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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웅이 집 Nov 15. 2022

가방 없이 지내는 날들


외출할 때 가방 없이 지내는 날이 늘어나고 있다. 몇 달 전부터 시작한 포포만쓰(?)였는데, 바지 뒷 주머니에 카드지갑 하나와 핸드폰, 일하러 갈 땐 사원증까지 지니고 다닌 날이 대부분이다. 주머니가 없는 옷을 입는 날은 좀 곤란하다. 대신 가방이 꼭 필요한 날은 챙긴다. 예를 들어 여행이나 노트북 챙길 때, 격식 있는 곳을 갈 때 등인데, 이 때도 최소한의 물건만 가지고 다니려 신경 쓴다.


외출 길을 가볍게 다녀보자는 마음으로 소소하게 시작했는데, 뭔가를 지니거나 챙길 것이 줄어드니 마음이 편해지고 덤으로 자유로워진 기분을 얻는다. 가방 없이 퇴근할 땐 여행을 다녀온 기분으로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찰나의 매직도 있다. 무엇보다도 나가서 내 몸뚱이 하나만 챙기면 된다는 단순한 사고방식과 의지할 물건이 없는 내 모습에 잠시 취해 좋았던 거 같다.

이런 생각 도중에 ”미니멀 유목민“이란 이름의 유툽 채널을 만났다. 구독자가 무려 22만명이다. 외출할 때 가방 없이 다녀보니, 미니멀이 곧 자존감이라 말하는 유투버의 말에 공감도 간다. 동시에 미니멀리스트를 꿈꾸거나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다니 놀랍기도 하다.


몇 년 전에는 대대적인 방 청소의 시간을 가지며 잔잔바리로 구매했던 가방을 정리했다. 그 후에 사내 공모전으로 목돈이 생겨 오래 쓸 만한 물건을 스스로에게 선물해 주고자 처음으로 가격대가 있는 가방을 구매했고, 소량의 고가 물건을 오래 쓰자는 결심은 방청소에서 어렵게 생존했던 가방들에게 한번 더 이별을 고하게 만들었다. 한 때는 노력의 대가로 열심히 메고 다녔으나 이젠 가방 자체를 가지고 다니지 않으니, 옷장 한 구석에서 긴 잠을 청하고 있다. 결혼식을 가는 이번 주말엔 오랜만에 단잠을 깨워 볼 생각이다.


이런 유구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필요한 물건만 지니거나 좋아하는 것들만 소유하며 사는 삶에 만족도가 높아졌다. 집에도 필수 가구와 물건만 들여놓으니 매주 하는 청소와 유지 관리가 그나마 수월한 것처럼, 뭐든지 많이 만들지 않고 적당하거나 최소화하는 것이 편안함의 길로 안내해 준다는 걸, 금요일마다 청소기를 돌리며 몸으로 느낀다. 물건 외에 꼭 필요한 말과 글을 쓰는 일에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시도에도, 밀도를 더 가져야겠다. 소유를 늘리는 것보단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지점에서 깊이를 찾는 일에 집중해본다.

이번 글을 발행하기 위해 맞춤법 검사를 하며 딸깍 딸깍 마우스 클릭을 하는 내게, 오락하는 거 아니냐는 짝꿍의 합리적 의심도 최소화해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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