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방식으로 아이템을 각인시킬 것인가?
퇴근길, 여주는 한숨을 쉬며 집에 들어섰다.
"왜 이렇게 늦었어?"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엄마가 물었다.
"사업계획서 쓰느라... 근데 자꾸 탈락이에요."
여주는 식탁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자세히 설명해도 심사위원들이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요."
"무슨 내용인데?"
"친환경 포장재요. 기술도 좋고 환경에도 도움 되는데... 너무 복잡하게 설명했나?"
엄마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네가 어렸을 때 이야기 들려줄까? 네가 세 살 때..."
"엄마, 지금 그게 무슨..."
"들어봐. 네가 '아기 상어' 노래를 처음 배웠을 때, 어떻게 가르쳤게? 처음엔 전체 노래를 한 번 들려주고, 그다음에 '아기 상어' 부분만 반복해서 알려주고, 마지막에 다시 전체 노래를 부르게 했지."
여주의 눈이 커졌다.
"아... 복잡한 기술 설명부터 하지 말고, 전체 그림을 먼저 보여준 다음..."
"그래, 사람들은 이렇게 단계적으로 배울 때 가장 잘 이해하거든. 너희 포장재도 그렇게 설명해 보면 어떨까?"
다음 날 아침, 여주는 남주에게 전화했다.
"남주야, 어제 우리 엄마한테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어! 대박이야!"
상대방이 내 아이템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사업계획서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때마다 나를 고민하게 만든다. 프로그램 개발과 기획 설계를 오래 해온 탓에, 나는 종종 본인 중심의 사고에 갇히곤 한다. 분야를 전향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기질과 관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도 여전히 그 틀을 벗어나기 위해 나 자신과 싸우는 중이다. 그래서일까. "상대방의 입장에서 내 설명이 쉽게 이해될까?"라는 의구심이 늘 따라다닌다. 이는 아마도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고민일 것이다. 하지만 개발자 출신인 나는 이 부분에서 더욱 취약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예민하게, 더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고민은 정부지원 사업계획서를 쓰면서 더욱 커져갔다. 나름의 자신감을 가지고 지원했지만, 결과는 번번이 탈락이었다. 처음 탈락했을 때는 '내 설명이 너무 전문적이라 심사위원이 이해하지 못했나?'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탈락 때는 '왜 이렇게 좋은 기술을 알아보지 못하지?' 하며 심사위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세 번째부터는 오기가 생겼다. '세상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피해의식까지 들었다. 실전 개발 경험만 믿고 기술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타인을 설득하려 했다. 그렇게 자존심을 꺾지 않은 채로 무작정 도전을 거듭했다. 결과는? 당연히 모두 탈락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참 오만하고 거만했던 시절이다.
오랜 파도 앞에서는 바위도 점점 매끄러워진다고 했던가. 공부를 하며 고찰의 시간을 가지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왔고 식은땀이 흘렀다.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들어가 숨고 싶을 정도였다. 결국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내가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래서 상대방을 이해시키지도, 설득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사업을 설계하는 내 입장에서는 나름 쉽게 표현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점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전혀 모르는 멘토와 파트너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리고 돌아온 답변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사업 아이템이 뭐예요?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심사위원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혹독했다. 그들은 아이템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고, 당연히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무리 화려한 내용으로 장식해도, 결국 상대방이 아이템을 이해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아이템을 어떻게 하면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던 중, 마케팅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개념을 알게 되었다. 바로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이다. 이는 큰 요구를 하기 전에 작은 요구부터 동의를 얻어내는 전략으로, 방문 영업 현장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문전박대를 당하더라도, 영업사원이 살짝 문간에 발을 넣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 순간 상대방은 자연스레 한 번 더 귀를 기울이게 되고, 영업사원은 점진적으로 대화의 문을 열어 결국 집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는 마치 연인이 처음 만나 점점 가까워지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단숨에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호감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전략을 우리 사업계획서의 PSS'T 구조에 적용해 보기로 했다. PSS'T는 '문제점(Problem)', '실현 가능성(Solution)', '스케일 업(Scale-Up)', '팀 구성(Team)'을 의미하는데, 여기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먼저 기존 양식의 가이드라인은 잠시 잊기로 했다. 대신 아이템을 머릿속에 그리며, 상대방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마치 영화를 보여주듯이 말이다. 먼저 전체 윤곽을 보여준 후, 가장 핵심적인 주요 기능 하나를 집중적으로 설명한다. 그다음 단계적으로 부가 기능들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영화로 비유하자면, 주연(핵심 기능)에 60%의 비중을 두고, 조연(주요 부가 기능)에 30%, 마지막으로 엑스트라(기타 기능)에 10%를 할애한 후, 다시 전체 그림을 보여주는 식이다. 나는 이러한 전개방식을 다음과 같이 응용해 보기로 했다.
(P) 전체구성 - (S) 주연 - (S) 조연 - (S') 전체구성
이 흐름은 마치 드라마의 구성과 비슷하다. 1회 도입부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을 짧게 보여준 후, 과거로 돌아가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방식처럼 말이다. '1. 문제 정의(P)'에서는 아이템의 전체 구성을 프리뷰로 잠깐 보여준다. '2. 실현가능성(S)'에서는 핵심 기능을 자세히 설명하고, 부가 기능을 덧붙여 아이템의 본질을 각인시킨다. 마지막 '3. 스케일 업(S')'에서는 처음에 보여줬던 전체 구성을 다시 한번 상세히 설명함으로써, 독자의 장기 기억에 확실히 자리 잡게 만든다. 이렇게 '전체-부분-전체'로 이어지는 구조는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처음에 아이템 설명 전개를 '주연-조연-전체구성' 순서로 할까도 고민했지만, 이는 마치 '장님 코끼리 만지기'처럼 부분적 이해에 그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내 사업에 기준해서 그러하다는 뜻) 그 대신 전체 그림을 먼저 보여주고, 그 안의 구성 요소들을 차례로 설명한 뒤, 마지막에 다시 한번 전체를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이렇게 하면 독자의 기억에 더 선명하게 각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단지 내 경험에서 비롯된 하나의 방법론일 뿐이다. 독자 여러분은 각자의 상황과 특성에 맞는 전개 방식을 선택하면 된다. 예를 들어, 이런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S) 주연 - (S) 조연 - (S) 엑스트라 - (S') 전체구성
이 흐름의 장점은 PSS'T 각 영역의 고유한 특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아이템을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다는 점이다. '2. 실현가능성(S)' 파트는 아이템 자체를 정의하고 설명하는 공간이며, '3. 스케일 업(S')' 파트는 사업적 관점에서 BM을 서술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주요 기능부터 차례로 설명하고 마지막에 전체 구성을 보여주는 이 흐름은 각 파트의 성격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독자 여러분도 이제 나만의 스토리 전개 방식을 구상해 보셨을 것이다. PSS'T라는 틀 안에서 어떻게 아이템을 효과적으로 설명할지, 그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아직은 전개 방식과 PSS'T 양식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고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자. 좋은 스토리텔링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미 전달력 있는 스토리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를 이해했다는 점이다. 다음 챕터에서는 이 스토리텔링 전략을 실제 사업계획서에 녹여내는 방안을 살펴볼 것이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한 가지다.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그것이 바로 모든 스토리의 시작이자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