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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May 26. 2024

사업계획서의 작성 시기와 시점

예행 사업계획서, 실전 사업계획서에 대하여



스케일업 실패 후유증


4명의 팀에서 시작해 단기간에 10~12명으로 늘어난 것에 대해 스케일업이라는 표현은 다소 어색한 감이 있다. 그러나 이들의 나이와 상황을 고려한다면, 규모를 크게 키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12명의 인원으로 크게 늘어났다가 삽시간에 5~6명으로 줄어든 경험은 이들에겐 큰 충격이었으리라.


어느 날 '강석'이 실성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노래를 부른다.



"백지영이 부릅니다. '총 맞은 것처럼'"

"총 맞은 것처럼 정신이 너무 없어 웃음만 나와서 그냥 웃었어 그냥 웃었어 그냥~♪"

"구멍 난 가슴에 우리 추억이 흘러넘쳐 잡아보려 해도 가슴을 막아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심장이 멈춰도 이렇게 아플 거 같진 않아 어떻게 좀 해줘 날 좀 치료해 줘~♬"

"구멍 난 가슴이 어느새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러~♪"


내가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치셨군요."

"파리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고, 오늘은 일찍 집에서 안정을 취하시길···"


'강석'이 대꾸한다.

"저는 모기인데요?"





믿었던 팀원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경험은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르겠지만, 그중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바로 '공허감'이다.


그 후, 부정적인 감정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자책, 서운함, 실소, 불편함 등이 그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잘못 보다는 상대의 잘못으로 화살을 돌리며 뇌는 방어기제를 작동한다. 원망, 책임 전가, 분노 등의 감정들이 나타난다. 이 모든 과정을 겪고 나서, 아픔의 눈물로 사이클이 깔끔히 마무리되면, 고요한 수렴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는 마치, 주식에서 작전 세력에게 호되게 당한 후 상장폐지된 수평 그래프와 같으리라.


시간 흐름에 따라 이들의 다양한 표정 변화를 바라보는 건(당사자는 죽을 맛이겠지만) 나에게는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하지만 보는 내내 억지로 웃음을 참는 것은 오히려 나에게 정신적 고통이었다. (불현듯 실웃음이 나오는 건 결코 냉소적인 표현이 아님을 이 자리를 빌어 사과한다.)


이렇듯 사회 경험이 없는 순수한 스타트업 팀은 실패 경험을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꽤 있다. 예컨대 팀원과의 불화, 자본금 소멸, 정부 지원사업 탈락, 악플 등이 있다. 나는 이것들을 별것 아닌 것쯤으로 치부했다. 사회는 이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들이 수없이 많다는 이유를 빌미로, 나 자신을 억누르고 살아왔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성싶다.


나는 이들의 상황과 입장을 공감하려 하지 않은 잘못을 저질렀다. 공감의 부재는 조직의 갭을 발생시키고, 결국 이것은 관성의 힘에 의해 가소성을 띠게 된다. 즉, 공감의 결여는 조직을 와해시키는 작은 씨앗이 된다. 이러한 사정을 이해한 나는, 이들의 입장을 들어보고 최대한 이해해 보려 노력했다. 그러곤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실패를 장려하는 문화로 만들어 봅시다."
"실패를 기록하여 앞으로 합류할 이들에게 공유합시다."


<생각과 판단>

실패를 장려하는 문화. 이것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함께 공존한다. 긍정적인 측면은 실패를 인정하고 그것을 철저히 기록하고 분석했을 경우, 성공으로 올라 설 기회가 높아진다. 예컨대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이스 x"의 일론 머스크 또한 로켓을 얼마나 많이 폭발시켰던가? 그러한 실패의 노하우가 쌓여 고도의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었고 자연스레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은 이와 일맥상통한다.

반면, 부정적 측면은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성공의 방정식을 체득하는 것이 성공으로 갈 확률이 높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즉, 실패는 실패의 공식만 체득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어찌 보면 이 말도 일리는 있어 보인다. 이런 면에서 "첫 단추가 중요하다"는 말은 이와 결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이 현명한 것인가?




사업계획서의 시기와 시점


실패를 크게 경험한 이들의 문제점은 회복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데 있다. 심지어 어떤 팀원은 잠수까지 해버린다. 그러곤 수개월간 폐인 생활을 이어가다가 탈퇴한다. 그에 비해, 이곳 4명('강석', '김수', '황민', '신주')은 그래도 나름 다부진 듯하다. 며칠 만에 훌훌 털고 일어났으니, 이 얼마나 대견한가? 모처럼 다시 모였으니, 전열을 가다듬고 사업 로드맵을 짜야할 시점이 듯하다.


현재는 3개('강석', '감자', '김수')의 법인으로 각각 운영되고 있다. 대표자 모두 청년의 범주에 속해 있고, 3개의 법인이 삼각형의 품앗이 형태로 놓여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된 상태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 지원사업은 성장발판의 지지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맹신하고 추종해서도 안된다. 즉, 계륵 같은 존재다.


어쨌거나, 나는 이 시점에서 정부 지원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었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하나는 정부 지원사업을 통해 사업계획서 및 PT(프레젠테이션)를 작성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또 하나는 전체 시야와 리더십을 기르는 것이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단기운영 자금이 무엇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생각과 판단>

사업계획서 작성은 시기(초기 창업 시기)와 시점(고객 결재 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예비 창업단계(1년 미만)에서 사업계획서 작성은 무의미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사업계획서의 정적 성격
사업계획서는 전략과 전술의 총체를 정적으로 표현한 문서다. 예비 창업자는 아직 사업자가 아니므로, 사업 운영 경험 없이 사업의 총체와 앞으로의 계획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즉, 핵심 고객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은 의미 없다.

2. 미래형 문서로서의 사업계획서
사업계획서는 현재 상황과 진단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기술하는 미래형 문서이다. 이는 예비 창업자들이 그럴싸하게 논리적인 글(미래형)을 작성할 여지를 준다. 그래서 심사 시 예비 창업자들의 사업계획서는 종종 허구적이지만 논리적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합격 기준을 정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것을 역으로 생각하면 합격의 기준이 된다. 이 내용은 기회가 있을 때 추후 설명하겠다.)

3. 수익 모델의 불합리성
사업계획서의 주요 항목 중 하나는 수익 모델이다. 수익 모델은 재화 및 서비스가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는지를 설명하는 항목이다. 하지만 시제품도 없는 예비 창업 단계에서 수익 모델을 작성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4. 내적 요인에 대한 고찰 필요
예비 창업 단계에서는 "나는 누구이며, 왜 창업을 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고찰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장사를 하려는 것인지, 사업을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프리랜서로 활동하려는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외부 요인인 돈에 맞춰 결과지향적으로만 나아간다면, 온전한 제품이 나오기 어려울뿐더러 창업팀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을 초래한다.

5. 프로토타입 제작의 중요성
예비 창업 단계에서는 프로토타입(시제품 전단계) 제작을 목표로 하며, 가치 제안을 통해 셀링포인트(고객이 선호하는 항목을 찾아 제품 개선)를 잡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 말은 셀링포인트를 찾아야만 최소한의 사업계획서 작성 요건에 부합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예비 창업 단계에서 사업계획서 작성법을 사전에 학습하면 좋은 점도 있다. 그것은 전체를 보는 시야와 리더십을 위한 여러 요소를 기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사업자가 없는 예비 창업자들에게는 사업계획서 및 프레젠테이션 작성 방법에 대해 사전에 학습한 후 실전에 뛰어들 것을 권장한다. (혼돈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 들어 사족을 덧 붙이면, 이것은 사업계획서 작성 예행연습이지 실전 사업계획서가 아니다. 예행연습에는 공모전 참여, 아이템 가설 후 임의 작성,  서포터스 참여, 해커톤 등이 있다.)


여기서 이해 충돌이 발생한다. 위 내용을 참조하면, 현재는 실전 사업계획서를 쓸 시점이 아니다. 순리대로라면 프로토타입을 개선하여 시제품(MVP)을 만들고 매출(or 투자 활동 병행)을 일으키는 것이 정석이다. 만약 예비 창업 단계에서 사업계획서를 수립한다고 가정하면, 이러한 사업계획서는 가설이 넘실거리는 추측 계획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심사를 해봐도 그렇다. 또한, 현실과 맞지 않는 가설 계획서를 쓴다는 것은 기회비용 측면에서 손실이 크다.


예를 들어, 정부 지원사업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고 하자. 이럴 경우, 현실성을 고려하여 철저히 작성한 사업계획서는 탈락과는 상관없이 계획서에 맞춰 사업을 운영하면 된다. 반면, 가설을 기반한 추측 계획서는 정부 지원사업에 합격하면 다행이지만, 탈락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러한 사업계획서는 실무에서 쓰임이 없고, 재활용도 안 된다. 게다가 사업계획서 작성을 위한 시간 투자까지 손실을 함께 떠안아야 한다.




우리의 현 상태를 진단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겐 현실과 미래의 합리적인 타협점이 필요했다. 결국, 팀의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 5~6개월간 버틸 수 있는 비용을 내가 투자하기로 하고, '김수' 법인은 실전 운영을 위한 활동에 보다 집중하는 방향으로 했다. '강석'의 법인은 정부 지원사업을 받기 위해 미래에 시간을 투자하는 방향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모두가 정부 지원사업에 집중해 버리면, 현실은 해결할 수 있을지 몰라도 미래는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서 3개의 법인을 각각 현재와 미래를 담당하는 포지션으로 벨런싱(현재 2 : 미래 1)을 잡고 현재와 미래의 타협점을 설정했다. 따라서 '강수'는 사업계획서를 통해 정부 지원사업에 선정돼야 하는 상황이다.


이때 '강수'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말한다.


"감자님, 정부 지원사업이 목적이라면 사업 아이템을 가설해서 지원금을 받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뭐로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거죠?"

"예비 창업가들 여럿 만나봤는데, 온통 정부 지원금이 목적이던데요?"

"실전 운영이고 뭐고, 구체적 계획은 없나 봐요. 일단 받고 보자··· 뭐 이거죠."


"반면, 제대로 사업하려는 팀은 정부 지원사업을 전혀 몰라요."

"자비 혹은 대출받아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설령 알고 있다고 해도, 미선정되면 그 시간을 누가 보상해 주냐고 딱 잘라 포기하는 팀도 있고요."


"한마디로 진영이 둘로 나뉜 듯해요."


 내가 말했다.


"맞아요. 그래서 양쪽진영(지원사업만 바라보는 그룹, 실전 사업을 하고 있지만 정부 지원사업을 모르는 그룹)을 경험해 본 나로서는 그 중간 지대를 바라본 거예요."

"대략 7(실전 운영) : 3(정부 지원사업) 비율로 활용하는 게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앞서 말했듯, 사업계획서는 시기와 시점이 존재합니다."

"'강석'님 같은 경우, 1년 미만의 예비 창업의 범주이기 때문에 사업계획서를 작성할 시점은 아니에요."

"지금 당장 팀원들과 밖에 나가 열심히 페인포인트(Pain Point)를 찾고 시장 조사하면서 아이템을 수립해야 할 시점이죠."

"그러나 리더십 역량과 단기 지원금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상황상 실전 사업계획서를 써야 할 때가 있어요."

"지금의 '강석'님과 같은 상황이죠."


'강석'이 이해가 될 듯, 말 듯한 표정이다. 내가 이어서 말한다.


"나에 대한 고찰을 하지 않고, 지원사업을 목적으로 달려가는 팀들이 상당수 존재합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에 대한 목적정체성, 그리고 의도를 상실할 가능성이 높아지죠."

"즉, 사업 아이템이 명확히 만들어지지 않고, 가설의 범주에서 임의 설정됩니다."

"물론, 운이 좋아 고객에게 인기를 얻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죠."


"반면, '강석'님 같은 경우, 저와 수개월간 '나에 대한 고찰과 비전'에 대해 토론하고 정립했죠."

"다만, 사업아이템이 설정되지 않았다는 것뿐···"

"그런데 전자와 후자는 차이가 꽤 큽니다."


"비유하자면, 전자는 지구의 인공위성이고 후자는 지구입니다."

"다시 말해, 지구(정체성)의 목적성에 맞는 인공위성(가설)을 쏘아 올릴 수 있는 것과 같아요."

"지구(정체성)가 없으면 목적에 맞는 인공위성(가설)을 쏘아 올릴 수 없는 것이죠."



"··· 방금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한 말인데요···"

"전자의 가설은 휘발이 되고, 후자의 가설은 자동차의 연료가 되는 거예요."

"즉, 같은 가설이라고 해도 '미래에 활용이 되는가? 아닌가?'로 나뉩니다."


'강석'의 눈이 풀린 표정이다. 그리곤 방긋 웃으며 말한다.


"감자님, 그냥 일단 해볼게요."

"감자님이 춤추듯 말하는 거면 뭔가 이유가 있겠죠."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는데, 100% 이해는 못 했어요."


"(감자) WHAT?"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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