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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이 Jan 28. 2023

하프(harp) 동행기

너는 나의 부담스러운 껌딱지

 어떤 일이든 그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서로 다른 생각과 시선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직업마다 다르겠지만 겉으로 보이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뼈를 깎는 고통을 감당하기도 할 것이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처럼 보일 지라도 그 시간을 위해 얼마나 긴 시간을 애쓰며 갈고닦는지, 수많은 공정들이 있는지는 실제로 그 일을 감당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직업이 되면 예상하지 못한 부분들이, 감당하고 애써야 하는 부분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무대에서 멋진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기교를 부리며 여유로운 모습으로 연주하는 음악가.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고충은 당연히 있다. 빛나고 화려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 다양한 선입견을 가진 하프. 하피스트의 여리한 손끝에는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고상하고 우아하게만 지낼 것 같은 이미지가 풍기지 않은가. 하지만 들에게도 남들이 모르는 나름의 고충이 있다면 그게 뭔지 궁금하지 않은가.


 학교 수업 중 오케스트라 수업이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플루트를 하는 친구들이 가장 부러웠다. 이유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악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오케스트라 수업은 관현악을 전공하는 모든 학생들이 함께 듣는 수업이다. 그렇다 보니 수업 전 저학년 학생들이 악기별 의자와 보면대를 반드시 세팅해 두어야 수업에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선배들은 시간에 맞춰 교실에 오기만 하면 되지만 나는 한 번도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없었다. 이유는 딱 하나 악기 때문이었다.


하프를 이동할 때 사용하는 전용 카트

모든 학교가 그렇진 않겠지만 내가 다닌 학교에는 하프 보관실과 오케스트라실이 달랐다. 그래서 오케스트라 수업 때마다 악기를 옮겨다 놓고 가져가기를 반복해야 했다. 물론 그랜드 하프를 옮길 때는 바퀴 달린 전용 카트로 이동한다. 하지만 바퀴가 있어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은 금물.

공간을 오갈 때는 반드시 문과 문턱을 통과해야 한다. 흔들림 없이 문턱 위로 악기를 넘길 수 있는 균형감과 시선을 뒤로 돌리면서 등으로 문을 미는 동시에 악기를 잡아당기는 요령과 함께 악기의 어떤 부분도 다른 부분과 닿지 않게 하는 세심함까지. 게다가 오케스트라 연습을 위해선 지휘자가 오기 전 반드시 전체 조율을 마쳐야 한다. 그랜드 하프는 보통 46개의 현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전체 조율시간에 다른 악기들과 함께 조율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오케스트라 연습 전, 악기를 옮기기 전에 반드시 조율을 한 상태여야 한다. 조율을 끝냈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줄이 움직일 수 있다. 오케스트라실로 옮긴 후, 연습 중, 수업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확인해야 한다.


 성악가들은 자신의 몸이 악기이기에 들고 다닐 악기가 따로 없지만 연주자들은 자신의 악기가 없이는 연주를 할 수 없으니 항상 악기와 함께 움직인다. 드럼이나 피아노, 오르간처럼 큰 악기는 들고 다니진 않지만 크다고 반드시 들고 다니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프처럼.

그렇기에 악기를 옮기는 일은 하프 연주자에겐 떼려야 뗄 수 없는 일 중 하나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악기를 옮길 때 옮겨주시는 분의 도움을 받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요즘은 하프 전용 카트와 소프트 케이스를 이용해 개인차량으로 옮기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랜드 하프보다 작은 사이즈의 하프들은 일반차량에 실을 수가 있기에 개인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이 보통이다.

나와 가장 많이 연주를 다닌 악기 케이스

이렇게 말하면 하프를 싣고 내리는 것이 편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작은 사이즈라 하더라도 일반 성인 남녀에게 편안한 크기는 아니다. 물론 아주 작은 사이즈의 하프는 한쪽 어깨에 가볍게 매거나 배낭처럼 생긴 케이스를 이용해 양쪽 어깨에 가볍게 매고 다닐 수 있다.

 연주  나와 가장  많이 다닌 악기의 높이는 약 130cm, 무게는 14kg, 케이스 무게는 약 5kg이다. 렇다 보니 일반 차량의 뒷좌석이나 트렁크에도 쉽게 실리지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차종을 가려 악기를 실을 수밖에 없다. 까다롭기 그지없다. 악기를 싣는 문제가 끝나고 악기를 차에 실었으니 다 해결된 거 같지만 연주 장소에 도착해 대기실이나 무대로 가기 위한 움직임이 남아있지 않은가. 이때부터가 진짜다. 전용 카트에 악기를 올리고 가볍게 밀고 가면 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무거운 물건을 카트에 싣고 다녀본 사람은 알 것이다. 카트로 갈 수 없는 곳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도 있고, 계단만 있고 경사로가 없는 곳도 생각보다 많다. 어디 그뿐인가. 대기실에서 무대로 이어지는 곳이 없는 곳도 있고, 무대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이 계단밖에 없는 곳도 있다. 가끔은 계단이 없는 곳도 있다. 이렇다 보니 카트를 꺼내보지도 못하고 가져온 적이 점점 많아져 나중에는 들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대한민국 표준키에 보통체격(어디까지나 개인적 견해임을 밝힌다)인 내가 악기를 옮기는 과정은 이렇다. 악기 케이스에  양쪽으로 연결된 끈을 이용해 오른쪽 어깨에 둘러맨 후 양 무릎과 코어에 힘을 주어 일어난다. 그런 후 오른쪽 손으로 악기 케이스 아래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몸과 허리가 반대쪽으로 완전히 젖혀지게 휘어주면 준비 끝이다. 어깨에 둘러멘 악기가 내 몸을 덮치듯 보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고~~ 괜찮아?"라는 말을 건넨다. 보이는 모습이 이렇다 보니 주차장도착하면 관계자분들이나 남자분들이 두 팔 벌려 도와주겠다고 달려오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막상 악기를 어깨에 메는 순간 "헉!" 하는 외마디를 외치기 일쑤다. 어디 그뿐이랴. 악기의 길이나 부피를 잘 알지 못해 방향 전환을 하거나 엘리베이터와 같은 공간에 탈 때 악기를 부딪히다 보니 도움의 손길을 거절할 수밖에. 실제 웬만한 계단이나 공간을 이동할 때 나만큼 요령껏 악기를 잘 움직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덩치 산만한 놈은 언제나 내 껌딱지이다.


 어릴 적 친척분들이 나에게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을 종종 들었다. 부모 잘 만나 고급 기술 배웠으니 평생 편하게 자기 앞가림할 수 있지 않겠냐는 소리였다. 이 말 중 어떤 말은 맞고 어떤 말은 틀렸다. 아름다운 악기를 감사하게 배울 수 있었으니 부모님 덕분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온몸을 사용해 악기를 들고 날라야 하는 고급기술이 필요한 줄 알았다면 편하다는 말은 틀린 듯하다.




사진: © emmalourichter,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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