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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GARDEN Nov 07. 2023

시선의 방향 3_⟨오펜하이머⟩와 ⟨난징! 난징!⟩

영화 에세이 (Film Essay)




이전 글과 이어집니다.


※ Spoiler Alert ※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장면 묘사가 많이 등장합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의 주의를 요합니다.





     VS 주인공이 곧 세계

     관객이 주인공을 인지하는 순간은 그가 맨 처음 프레임에 등장하는 순간이 아니다. 인물의 핵심적인 성격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 성격이 결국 주인공을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고, 오히려 더 깊게 개입하게 할 것을 관객은 알고 있다. ⟨난징! 난징!⟩에서 관객은 카도카와가 민간인을 죽이고 충격에 빠지는 장면에서 그를 처음 만난다. 그렇다면 ⟨오펜하이머⟩에서 관객은 언제 주인공 오피를 처음 만나게 되는가? 바로 오피가 지도 교수 패트릭 블래킷의 사과에 독을 넣었다가 다음날 정신을 차리고 사과를 버리는 장면이다.



     당시 오피는 적성에 맞지 않는 실험 물리학을 공부하며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던 그는 충동적으로 패트릭을 독살하려고 한다. 하지만 다음날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닫고 독사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패트릭의 강의실로 달려간다. 다행히 독사과는 그대로 책상 위에 있었고, 오피가 독사과를 빼앗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으로 상황은 마무리된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카도카와는 영화를 위해 창조된 허구의 인물인 반면 오피는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영화를 위해 각색된 범주와 정도를 관객(방대한 양의 사전 조사를 한 사람이 아니라면)은 알 수 없다. 결국 감독의 의도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과 영화 속 사건을 비교하는 작업이 필요해진다.



     오피가 패트릭의 사과에 독을 넣은 건 실제 사건이다. 다만 그 독이 정말 사람을 죽일 만큼의 독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또한 사과를 버린 게 오피인지, 청소부인지, 혹은 다른 학생인지도 알 수 없다. 패트릭이 먼저 알아차리고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즉, 하나의 진실이 아니라 많은 버전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놀란 감독은 그 많은 버전 중에서 오피의 자발적 선택이 강조되는 버전을 골랐다. 그리고 관객에게 오피라는 인물을 보여주는 첫 번째 사건으로 이를 위치시킨다. 덕분에 관객은 오피가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으나, 윤리적인 선을 넘는 인물은 아닐 거라고 판단할 수 있다. 게다가 이 독사과 사건은 닐스 보어가 오피에게 이론 물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 괴팅겐 대학으로 넘어갈 것을 권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살인 미수는 해프닝쯤으로 축소되고, 윤리적 판단은 그에게 보상을 가져다준다. 관객이 주인공에게 호감을 느끼도록, 그리고 그 호감을 바탕으로 주인공 행동에 대한 가치 판단을 유보하는 호의를 보이도록 장치하는 것이다. 



     만약 영화의 주인공이 비호감이라 관객의 반감을 산다면 남은 시간 동안 극을 끌고 가는 게 얼마나 버거울지 상상해보라. 그래서 주인공의 성격 중 호감이 될 만한 부분을 이야기 초반부에 배치하는 건 시나리오의 기본 작법 중 하나다. 허구의 세계라면 문제 될 게 없는 당연한 작업이다. 하지만 현실의 오피가 이 사건으로 살인 미수 혐의를 받고 정신질환 치료도 받아야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조작성은 불편해진다. 영화라는 조작된 현실이 프레임 바깥의 현실과 충돌한다. 이상적인 시뮬라크르로서 영화는 현실을 강화하고, 현실은 영화를 강화해야 마땅했으나 이 경우 둘은 상충할 뿐이다. 

     ⟨오펜하이머⟩가 주인공과 세계를 그려내는 방식을 보면, 설령 오피에 대한 정보를 모른다고 해도 그 조작성은 감지할 수 있다. 오피를 제외한 다른 개인들의 정보를 지나치게 배제하고(혹은 평면적으로 묘사하고), 한 사람의 자아만 비대하게 보여주는 선택은 진위를 의심하게 만들어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오피가 만든 첫 번째 독사과는 누구도 해치지 않고 미수에 그쳤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 낸 두 번째 독사과는 대량 살상 무기로 전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놀란 감독은 오피가 처한 세계와 그가 그런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 묘사하지 않는다. 오피가 겪는 감정만이 세계로 표출되어 넘실거릴 뿐이다.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은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 자신이 곧 세계다. 


     놀란 감독은 어떤 이유로 그렇게까지 오피의 감정에 집중한 걸까? 영화는 스스로 그 답을 도출해 내는 데 성공했을까? 주인공의 주변부를 통해 각 작품의 의도에 더 가까이 다가가 보도록 하자.








To be continued →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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