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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준 Sep 23. 2020

#1 가려워서 미치겠습니다.

가려운 것보다 힘들고 두려운 건 홀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1 가려워서 미치겠습니다.



지금도 긁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피부가 얇아 벌써 피가 맺힌 듯이 빨갛게 올랐네요. 솔직히 첫 편지인데, 글을 쓰기 싫을 정도로 짜증나게 가렵습니다. (원망하는 건 아닙니다.) 아! 물론 아시겠지만 전 잘 씻습니다. 매일 샤워하지는 않죠. 가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샤워를 건너뛸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땀을 흘렸거나 미세먼지가 많은 날, 그 외에 꼭 씻어야겠다고 생각이 들면 무조건 씻었습니다. 구분하는 게 웃기긴 하지만 저는 나름 ‘씻는 편’인 거죠.  

당신께 이런 변명을 하는 게 우습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란 게 그렇잖아요. 시간이 지나면 과거를 미화하니까요. 분명 잘 씻는 모습은 익숙해서 기억에 흐릿할 겁니다. 그것보단 무척 드문! 안 씻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그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미화할까봐 이런 겁니다. 분명 말하는데, 난 잘 씻어요.

여하튼 가렵습니다. 특히 등 한 가운데가 미치도록 가렵습니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이 부위가 미치는 곳입니다. 아무리 몸을 비틀어도 그쪽은 손이 닿지 않아요. 너무 가려울 땐 팔을 늘리거나 관절 방향을 바꾸고 싶을 정도예요. (이건 너무 잔인한가?) 간신히 의자에 앉았건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어나 벽 모서리에 등을 비비적거립니다. 



등이 너무 가려워 효자손을 찾고자 온 방을 다 헤집었습니다. 이놈의 효자손은 필요가 없을 땐 그렇게 거슬리더니 막상 필요하면 꼭 사라지더라고요. 찾다 찾다 열이 받아 더 가려워지니, 이런 악순환이 따로 없어요. 계속 다짐만 하고 넘기는데, 이번에는 꼭 효자손을 10개 정도 사서 여기저기에 다 갖다 놓을 겁니다. 어디서든 간지러움에 대항할 수 있도록!

피부가 따가워지니 이제야 가려움이 좀 가시네요. 차마 거울에 등을 비출 순 없겠네요. 이미 빨간 줄로 난장판이 되어 있을 테니까. 이제 와 묻는 것도 웃기긴 한데, 당신은 어떤가요? 괜찮다는 말보다 이걸 먼저 묻고 싶네요. 


“지금 제가 가렵듯이 당신도 가려움을 겪고 있나요?” 


여전히 등 중앙 부분이 미치도록 가렵나요? 날이 건조해지거나 겨울만 되면 매년 고생했던 거 아시죠? 미세먼지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시작된 가려움이 어느덧 3년째입니다. 매해 고통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죠. 당신에겐 과거형이겠지만 전 현재진행형이라 여러모로 심란합니다. 근데 더 심란한 게 뭔지 아세요? 만약 당신이 지금까지도 이 가려움을 겪고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보았어요. 상상만으로도 어느 공포영화보다 무섭습니다. 

두려운 건 또 있어요. 사실 이게 가장 큰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네요. 지금이야 벽에 등을 비비거나 효자손의 힘을 빌려 간지러움을 해결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럴 수 없게 된다면 어쩌나요? 홀로 이 가려움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죠?


출처 : 픽사베이


호스피스 병동, 기억하시죠? 거기서 꽤 오래 봉사했었잖아요. 당신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전 그분들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요. 슬픈 건 그분들의 얼굴이 아니라 그분들이 겪던 고통이 선명해요. 제 눈에는 그분들의 일상이야말로 고통 그 자체였으니까요.

당연한 줄 알았어요. 등이 가려워 손으로 긁는 것도, 땀이 눈가로 흐르자 자연스레 나오는 고갯짓도 말이죠. 그런데 거기선 당연한 게 없더라고요. 일상에서 쉽게 하는 모든 행동이 어렵거나 불가능해지는 상황들. 점점 자유를 잃고 코너로 몰리는 삶. 그게 모두에게 정해진 미래인 거 같아서 심란하고 또 무서웠어요. 

오랜 시간 누워있어야만 하는 환자들. 그분들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혹여 욕창이 생길까 싶어 보호자나 간병인분들이 일정 시간마다 자세를 바꿔드리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죠. 그건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걸요. 제대로 표현조차 못하는 분들께 무엇을 해드린들 '만족'을 드릴 수 없을 거예요. 

그래서 불안하면서도 궁금해요. 당신이 살아있는 그 시간에선 아직 괜찮은가 하고요. 갑자기 가려워져도 괜찮을 방안이 있나요? 만약 있다면 다행이에요. 죽기 전에 고민할 거리가 많을 텐데 가려워서 그런 고민도 못하면 얼마나 슬퍼요. 

만약에.. 정말 만약에 아직도 방안 없이 그저 가려울 때마다 안절부절 못하는 상황이라면, 얼른 방안을 강구해주세요. 아직 겪지 않은 미래라도 내가 고생하는 걸 상상하면 입맛이 쓰거든요. 당신은 지금의 나보다 더 지혜롭고 현명할 테니 방안은 빨리 찾을 거라 봅니다. (이거, 당신을 향한 칭찬인가요? 아님 자화자찬인가요?) 부디 가려움에 고통 받지 않으셨으면 해요. 그게 어려우면 그냥 가족들에게 잘하세요. 그러면 미운 정 고운 정 고려해서 등 정도는 부탁하면 긁어주겠죠.



더 쓰고 싶은데 다시 또 가렵네요. 더 긁다간 정말로 피가 나올 거 같으니 이제는 찬 물에 몸을 좀 담가보렵니다. 가뜩이나 가려워서 스트레스 받는데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 열불이 나서 미칠 거 같거든요. 그럼 오늘은 이만 쓸게요. 




추신(P.S)

하도 가려워서 등을 긁다가 이 노래를 찾았습니다. 여러모로 가사가 가슴에 콕콕 박히네요. 한 번 웃으시라고 편지에 동봉합니다. 

https://youtu.be/cQ8SoGuxN_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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