이로 울려 퍼졌다. 순간 바람 한 점 없는 구름 낀 하늘 아래 약하게 가지가 흔들렸다.


결정적인 순간 내 앞길을 열어주셨던 어머니를 대신해 나는 막연히 이 감나무가 그 역할을 해줄 거라 믿어왔었다. 그런데 무속인의 한마디가 막연했던 내 믿음에 힘을 실었다.




“하늘의 눈과 귀를 가리셨으니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누구든 사익을 편취하면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지요.”

“사익은 무엇이고, 대가는 또 무엇입니까?

“선생님 조상님께 직접 여쭤보심이 더 빠르실 겁니다. 그보다, 저를 부르신 연유가 무엇입니까?”




엉뚱한 말만 늘어놓더니 이제와 할 일을 묻는 무속인이었다. 소문대로 정말 용한지 두고 봐야 했기에 감나무를 살펴달라는 귀띔만 해둔 상태였다.




“이 감나무에 잡귀가 매달려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누가 그것을 알아보셨습니까?”

“…….”

“예. 사실입니다. 정확히는 원귀지요.”



「원귀(冤鬼) : 원통하게 죽어 한을 품고 있는 혼」




미약한 현기증에 나는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오승욱 말은 사실이었다. 하나 귀신이 귀신을 알아보는 법이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딱히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잡귀는 멀리 쫓아버리면 그만이었다.




“어떻게 생긴 원귀입니까?”

“아, 그것이…….”




가만히 수염을 어루만지던 무속인 유학수가 내키지 않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하나같이 모가지가 잘려 가지에 매달린 원귀들이라 얼굴은 볼 수 없으나 누더기 한복을 걸친 남녀 무리입니다. 너 댓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도 둘 있지요.”

“……뭐라고요?”




순간 깜짝 놀란 내가 감나무 곁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저 고향집에 머물던 잡귀 한두 마리가 나무에 옮겨 붙어 왔을 거라는 내 예상을 완전히 비껴간 대답이었다.


이 사실을 어머니가 모르셨을 리 없었다. 한 번씩 그리웠던 어머니에게 뜻 모를 배신감이 느껴졌다.




“하나 너무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이 원귀들은 아무런 힘이 없으니까요.”

“이유가, 뭡니까?”

“감나무의 기운을 원귀들이 대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표정변화 없이 차분한 유학수와 달리 나는 미간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알고 있는 자와 알고자 하는 자의 극명한 차이였다. 그러나 말을 아끼는 것인지 아니면 안 하는 것인지, 제법 입이 무거운 무당이었다.




“감나무에 매달린 원귀들을 쫓아주시오. 다신 내 집에 얼씬도 못하게 말입니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

“분명 귀신을 보고 쫓을 수 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약속이 틀리면 곤란합니다.”




나는 불쾌한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정희가 오기 전 일사천리로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이미 약속된 일이었다. 그런데 주섬주섬 가방을 챙긴 유학수가 풀었던 양복 단추를 채웠다.




“나무의 기운이 강해 제가 가진 능력으로는 원귀를 쫓을 수 없습니다. 자칫, 저마저 모가지가 잘려나갈 수 있으니까요.”

“모……뭐요?”

“그간 업을 쌓으셨으니 선생님 명이 다하실 때까지 이 감나무를 옆에 두십시오. 간혹 죽어나가는 잉어들도 그저 그러려니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뒤돌아 나가려는 유학수 앞을 내가 가로막았다. 웬만한 잡귀는 손쉽게 제압하는 무당이라 했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터였다.




“천도굿이라도 해주고 가십시오. 이렇게 가시면 제 마음이 불편합니다.”

“굿은 필요 없습니다. 출장비도 받지 않겠습니다. 다만, 선생님께서 정 불편하시다면 한 말씀드리고 가지요.”



「천도굿(薦度굿) : 죽은 사람의 넋을 극락으로 보내는 굿」




나를 향한 무속인의 눈빛은 측은하지 않았다. 되레 거리를 두는 양 그는 담장 너머 날아가는 새를 뜬금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누군가 나무에 매달린 원귀를 알아봤다 하셨지요? 그 자를 더 이상 집에 들이지 마십시오. 선생님께 큰 화가 있을 겁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감나무가 그 자를 매우 경계합니다. 또한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선생님도 피를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순간 나는 무속인 유학수의 팔을 붙잡았다. 이 자라면 오승욱의 실체를 알 거라는 확신이었다.




“내 딸의 남자친구가 이 감나무 속 원귀를 알아봤네. 과거 요절한 친구도 부쩍 꿈에 보이고 말이야. 요즘 내게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단 말일세.”




그의 팔을 움켜쥔 내 손이 약하게 떨리는 가운데 유학수가 침착하게 내 손을 내렸다.




“혹, 모친께서 살아계십니까?”

“오래전 홀연히 사라지셨네.”




모친이 실종됐다는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학수가 다시 입을 뗐다.




“저는 감나무를 통해 이 댁에서 일어난 과거의 일부를 보았을 뿐이니 비밀이 새어나갈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 저는 선생님 앞날도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정 궁금하시다면 모친을 찾아보시지요.”




다시 돌아서는 유학수 앞을 급히 내가 가로막았다.




“자네의 그 말은, 내 어머니가 살아계신단 말인가?

“그야 저도 알 수 없지요. 하나 망자가 된 오랜 벗도 나타나는 마당에 사라진 모친의 생사를 누가 알겠습니까? 살아계실지…….”




아는 듯 모르는 듯 묘한 말을 건넨 유학수가 짧은 목례 후 나를 지나쳤다. 성큼성큼 걷는 모양새가 다신 이 집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속내였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내 딸을 위해서라도 원귀를 알아본 놈의 정체를 알려주면 안 되겠나?”

“…….”

“망자요? 아니면, 사람이요?”




손만 뻗으면 대문 손잡이가 닿는 거리였다. 그 앞에서 유학수의 발걸음이 멈췄다.




“따님이 아니라 선생님을 위해서겠지요.”

“……뭐요?”

“망자이든 사람이든 선생님 삶에 위협이 될 테니까요. 과거 선생님은 비겁하셨잖습니까.”




수염 위로 묘한 웃음을 흘리는 유학수에 나는 참았던 화가 폭발했다.




“뭐라고? 흔한 잡귀 하나 쫓을 능력도 없는 주제에 네까짓 게 무슨 무당이라고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느냐?! 당장 썩 꺼지 거라!”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공존할 수 없는 법이죠. 곧, 모든 순리가 제자리를 찾아줄 것입니다.”




쾅! 툭.



유학수가 사라진 대문 뒤로 나는 뒤늦게 힘껏 돌멩이를 던졌다. 원귀보다 끔찍한 악담이었다.




“내 어미도 내다보지 못한 내 앞날을 잡귀 하나 쫓지 못하는 네깟 놈이, 감히?!”




급기야 분을 참지 못한 내가 바가지에 잔뜩 소금을 퍼 나와 활짝 대문을 연 찰나였다.




“당신, 이게 다 뭐야?”




굵은소금이 담긴 바가지를 든 나와 마주친 정희가 깜짝 놀라 물었다. 한 움큼 손에 쥔 소금 뭉치를 하마터면 정희 얼굴에 뿌릴 뻔한 순간이었다.




“아, 아니…… 그게 말이야. 그러니까…… 아! 땡중!”

“땡중?”

“아 글쎄, 느닷없이 땡중이 찾아와서는 다짜고짜 시주를 하라잖아.”

“그럼 형편껏 시주하고 보내면 되지, 웬 소금이야?”

“아 그게…… 자꾸 돈을 더 달라는 바람에 쫓아냈더니 한바탕 욕을 쏟아붓더라고. 해서 재수 없다 싶어 밖에 소금이나 뿌리려고 했지.”




내 말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 정희가 냉큼 소금바가지를 빼앗고는 황급히 나를 대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당신, 정말 이러기야?”

“내가 뭘?”

“신앙은 없어도 선행은 베풀며 살겠다고 했잖아. 곧 목사 사위도 들어오는데 어쩌려고 그래?”

“목사 사위라니? 누구 맘대로! 오승욱 그 자식이 그래?!”




흥분한 내가 그만 정희 앞에서 소리를 높였다. 결혼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아니 일단, 소리쳐서 미안해.”

“당신이 오 군 좋아하지 않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그게 아니고, 유림이 연애한 지 얼마 안 됐잖아. 아직 오승욱이 어떤 인간인지도 모르고.”

“우선 들어가. 들어가서 얘기해.”




난생처음 흥분한 내가 충격이었는지 정희가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섰다.




“미안해. 근데 난 오승욱 때문에 당신과 다투고 싶지 않아.”




아내를 따라 주방까지 들어간 나는 변명에 여념이 없었다. 정희와 멀어지는 건 누군가가 가장 바라는 바일 테니.




“알았으니까, 식탁에 앉아있어 봐.”

“어? 어.”




뚝딱뚝딱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던 정희가 곧 식탁 위에 다도세트를 내려놓았다. 하얀 접시 위, 어제 그녀가 만든 미니약과와 함께.




“우롱차야. 천천히 마시면서 속 가라앉히라고.”

“어, 고마워. 그리고 아까는 정말…….”

“나 아무렇지도 않아.”




말끝에 정희가 웃었다. 순간 우롱 잎보다 진하게 우러난 평안이 내 속을 가라앉혔다.




“근데 오늘 좀 이상한 날이네.”

“왜, 밖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까 동네 들어서는데 웬 정장을 입은 당신 또래 남자가 날 보더니 갑자기 합장을 하면서 모든 만물은 결국 제자리를 찾는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러는 거 있지.”

“…….”




나는 그놈이 누구인지 정희에게 묻지 않았다.


보나 마나 내가 집으로 불러들였던 무속인 유학수일 터였다. 용케도 아내를 알아본 거였다.




“근데 눈빛이 마치 나를 잘 아는 사람처럼 쳐다보는 게, 소름 돋아서 뒤도 안 돌아보고 왔다니까. 거기다 요즘 시주하러 다니는 땡중이 어디 있어. 아무래도 오늘은 낯선 사람 조심해야겠어.”




그 사이 은은하게 우러난 우롱차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정희가 내 앞에 놓인 찻잔에 천천히 차를 따랐다.


나는 말없이 찻잔을 기울였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혀를 감싸는 쌉싸름하고 구수한 맛 뒤로 약하게 단맛이 느껴졌다.


문득 지난 57년을 돌아보니 내 인생이 딱 그러했다. 늘 쓰기만 했던 청춘이 숭늉 같이 구수하게 우러나더니 은은한 단내의 노후를 맞이하게 했다.


때마침 얼굴을 스치는 바람에 고개를 돌리니 열린 거실 창 너머로 멀리 감나무가 보였다.


몰랐다면 모를까, 나무에 매달린 원귀들과 한 집살이를 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무속인은 오승욱을 절대 집에 들이지 말라 했다. 즉, 이 모든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오승욱으로 인해 내게 큰 화가 있을 것이다…….’




이쯤 되니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왔다.


어머니.


이 모든 일의 내막을 전부 알고 계실, 동시에 해결의 열쇠까지 쥐고 계실 어머니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내 과거가 돌아왔으니 어머니도 돌아오실 때가 됐다.


진실이 뭐든 이 모든 분란의 원흉은 주양현, 그놈 때문이니까.




“주양현…….”

“음? 주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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