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수 있음에도 가만히 있는 건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다.
“결국에는 갔나요? 언제쯤 갔나요? 어디로 갔나요?”
뜬금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연말이 다가오니까 좀 봐주세요. 당신도 아시다시피 자영업자에게 있어 연휴와 연말은 ‘기본 좋을 수 없는 시기’니까요. 누군가가 즐겁게 보내는 그 시간은 누군가에겐 ‘무엇보다 바쁜 시기’가 될 테니까요. (그래, 나처럼요.)
거기에 연말이면 으레 튀어나오는 생각이 있잖아요. “아니, 나 그래서 올해 뭐했지?! 잘 보낸 거 맞나?” 올해 떠오르는 건 마스크, 마스크 쓰고 일하기, 마스크 쓰고 손님 맞이하기. 올해는 본의 아니게 하얀 것들로 불태웠네요. 연초에 썼던 버킷리스트엔 여백이 가득하고요. 올해는 제대로 날려 먹은 기분! 아이 좋아... (울먹)
이렇다 보니까 손님이 없거나 뜸한 시간엔 망상회로가 켜지고 상상의 나래가 시작되곤 해요. 이렇게 하면 어떨지, 저렇게 하면 어떨지 하면서 말이죠.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상상은 하나였어요. 당신에게 물었던 질문처럼, 떠나는 거예요. 그것도 가족들이랑!
‘우리 가족, 올해는 꼭 여행을 가게 해주세요.’
신앙심이 두터운 건 아니지만, 기도하면서 매번 바라던 것 중 하나가 여행이었어요. 가족의 건강 다음으로 함께 떠나는 걸 소망해왔죠. 몇몇 사람들은 이런 내 소망에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지 않아? 잘 이야기해봐!”라고 말하지만, 참나..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을까요!? 아는데도 못하니까 소원을 비는 건데 말이죠!
우리 가족들 모두 알고 있어요.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건 ‘끊임없이 상상으로만 그쳤던 일’ 중의 하나라는 걸요. 모두 마음속에서 바라고 있죠. 떠나자! 떠나자! 함께 떠나자! 그러나 시작과 끝은 언제나 상상에서 머무르고 있어요, 아마 그곳에서 머문 지 10년? 아니다, 적어도 15년에서 20년은 상상에서 머물렀겠네요.
어떻게 보면 당연해요. 우리 부모님인데 여행이 웬 말이겠어요. 우리 부모님 시장 바닥에서 정평이 나 있다는 건 당신도 기억하실 거예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부부로. 친척 중 일부는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독하다고 중얼거렸죠. 시장 사람들 또한 “어떻게 저 가게는 매일 연대?”라면서 쑥덕거렸고요. 그 말 속에 대단함과 어리석음이 섞여 있음을 알아요. 그들은 알까요? 그때의 중얼거림과 쑥덕거림을 듣는 자식이 있었음을.
어렸을 땐 그게 참 속상했어요. 왜 우리는 쉬지 않는지, 왜 매번 가게를 여는지. 매일 노는 걸 원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저 남들이 놀 때 우리도 놀기를 바랐을 뿐이죠. 나이를 먹고 나니 그게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속상한 건 똑같네요. 그래서 계속해서 부모님께 주장하죠.
“이제 1년에 하루 정도는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도 괜찮지 않아요?”
“가게를 하루 쉰다고 우리가 무척 힘들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럴 때마다 하시는 말씀은 똑같아요. “맞아, 내년에는 쉬기로 하자.” 우리 부모님은 참.. 우리가 내년에도 건강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걸 왜 모르실까요.. 아니면 아시면서도 그보다 더 큰 우려가 있어서 멈출 수 없는 걸까요? 갈수록 줄어드는 부모님의 상의를 볼 때마다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어요. 언젠가는 일도 못 하실 상태가 되실 텐데, 그때가 되면 여행도 역시 갈 수 없다는 걸 아실까요?
고생한 자영업자가 가게를 쉬지 못하는 건
운전 중에 눈 감고 브레이크 밟는 것과 같다.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자
밟고 나서도 계속 불안해한다.
언제였더라, 부모님을 설득하다가 속상한 마음에 썼던 시의 일부예요. 그때 술을 마실 수 없었기에 정말 많은 과자와 음료수를 먹었던 기억이 나요. 기분도 별론데 속까지 거북스러웠던 날이라 잊을 수가 없네요. 감정이 뒤죽박죽이라 시도 결국 완성을 못했던 게 기억나네요.
실은 편지로 당신에게 이걸 물어보는 것도 속상해요. 이걸 묻는다는 건 지금까지도 가족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는 확실한 증거니까요. 거기에 언제 떠날지 기약할 수 없다는 것도 유추할 수 있고요. 코로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겐 “가고 싶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가지 못했어!”라고 말하지만, 제가 제일 잘 알죠. 실은 아직도 우리 가족은 상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이러고 있다는 걸.
그럼에도 당신에게 묻게 되는 건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못해서겠죠. 부디 올해엔 가기를, 내년엔 가기를 바라면서요. 부디 하루라도 빨리 여행을 갔으면 좋겠어요. 기대한 것에 못 미쳐 시큰둥하게 하루를 보낼지라도 가족이 모두 모여 여행을 갈 수 있다면 지루함도 반갑게 맞이할 거 같아요.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어볼게요.
“결국에는 갔나요? 언제쯤 갔나요? 어디로 갔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