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화준 Oct 30. 2020

#10 사랑하기에 울고 있는

사랑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면 열정적인 삶을 살게 된다. 

# 사랑하기에 울고 있는



부끄러워서, 고이 숨겨놓은 편지가 몇 장 있어요. 당신이 사는 그곳에선 너무 오래되어 형태도 유지하기 힘들거나 글자가 지워졌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우리 둘에게 있어 무엇보다 소중한 편지이기도 하죠. 분명 살면서 다시 떠오르는 순간이 있을 거예요. 우울한 순간, 지쳐버린 순간, 눈물이 나올 만큼 힘들거나 안타까운 순간. 나보다 당신에게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편지들을 적어볼까 해요. 

우선 그날의 풍경부터 잠깐 적어볼게요. 당신이 떠올리기엔 정말 먼 과거일 테니까. 2009년 3월 3일. 삼겹살 데이라서 강렬하게 기억해요. 고기집을 운영하는 부모님 아들에게 이보다 더 유쾌한(?) 입대일은 또 없을 테니까. 짧게 자른 머리가 어색해서 거울을 보며 이리저리 둘러보았어요. 


‘고등학생 때도 이렇게는 안 잘랐는데..’


이별은 빠르게 진행됐어요. 훈련소는 충북 증평에 위치했기에, 서울에서 출발하려면 발걸음을 바삐 놀려야 했거든요. 그래서 가족들과 좀 더 있고 싶었음에도 집에서 작별의 인사를 나누기로 했죠. 왔다 갔다 하기엔 거리도 멀뿐더러 당일 장사를 준비하기에도 빠듯했으니까요. 

현관문 앞에서 부모님을 바라볼 때, 어머니는 울컥하셨나봐요. 애정표현을 부끄러워하시던 분이 처음으로 먼저 포옹을 하셨죠. 성인이 되어 부모님 품에 안긴 건 그때가 처음인 거 같아요. 어색함이 밀려오는 것도 잠시, 이별이 더욱 진하게 느껴졌어요. 이제 정말 입대구나. 당분간은 집에 올 수 없겠구나.

어머니 뒤편에 서 계시던 아버지는 가장으로서의 마음이셨을까요, 아니면 투박하지만 나름의 방식대로 자식에게 힘을 주고 싶으셨을까요?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제게 말씀하셨어요. “다치지 말고 잘 갔다 와!” 그 목소리엔 어떤 감정이 섞여 있었을까요? 부모를 깊게 이해할 수 없었던 철부지에겐 쉬이 해석할 수 없는 감정과 속뜻이 있었을 거예요.

아쉬움이 늘어날수록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고 해요. 그 날은 그걸 제대로 느꼈던 날이었죠.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면 “이왕 삼겹살 데이에 입대하는 거, 삼겹살이나 먹고 가야지!” 이렇게 주장하며 고기를 먹었겠지만, 전 훈련소에 홀로 들어가는 것부터 무섭고 떨렸거든요. 그래서 어버버 하다가 뭐 하나 제대로 한 거 없이 훈련소에 들어갔어요.



훈련소의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해요. 여기서 모두란 ‘훈련소를 경험한 이들’로 표현할게요. 똑같이 지루하고, 고통스럽고, 외로웠으며, 두려웠죠. 아마 훈련소에서 깨달았을 거예요. 나는 혼자 큰 게 아니라는 걸. 가족들의 울타리 속에서 안전하게 자라왔음을. 울타리 밖으로 벗어났을 때야 비로소 울타리의 소중함을 알 듯, 가족의 소중함과 부모를 향한 그리움을 그때 처음 느꼈어요. 

그리고 그 훈련소에서 편지를 받았죠. 부모님에게서 온 편지. 손에 쥔 편지를 보는데, 얼떨떨한 기분이었어요. 익숙하면서 낯선 기분이 동시에 들었거든요. 복잡한 마음에 모두가 잠든 시각이 되어서야 조심히 편지를 꺼냈어요. 누군가 소리를 듣고 깰까봐 조심조심. 어두웠지만, 문밖으로 새 나오는 불빛만으로도 편지를 읽기엔 충분했어요.

지금도 그 편지를 떠올리면 마음이 울렁거려요. 부모님께 편지를 받는 건 생전 처음이었어요. 누구 하나 의지할 곳 없는 곳에서 읽게 된 부모님의 소식. 대체 무슨 말이 있을까, 잘들 지내고 계실까, 가게는 바쁜데 괜찮으신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편지를 뜯어 첫 문장을 읽자마자 눈물이 맺히더라고요. 

뭔가 엄청난 내용이 있던 건 아니었어요. 그저 보고싶다, 걱정이 된다와 같은 으레 하는 얘기들. 그래요. 으레 하는 얘기들이죠. 근데 그게 그렇게나 감정을 복받치게 하더라고요. 당연하게 여겨왔던 그 울타리 속 이야기들이 여기서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으니까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부모님께서 맞춤법을 온전히 알고 계시지 않다는 것을. 정확히는 부모님께서 배웠던 시기의 맞춤법과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맞춤법에서 차이가 있다는 걸. 그런데 전 그것들이 그렇게나 슬프더라고요. 맞춤법이 틀릴까 싶어 편지를 쓰기에 앞서 망설이셨을 모습이 그려져요. 그러면서도 저를 향한 걱정과 그리움이 더 크기에 펜을 드셨겠죠.

그때 그 편지를 읽던 밤. 그 날 밤의 모습은 어린 시절 부모님께 혼나던 날과 같았어요. 혼을 내는 부모님과 그 모습이 미워서 자는 척한 나. 그런 제 모습을 보며 곁에 조용히 다가와 “미안하다” 말씀하시는 부모님. 그걸 듣고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며 숨죽여 울었던 그 날의 밤처럼. 



언제부터 군 생활을 잘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그 편지를 읽은 뒤부터 더 열심히 버텼어요. 적어도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알 수 있었으니까요. ‘사랑의 힘’이란 표현은 유치하게만 들렸는데, 정말 있더라고요. 그 사랑의 힘이란 게. 

난 지금도 ‘사랑의 힘’을 느끼고 있어요. 편지 속에 담긴 것보다는 투박하지만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조금 다른 모습으로 느끼고 있어요. 여전히 퉁명스러운 모습이 있지만, 사랑을 조금씩 표현하려고 노력해요. 그게 별 것 아닌 거 같아도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니까요.

당신은요? 지금도 사랑의 힘을 느끼고 있나요? 어쩌면 그 누구보다 사랑의 힘이 절실히 필요할지도 모르겠죠. 가장 바람직한 건 당신의 입에서 “지금도 사랑의 힘을 느끼고 있어요.”란 대답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나 슬프게도 다른 대답이 나온다면, 이 편지가 당신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잊고 있었던 ‘사랑의 힘’을 제가 편지와 함께 보낼 테니까요. 




추신(P.S)

지금 우리 둘에게 필요한 건 ‘무언가에 대한 열정, 열망’보다는 ‘사랑’이 아닐까 싶어요.


Passion makes the world go round. Love just makes it a safer place.

열정은 세상을 돌게 한다. 사랑은 세상을 좀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 뿐이다.  

이전 10화 #9 여행 앞에 가족을 넣고 싶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