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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Jul 14. 2024

8 LOUNGE, 작은 사옥을 마련하다.

나랑 상관없을 것 같은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취업연계생 4명이 합류하여 전체 프로젝트 인력이 증가했다. 이러한 과정으로 인해, 나와 핵심 구성원의 자리를 취업연계생에게 양보하면서 졸지에 떠돌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동안 메뚜기처럼 노트북을 들고 일하다가 주인이 오면 자리를 내주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5층 건물이 기관 건물이라 커피숍에 가지 않아도 다른 층의 회의실이나 청년 공간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들에게 비즈니스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소프트웨어, 다른 하나는 하드웨어다. 여기서 소프트웨어는 IT 프로그램 개발을 말하는 게 아닌, 콘텐츠, 사람, 문화 프로그램 등을 뜻한다. 마치 영혼과 같다.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를 담을 수 있는 물리적 공간, 즉 육체를 말한다. 그래서 세상은 소프트웨어를 잘 다루는 사업가와 하드웨어를 잘 다루는 사업가로 나뉜다. 그 이유는 개인의 기질 및 오랜 경험에 따라 사업의 형태가 한쪽으로 쏠려서다. 예컨대, 건축이나 부동산에 오래 몸담은 사업가는 하드웨어 범주에서 생각하고, IT 플랫폼이나 콘텐츠 제작에 오래 몸담은 사업가는 소프트웨어 범주에서 수익을 창출하려 하는 것이다.


정부 기관은 주로 하드웨어 중심의 정책을 펼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지속적인 운영에 어려움을 겪곤 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위탁이나 사회적 기업을 통해 소프트웨어 성장을 지원하는 예산을 매년 편성한다. 민간 스타트업에서 오직 매출 증대만을 추구하던 나에겐, 정부 지원 사업이라는 행정 분야는 전혀 새로운 세계였다. 적응하는 데 무려 3년이나 걸렸으니, 마치 좌뇌와 우뇌를 바꾸는 것 같았달까. 때론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했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점은 행정의 경직성이었다. 요건과 지침만 충족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식의 접근 방식은 처음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사안도 형식적 요건만 갖추면 통과되는 걸 보며 혼란스러웠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공무원들도 이런 모순을 인지하면서도 지침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들은 1년, 3년, 5년을 이런 시스템 속에서 일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도 기계 같은 수동적 인간이 되어간다고 자조적으로 말하곤 했다. 나는 이런 현실을 접하면서 정부 시스템의 특성과 한계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이로써 나는, 각 기관이 하드웨어 중심적이며, 행정 요건과 지침을 기준해 움직인다사실을 몸소 체득했다. 나는 비즈니스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를 활용해야 했다. 수익이든 명예든 교환해야 했던 것이다. 한, 상황을 타개해야 했다. 하드웨어(공간)가 필요했던 것이다.


강석, 김수와 함께 사무실 공간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사진도 찍었다. 역세권 20평 기준으로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100만 원은 기본이었고, 정부 기관 제공 공간은 12~15평 기준 무보증에 월 40~50만 원 이었다. 서울에 있을 때는 이 정도면 거의 공짜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는데, 인천에 오래 머물다 보니 이마저도 비싸게 느껴졌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환경이 바뀌니 기준도 순식간에 바뀌는 걸 보니 말이다.


잠시 과거 경험이 떠올랐다. 운동화 바닥에 구멍이 날 정도로 발로 뛰어다녔던 기억. 고시원 시절부터 온 동네를 누비며 발자국을 남겼고, 부동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때 깨달은 교훈이 있다. 부동산은 발품을 판 만큼 보답한다는 것. 열심히 뛰어다닐수록 더 좋은 매물을 만날 수 있다는 진리 말이다.


이번에도 그 교훈이 통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당장의 급한 마음을 누르고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대신 그 시간 동안 소프트웨어, 즉 콘텐츠 제작과 사업 설계에 더 집중하자고 팀에 제안했다. 좋은 공간은 결국 찾아올 테니, 그때까지 우리의 내실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예전에 사회적 기업 센터장으로 역임하고, 지금은 도시재생 소장으로 활동 중인 대표에게 연락이 왔다. 나의 사정을 말하니, 이타심으로 도와주겠다고 흔쾌히 승낙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소개받은 곳이 지금의 8 라운지 사옥이다. 나는 사무실 임대비가 얼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소장님이 "이건 내가 잘 알고 있는 건축 사업을 하고 있는 소장님의 물건이라면서 싸게 줄 수 있어!"라고 귀띔했다. 분위기가 마치 부동산 중개인처럼 말하는 듯 보였으나, 기관에 오래 몸담고 있던 분이니 믿기로 했다.




"그래서 얼마인가요?"라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소장님이 말하기를,

"3억만 주면 돼. 거저 주는 거야."

"잠시만요, 생각 좀 해볼게요. 저희가 그 정도의 돈이 없는데..."

"이런 기회 없어, 그냥 빨리 진행해!"

"이거 전세인가요?"

"무슨 전세야? 매매지!"


'뭐지????? 나는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소환했다. 인천역에서 도보 12분 거리, 지금은 유동 인구가 줄어든 차이나타운 권역의 관광 섹터. 현재의 시세와 앞으로의 개발 호재를 고려해 보았다. 지금 이 가격은 소장이 구매했던 가격(2억)에서 인테리어 비용을 한 금액(3억)이 맞다. 그러나 매매를 하려면 은행 대출이 필요하고 자본금이 적어도 2억은 있어야 한다. 인테리어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최소 6천만 원은 잡아야 다. 대출은 최대 40~50%가 나올 것으로 예상해 나온 금액은 대략 2억. 그러나 2억만 지출될까... 예상치 못한 비용도 분명 나갈 것. 그 금액을 10% 잡았을 때 적어도 2.3억은 필요하다. 계산 끝.'


그러곤 내가 말했다.


"저희 거지예요!"

"그 돈 다 내고 사는 사람이 어딨어? 그리고 은행 대출 아니야. 기관 직접 대출이지. 그것도 10~15년짜리."

"은행 대출을 안 받으면 어디서 대출을 받아요? 기관 직접 대출은 뭔가요?"

"그것도 몰라? 기관에서 직접 대출을 해줘~"


나는 기관에서 직접 대출을 해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당시에는 정부 지원 사업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이 경험을 통해 기관 직접 대출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자가 2%라니, 기관 수수료를 감안하면 평균 3~4% 정도다. '뭐 이런 제도가 다 있지?' 이래서 눈먼 돈이 지방에 많다는 말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추가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인테리어 비용이 대출에 포함다는 것.


와... 대박! 믿기 힘든 제도였다. 국내에 이런 파격적인 지원이 있다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보통 인테리어 비용은 별도로 마련해야 하고, 공사 중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리스크도 감수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인테리어 비용까지 포함해 대출해 준다니, 입이 벌어졌다.


물론 조건이 있었다. 구도심에 위치해야 하고,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한 공간도 일부 마련해야 했다. 인테리어 업체도 허가를 받은 곳이어야 했고, 20% 이상의 자부담도 필요했다. 이는 순수한 상업 공간으로만 활용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가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이었기에, 이런 조건들은 오히려 우리의 비전과 잘 맞았다. "청년들과 함께 구도심을 활성화하자!" 이 생각에 모두가 동의했다. 다만 20~30%의 자부담금이 걸림돌이었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지, 다시 한번 꼼꼼히 계산해 보기 시작했다.


인테리어: 8천만 원

매매가: 3억

월 이자: 50~65만 원

자부담 20%: 약 8천만 원


계산해 보니 자부담 8천만 원만 마련하면 월 임대료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사옥을 소유할 수 있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각자의 법인에서 십시일반으로 모으면 어떨까? 1인당 3천만 원씩만 부담하면 되었다. 3천만 원으로 내 집 마련을 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달콤한 혜택 뒤에는 항상 숨은 과제가 있기 마련이다. 첫 번째 난관은 복잡한 행정 절차였다. 인천시와 관련 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했는데, 행정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겐 큰 스트레스였다. 사업 계획서 제출부터 매년 실사까지,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당시엔 모든 게 부담스러웠다. 두 번째 어려움은 허가받은 인테리어 업체를 찾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인테리어 업체가 소규모로 운영되고 인력 변동이 심해 신뢰할 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공사 중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아 믿을만한 업체를 찾는 게 더욱 까다로웠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매매를 마치고, 선정된 인테리어 업체와 함께 사옥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인테리어를 마친 뒤, 우리는 새 둥지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다양한 프로그램 활동을 했다. 실무 경험 프로젝트, 청년 행사, 프로젝트 회의 등을 통해 운신의 폭을 넓혔다. 또한 자신감과 동기부여도 얻게 되었다. 작은 사옥에서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수없이 모색한 셈이다.






이로써, 인천 구도심 한편에 우리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자리 잡혔다. 사옥이라기에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50평 남짓한 땅에 지어진 2층 건물로써, 크기는 나름 괜찮은 편이다. 건폐율 때문에 건물이 작아 보일 뿐.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공간을 오갔으니, 좁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흥미롭게도 건물의 독특한 외관 덕분에 매년 한두 번씩 드라마 세트 촬영 요청이 들어온다. 예전에는 사정상 거절했지만,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겨 촬영을 허락해볼까 한다. 한편,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 속에서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부동산 시세가 오르며 구도심 주변이 조금씩 활성화되기 시작한다는 것. 이 소식을 들은 나는 기도 했다. '앞으로 3~4년간 시세가 오르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왜냐면... 이제야 방법을 알았거든요...'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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