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추리소설] 우리 집에 왜 왔니?
“어서 와요.”
아내가 말했다. 아내는 함박웃음이 만개했고 딸 유림이의 양 볼에는 복숭아 빛 홍조가 발그레하게 피어올랐다.
그러나 나는 웃지 못했다. 아니,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너… 너, 네가 어떻게…….”
성대가 마비된 채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건 정말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이 좋은 분위기를 망칠 뻔했으니.
세상 하나뿐인 귀하디귀한 내 딸 유림이가 데려온 남자, 감히 내 보금자리에 발을 들인 그는 30년 전 죽은 내 친구였다.
‘주양현, 네가 어떻게 여길…….’
사방이 어지러웠다. 온몸의 피가 딱딱하게 굳어 모든 장기가 멈춘 것만 같았다. 숨통도 조여 왔다. 마치 누군가의 손이 서서히 내 목을 조르는 듯했다.
행여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도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납득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과거 내 앞길에 돌부리를 치워주셨던 어머니도 오늘을 예견하지 않으셨다.
주양현…….
결코 반갑지 않은 얼굴이었다. 단 한 번도 그가 살아있기를 바란 적 없었다.
오늘의 수상으로 나의 커리어는 정점을 찍었고 작가로서의 내 위상은 거대해졌다. 뜸했던 문학계 관계자들과 F학점에 나를 평가절하하던 학생들도 축하전화와 메시지를 보내왔다. 모두에게 인정받고자 했던 나의 목마름이 가득 채워진 거였다.
그런데 내 인생 최고의 날, 놈이 나타났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엎어버릴 수 있는…… 절대 존재해서는 안 될 과거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승욱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귀국 날 피곤할 텐데, 이렇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아닙니다. 좋은 날 오히려 제가 폐를 끼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폐는 무슨, 우리 아빠 축하받는 거 되게 좋아해. 그치 아빠?”
“…….”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중이었다.
버선발로 뛰어나간 정희는 이미 오승욱이 마음에 찬 듯했다. 거기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야무진 눈빛으로 놈의 팔짱을 낀 유림이었다.
뭐라도 말을 해야 했다. 그런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깨질 듯 머리가 아파왔다. 머리 위에 둥지를 튼 새들이 사정없이 부리를 쪼아대는 두통이었다. 제어할 수 없는 오한에 심박수마저 박자를 잃어버리는 중이었다.
“아빠!”
“당신, 왜 그래?”
“…….”
“당신, 얼굴이 창백해. 어디 안 좋은 거야?”
그제야 놈에게서 떨어진 정희가 곁으로 다가왔다. 걱정이 됐는지 딸 유림이도 내 손을 잡았다.
작가답게 각종 미사여구로 환영인사를 기다렸던 기대가 곧 우려로 바뀐 순간이었다.
“아빠! 아빠 괜찮아?”
“안색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119 부를까요?”
저만치서 나를 살피는가 싶더니 오승욱이 한 발짝 다가왔다. 순간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아니야 오빠. 내가 전화할 게.”
“…아, 아니 유림아. 아빠 괜찮아.”
입이 떨어지기까지 10년은 걸린 듯했다. 당황한 손으로 어깨에 걸친 미니 크로스백에서 폰을 꺼내든 딸을 본 직후였다.
“당신 정말 괜찮은 거야?”
“아빠 얼굴 이렇게 창백한 거 처음 봐. 병원에 가자. 응?”
“아하하. 오랜만에 대중 앞에서 큰 상을 탔더니 이제야 실감이 나는지 긴장이 확 풀렸네. 아빠 정말 괜찮으니까 걱정 마.”
상황을 반전시킬 때 웃음만 한 건 없었다. 30년 만에 나타난 친구 앞에서 내가 호기롭게 웃어 보인 이유였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케케묵은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떠오르는 것조차 내게는 극한 고통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망자인지 사람인지 모를 저놈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 숨통을 조일 망령인지… 아니면 한 계절 지나가는 바람인지…… 놈의 정체를 알아내야 했다.
“어휴 놀래라. 당신 오늘 나 여러 번 놀래 킨 거 알아?”
“오늘만 이해해 줘. 당신도 알잖아. 나 오늘 많이 긴장했던 거.”
가슴을 쓸어내리는 정희에 나는 호탕한 웃음으로 그녀를 안심시켰다.
“혈색은 돌아온 것 같긴 한데, 아빠 정말 괜찮은 거지?”
“그럼. 네 엄마와 너 두고 아빠 어디 안 가. 약속하마.”
이방인답게 현관입구에 혼자 뻘쭘히 서있는 오승욱을 응시하며 나는 딸과 약속했다. 내 시선을 피하는 모양새가 역시 관찰이 필요한 대상이었다.
“아, 내 정신 좀 봐. 오승욱 씨라고 했죠?! 어서 들어와요.”
나의 아량으로 내 집에 널 들이겠다는 승낙에 안도했는지 그가 웃었다.
특별히 악의는 없어 보였다. 30년이 흐른 탓인지 날 알아보지도 못하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믿지 않기로 했다.
주양현이 죽던 그날, 그를 유인한 나 또한 철저히 악의를 감췄으니까.
정원이 훤히 내다보이는 거실 창가를 등지고 1인용 가죽소파에 내가 앉자 오승욱 팔을 잡아 끈 유림이가 옆에 놓인 3인용 소파에 그를 앉혔다. 물론 유림이도 함께 앉았다.
그사이 정희가 차와 함께 준비해 놓은 과일을 내왔다. 도와주겠다는 나를 눈치를 줘가며 거실에 앉힌 아내였다.
“노생차라고, 일종의 보이차인데 입에 맞을지 모르겠어요. 시원한 음료를 준비할 걸 그랬나?”
“아닙니다. 저 우린 차 굉장히 좋아합니다.”
“혹시 과일 알러지는 없나요? 복숭아나 키위라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래 엄마. 엄마가 편하게 대해야 오빠도 편하지.”
“그래도 초면인데 그럼 안 되지. 너도 집에서 하듯 말 함부로 하지 말고.”
“에이, 오빠 앞에서 잔소리가 뭐야. 칭찬만 해도 부족할 판에. 치!”
“어머! 엄마가 실수했네. 미안. 오호호호!”
‘두 모녀가 아주 신나서 어쩔 줄을 모르네.’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봤다. 콧소리를 내며 웃는 정희가 낯설었다. 불과 몇 시간 전 내 시상식 때도 저렇게 좋아하진 않았지 싶었다. 질투심이 올라왔다.
그런데 때마침 오승욱이 내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 오늘 수상하신 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빠 나도 축하해! 참! 아까 수국꽃다발, 그거 오빠가 사 온 거야.”
“아, 그래? 고마워요.”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건넨 나는 그제야 놈의 얼굴을 찬찬히 훑기 시작했다.
정말, 날 모르는 걸까……?
새치가 뒤섞인 머리와 품위 있게 자리 잡은 주름들, 전에 없던 두꺼운 뿔테 안경에 왼쪽 눈가 끝 작은 흉터를 알아보지 못한 걸 수도 있었다. 자그마치 3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그런데 고스란히 세월이 녹아든 나와 달리, 저놈은 고스란히 세월을 비껴갔다.
윤기가 도는 오대오 가르마의 검은 머릿결.
탄력 넘치는 그을린 피부.
선하게 내려앉은 눈매 속, 용맹한 눈빛.
여전히 훤칠한 키에 탄탄한 어깨까지…….
머리스타일과 분위기가 달라지긴 했으나 영락없는 내 친구, 주양현이었다.
그 와중에 계절을 앞선 복장이 유독 눈에 띄었다. 반팔, 반바지가 심심치 않게 보이는 9월 날씨에도 오승욱은 목을 감싼 미색의 터틀넥에 남색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기껏해야 발목이 보이는 면바지와 함께.
창문을 열어놓긴 했지만 어쩌다 길을 잃은 바람이 반가운, 여름의 끝자락과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였다.
“다음에는 오빠랑 내가 직접 꽃다발 들고 갈 거니까 아빠 다음에 또 상 타줘. 알았지?!”
“상 타는 게 무슨 교내백일장인 줄 알아?! 이 녀석이 손님 앞에서 아주 아빠를 들었다 놨다 하네.”
“유림이가 비행기에서 내내 아쉬워했거든요. 시상식에 꼭 가고 싶었는데 너무 속상하다고요.”
“그래? 그럼 진작 그렇게 얘길 하지.”
입을 삐죽거리는 딸에게 나는 세상 다정한 미소를 보냈다. 그러나 나의 시선은 곧 오승욱에게 향했다. 물론 입가의 미소는 사라진 직후였다.
“그건 그렇고, 올해 자네 나이가 어떻게 되지?”
정희와 달리 나는 곧장 말을 놓았다. 초면에 무례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질 목적이었다. 얼굴은 분명 내가 아는 그 주양현이었다. 그러나 뼛속까지 그놈일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서른다섯 살입니다.”
“서른다섯이라…… 가족은? 형제 관계는 어떻게 되나?”
“돌아가신 부모님과 저뿐입니다.”
“…….”
별안간 숙연해진 공기에 일순간 정적이 일었다.
안쓰러웠는지 그를 바라보는 정희 눈빛이 촉촉했다. 가만히 그의 손을 잡아주는 딸 유림이도 어른스러웠다. 그가 정말 35살의 오승욱이 확실하다면 나 또한 그리했을 터였다.
그러나 난 아니었다. 인간 오승욱을 증명할 가족이 없다는 건 최악의 배경이었다.
그런 와중에 곧,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놈이 날 흔들었다.
“사실 저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양자입니다.”
“양자? 그럼, 입양아란 말인가?”
역력히 굳은 얼굴을 나는 애써 감추지 않았다. 그런 나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그가 대답했다.
“제 나이 여섯 살 때 경기도의 한 교회 앞에 버려졌습니다.”
“뭐? 누가 자네를 교회 앞에 버렸나?”
“부모님의 이혼과 동시에 시골에 맡겨진 저를 키워주시던 친할머니였습니다.”
“그럼, 친할머니가 자네를 버렸다는 건가? 친손자를?”
“네.”
놀랍도록 차분한 오승욱이었다.
마치 남의 사연을 전하는 양, 그는 담담했고 망설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