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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웅이 집 Dec 02. 2022

어떤 심으로 겨울을 버티나요


날씨가 줄곧 따듯하다 며칠 전부터 몸이 으슬해질 정도의 서린 바람으로 추위의 기세가 대단하다.

갑자기 찾아온 겨울에 잠시 당황하다 서랍과 신발장을 뒤져 히트텍, 목도리, 장갑, 어그 순의 정비로 부산스러웠다. 그간 얌전히 지내온 패딩과 코트도 세탁소에 맡기겠다 결심한 날, 하필 한파가 찾아왔다. 외투를 한 보따리 들고 세탁소에 도착하니 사장님이 추운데 오시느라 수고했다는 인사와 이것저것 할인을 때려주셨다. 수요일은 클린데이라 기본 30% 할인에, 내 생일 날짜를 바꿔주며 생일 20% 할인까지 팍팍 넣어주셨다. 갑작스러운 추위로 쇠약해진 기운은 기대치 못한 곳에서 호의와 변칙으로 따뜻한 힘을 얻는다.


다음날 퇴근길엔 창 밖을 바라보니 백화점 벽면이 요란하다. 건물 외벽을 디스플레이 삼아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미디어 파사드가 12월이 왔다고 번쩍번쩍 알려준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 길에는 편의점 앞 군고구마 냄새가 유난스러운 게 지난 이틀 동안의 겨울 알림에 방점을 찍었다.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추위를 버틸 수 있는 힘이 궁금해 지다, 이내 경험했다는 생각도 든다. 겨울을 준비하러 갔던 세탁소에서 만난 호의와 겨울이 왔다고 알려주는 길거리의 이모저모들이 오들 거림을 버티게 해 준다.


어제는 혼밥 하러 들어간 식당에서 캐럴을 듣고 스시에 맥주 한 잔 들이키는 시간이 황홀했다. 추위에 떨다 따신 곳에 들어와 맥주 한 모금에 개안을 맞이하고, 맞은편에 앉은 할배의 찰랑거리는 쏘주 잔마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내기 위해(?) 도롱과 서로에게 열렬히 어필하는 시간을 갖고, 꽤나 설득이 됐다 싶으면 스스로 흡족해하는 입꼬리도 구경해 본다. 이 모든 게 겨울이 가져온 이벤트이자 또 동시에 겨울을 버티게 해주는 심(힘)이다. 한국인은 밥심이란 말이 있듯이, 이 세상 모든 겨울인들도 각자의 심이 있을 거다. 밥을 먹고 이따금 다시 힘을 내는 밥심이 있듯, 추위를 나고 버티는 각자의 겨울 심이 궁금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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