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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준 Oct 10. 2020

#4 연휴라는 빨간 날

세상에 똑같은 건 없는 것처럼 모두가 쉬지는 않는다.

#4 ‘연휴’라는 빨간 날



2020년, 올해 추석 연휴가 끝났네요. 거기는 언제인가요? 개인적으로는 빨간 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추석이면 더할 나위가 없고, 아니더라도 구정이었으면 좋겠네요. 그래야 이 편지가 다른 날보다 더 강하고 선명하게 기억될 테니까요. 

자영업하는 사람들에게 연휴란 무엇일까요? 제겐 약간 애증이더라고요. 빨간 날이라 반가우면서도 ‘그날 역시’ 일해야 하기에 싫더라고요. 특히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자라면 그런 감정은 더 커지죠. 부모님이 고생하실 걸 알기에 일을 도우면서도 ‘남들처럼 놀고 싶다’는 마음에 싱숭생숭한 날들. 그래서 연휴가 다가오면 괜히 마음에 날이 서더라고요.

제 주변 사람들도 이런 제 심경변화를 알아서인지 연휴가 가까워지면 한 번쯤 얘기하더라고요. “연휴 때 힘들어서 어떻게 하냐”라고. 그 마음 씀씀이에 고마우면서도 괜히 더 알아줬으면 해서 옛날이야기를 꺼내죠. 무용담 비슷하게 얘기하는 애증의 가게일. 


“난 군대 있을 때도 구정이랑 추석 때 휴가를 썼어.. 정말이지.. 하..”


자영업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 다들 알겠지만, 일손이 부족하면 가장 먼저 찾는 게 자녀들이잖아요. 으레 그래왔듯이 저 역시 자주 차출(?)되었고, 일을 도왔죠. 그러다 보니 일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잖아요? 아니까 군대에 가서도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물론 상반되는 감정도 뒤따라왔지만요. (웃음)


‘두 분만 일하시면 힘드실 텐데..’

‘아, 그래도 빨간 날 휴가는 오반데..’

‘이번에도 사람 엄청 몰리겠지..’

‘그래도 소중한 휴가를 남들 다 쉬는 빨간 날에..?’


결국은 계속 마음이 쓰여 군 생활 내내 연휴마다 휴가를 썼죠. 그리곤 남들 다 즐겁게 놀 때 가게일을 하며 보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당신도 기억하시죠? 당신은 먼 옛날 일이기에 웃으면서 떠올릴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전 아직도 씁쓸한 웃음이 튀어나와요. 아직 그때의 감정을 다 털어내진 못했나 봐요.

이것 말고도 연휴에 고생했던 기억을 나열해보면 이것저것 많죠. 물론 그때마다 다른 사람의 연휴를 부러워하는 감정 역시 차곡차곡 쌓였고요. 그래서 어느 날부터 연초에 달력을 보면 무조건 반사 마냥 부정적인 감정이 튀어나와요. 얼른 지나가기를. 얼른 연휴가 끝나기를.



아마 저를 비롯해서 꽤 많은 이들이 연휴에도 일했을 거예요. 자영업이 어디 한둘인가요? (웃음) 만약 당신이 계신 곳이 병원이라면 그곳 역시 연휴를 가리지 않고 일하는 의료진이 있었을 거예요. 제가 오늘 이 편지를 쓴 건 당신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어서예요. “연휴에도 일한, 그 사람들을 한 번쯤 제대로 봐주세요.”

제가 몇 살까지 자영업을 했을지는 가늠하기 어려워요. 다만 제 성격상 몸이 불편할 정도라면 그만두었을 거예요. 그간 고생한 제 삶을 돌아보고, 남은 시간은 고생한 만큼 내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냈겠죠. 아마 당신은 그런 시간을 꽤 오래 보냈을 거예요.

다만 지난날 고생했던 순간들을 등한시하지 않길 소망해요. 연휴 때 했던 고생들은 애증이기에 털어버리고 싶지만, 동시에 오랜 시간 끌어안을 만큼 많은 추억이 있었잖아요. 그렇죠?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흔히들 권유하는 말, 기억하셨으면 해요. 


“그간 고생하셨던 것들은 내려놓으시고 사랑했던 기억, 사랑받은 기억만 가득 품고 가세요.”


부디 당신의 마침표 앞에 ‘연휴 동안 겪었던 일화’가 나열되기를 바랄게요. 고생한 만큼 마음을 쏟았으니까요. (그래야 제가 연휴 동안 고생한 이 시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거 같네요. 당신에겐 먼 과거겠지만 전 현재라서 꽤나 힘들다고요..) 

연휴 동안 겪은 고생, 전 이제 좀 쉴까 해요. 오늘 편지는 여기까지니까 아쉬워도 참으시고, 주변에 연휴 동안 고생하신 분들 보이면 인사도 좀 하고 그래요. 뭐, 제가 인사성은 좀 바르니까 나이 먹어도 인사성만큼은 그대로겠죠? 그럼 뭐 크게 걱정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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