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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준 Oct 12. 2020

#5 아침을 맞이하며

매 순간 고민하지 않고 바로 결정했으면 좋겠다

# 아침을 맞이하며



AM 4:42. 손님은 떠났고 먹은 흔적만 여기저기 가득해요. 나도 저들처럼 뒷정리는 신경 쓰지 않고 일어서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죠. 마음은 손님을 따라 떠났는데 몸은 자리에 앉아 치워야 할 것들만 멍하니 바라보았어요.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약간의 반항 혹은 일탈이려나.

결국은 치워야 하니까 어기적어기적 움직이며 하나씩 치웠어요. 제가 지루하면 보이는 행동 있잖아요. 그릇을 차곡차곡 쌓아서 한 번에 가져가기. 약간 게임처럼 혹은 억지로 즐거움을 쥐어짜듯이 그리했죠. 시간은 더 걸렸지만, 마음은 한결 낫더라고요. 

새벽에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과정, 그걸 꽤 오래 했죠. 해마다 몇 달은 그렇게 보내왔고 그런 과정을 최소 5년 이상 겪었으니 이제는 ’새벽근무‘가 낯설지 않아요. 다만 퇴근할 때마다 고민되는 건 언제나 똑같았죠. 


“..퇴근하고 뭐하지..?”


남들처럼 저녁에 퇴근했으면 친구를 보든 음식을 시켜먹든 술자리를 가지든 뭐라도 했겠죠. 근데 새벽은 그럴 수가 없잖아요. 그저 자거나, 게임을 하거나, 아침을 맞이하거나. 그렇게 셋 중 하나죠. 자는 건 뭔가 억울해서 못하겠고, 게임을 하자니 피로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일수였어요. (게임도 체력이 있어야 할 수 있으니까..) 결국 제가 주로 하는 건 아침을 맞이하는 거였고 별 거 하는 것도 없이 아침을 맞이했죠. 매일매일, 새벽일을 하는 내내.

새해에 일출을 보러 사람들이 여기저기 떠나곤 하잖아요? 난 그게 참 이해할 수 없었어요. 새벽일을 하면 매번 퇴근할 때마다 일출을 볼 수 있는데 굳이 가야 하나 싶었죠. 저 사람들이 그걸 모르는 건가 싶어 알려주고 싶을 때도 있어요. 아니면 반가운 마음으로 새벽일을 권하고도 싶었고요. 물론 그렇게 얘기하면 “헛소리 마라, 감성이 다르다.”라며 거부할 게 뻔하겠지만.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 새벽에 그나마 새로운 건 뉴스 하나죠. 연합뉴스와 YTN만 주구장창 틀어놓으니 두 뉴스의 인트로도 소리로 구분할 정도예요. 다른 예능 프로그램도 방송하지만, 그것들은 재방송만 주구장창 틀어주니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어요. 그나마 뉴스는 새로운 소식에 어제와 오늘이 다름을 체감하게 해줘요. 그나마 어제와 오늘을 구분해주는 느낌.

정리하고 퇴근하면 밤바람이 세차게 불어옴을 느껴요. 길거리에 사람이 없어 그런가, 바람을 막아주는 이가 없어서 그런가. 거리의 정적과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 그리고 나처럼 새벽에 거리를 걷는 몇몇 사람들. 오늘도 어김없이 마주한 똑같은 풍경이 계속 이어지네요. 그러니 퇴근 후 내 선택 역시 똑같을 수밖에 없죠.

아침이 다가오는 게 눈에 보여요. 짙은 밤이 천천히 옅어지죠. ‘차라리 더 일찍 퇴근했어야 했는데..’ 그림자가 옅어지는 걸 본 순간, 고민은 시작돼요. ‘누구의 아침으로 살 것인가?’, ‘ 아침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시작되는데 세세하게 파고들면 다른 이들과 나는 참 다르죠. 그들은 자고 일어나 쌩쌩하고, 난 일을 해서 파김치가 되었죠. 그들은 당연히 출근을 하고, 나는 당연히 퇴근을 하죠. 그런 비교가 느껴질 때마다 고민의 순간이 찾아와요.


“시계를 돌릴까? 아니면 놔둘까?”


남들처럼 아침을 보내고 싶은 욕망이 불쑥불쑥 들어요. 그들 무리에 녹아들고 싶거든요. 현대인의 아침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활기차고, 역동적이고, 바쁘고, 피로한 것들. 그 시간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즐기지 못하고 시간에 끌려가는 거겠지만 그럼에도 그 시간에 머물고 싶었어요.  

그런데 시계를 놔두면 내게 주어진 일정을 이어가야만 하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햇살을 느끼며 집에 들어갈 테고 씻을 거예요. 씻은 후에 허기진 배를 붙잡으며 고민하겠죠. 먹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어떻게든 자기 전에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을 충족시키고자 이것저것 뒤적이기도 할 거예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햇빛이 보다 선명해지면 그제서야 이불 속으로 들어가겠죠. 부산스러운 아침 소음을 뒤로 한 채 잠이 들 테고요.

그렇게 양쪽을 고민하는 걸 매일 같이 겪으니 이것도 참 고역이에요. 그래서 푸념해봤어요. 한 번은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털어놓듯이 투정을 좀 부리고 싶었거든요. 너무 애 같으려나? 근데 가끔 그렇지 않나요? 어른이 지치면 어린이가 되는 일, 드물지 않게 벌어지죠. 그리고 이번엔 내 차례일 뿐이고요.




당신의 새벽은 어떤가요? 당신 역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이하겠죠. 나는 다시 시작되는 하루 속에서 ‘무얼 할까?’ 고민하겠지만, 당신은 무슨 고민을 할까요?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오늘도 하루를 맞이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라는 생각을 가졌을까요? 왠지 그럴 거 같은데.. 그러면 제가 좀 부끄러워지네요. 당신에겐 그 무엇보다 배부른 투정을 부린 셈이니까요. 

그래도 뭐, 서른이면 애와 어른 사이니까 이해 좀 해줘요. 아직은 어른이라 하기엔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는 시기잖아요. 그러니 나이 더 드신 분께서 포용한다 생각하고 내 생각이나 좀 해줘요. 


“당신도 너무 초조하게 굴지만 마시고요!”


당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당신은 잘 살아왔고, 죽음 역시 잘 준비해왔다고 믿어요. 그러니 내 말 믿고 마음을 편안하게 먹어요. 당신을 생각하며 글을 쓴 만큼, 오늘 아침은 지금의 나를 떠올리며 하루를 시작해보는 건 어때요? 죽음이 쫓아온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는 게 더 위험한 거 아시잖아요. (웃음) 돌아도 보고, 곱씹기도 해요. 




추신(P.S)

“그래서 나, 퇴근하고 뭐 할까요?” 

1. 졸음도 날려버릴 게임을 한다.

2. 남들이 강력 추천한 영화를 본다.

3. 이제까지 아껴놨던 드라마를 본다.

4. 자극적인 음식을 마구마구 먹는다.

5. ……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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