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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GARDEN Nov 04. 2023

시선의 방향 2_⟨오펜하이머⟩와 ⟨난징! 난징!⟩

영화 에세이 (Film Essay)




이전 글과 이어집니다.


※ Spoiler Alert ※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장면 묘사가 많이 등장합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의 주의를 요합니다.






     주인공이 보는 세계

     ⟨난징! 난징!⟩의 주인공은 일본군 ‘카도카와’다. 영화는 카도카와가 누워서 태양을 응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어딘가 꿈결에 잠긴 표정이다. 멀리서 카도카와를 부르는 병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카도카와의 표정이 현실로 돌아온다. 지금은 전시(戰時)다. 그는 허리를 굽히고 참호를 걸어간다. 그 뒷모습을 카메라가 따라가고, 관객은 자연스럽게 이야기 안으로 진입한다.

     난징 방어 사령관인 당생지가 도망가자, 일본은 손쉽게 난징을 점령한다. 일본군은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난징을 수색한다. 그때 일본 병사 한 명이 궤짝으로 버려져 있는 음료수를 발견하고 곧바로 입부터 가져다 댄다. 소위인 ‘이다’가 함정일 지도 모른다며 주의를 주지만, 뒤따라오던 부사관 카도카와는 병사와 함께 허겁지겁 음료수를 열어 마시기 바쁘다. 다른 병사들도 카도카와를 따라 눈치 보지 않고 음료수를 마신다.

     달그락거리는 음료병 소리에 결국 이다가 뒤를 돌아본다. 뭐 하는 짓이냐는 직속상관 이다의 꾸지람에도 카도카와는 “맛있어서…”라고 대답하는, 어딘가 조금 얼빠지고 순박한 청년이다. 특유의 맑고 유한 성격 덕분인지 그는 병사들은 물론이고, 포악한 데가 있는 직속상관 이다와도 잘 지낸다. 그래서 카도카와는 이 전쟁통에 어울리지 않는다.


노래하는 병사들. 카메라를 보고 있는 인물이 '이다', 그의 우측에 눈을 감은 인물이 '카도카와'다.


     극초반, 카도카와는 성당을 수색하던 중 난징의 민간인들이 앞을 막아서자, 고해성사실을 향해 위협사격을 한다. 그런데 비어있을 줄 알았던 고해성사실에서 총에 맞은 여성들이 쏟아진다. 카도카와를 막아섰던 민간인들은 여성들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그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다. 카도카와의 정신에 첫 번째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다.

     일부러 쏜 게 아니라는 한 병사의 중얼거림과 대조적으로 카도카와는 방금 자신이 죽인 사람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패닉에 빠진 카도카와와 울부짖는 여성들이 번갈아 보여진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이 비극적인 상황이 카도카와의 시선에서 그려지고 있음을 인식한다. 넋이 빠진 채 비척거리는 카도카와를 병사들이 겨우 끌고 가며 상황이 마무리된다.

     카도카와라는 캐릭터의 비범한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비극에서 눈을 돌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이 설령 전시(戰時) 중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타고난 성품이 그러하다. 이 성품이 결국 카도카와를 궁지로 몰아갈 것을 관객은 직감한다.





     영화가 그려내는 카도카와의 시선은 시간이 흘러 비극이 누적될수록 더 깊어진다. 극의 후반부, 일본 병사들이 모여 정답게 사랑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악인임이 분명한  ‘이다’ 역시 함박웃음을 지으며 장단을 맞춘다. 카도카와도 모처럼 소소한 행복을 마주한 표정이다. 그때 그들 뒤로 두어 사람이 수레를 끌고 지나간다. 카도카와는 수레를 바라보고, 이다는 그런 카도카와를 바라본다.

     카도카와는 무리를 벗어나 수레를 따라간다. 화면의 왼쪽 끄트머리, 그것도 아주 전경(前景)에 그의 머리통만이 슬쩍 보인다. 중경(中景)과 후경(後景)에는 일본 병사들이 대여섯 명씩 무리를 지어 담배를 피우고 떠들며 밥을 먹고 있다. 병사들 사이에 난 길로 조용히 지나가는 수레를 카메라가 따라간다. 수레가 건물 앞에 멈춰서자, 수레를 따라 걷던 카도카와가 다시 전경에 나타난다. 카도카와가 걸음을 멈추면 카메라도 함께 멈춘다.


     그는 여전히 화면 왼쪽 끝에 있고 관객에게 등을 돌린 상태다. 카도카와 뒤통수에 초점을 맞추어 얕은 심도로 촬영한 탓에 중경과 후경에 위치한 수레와 병사들이 흐릿하게 보인다. 수레를 끌던 사람들이 건물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의 시체를 가지고 나오는 일도 그 흐린 화면 안에서 벌어진다. 유난히 새하얀 여자의 몸이 짐짝처럼 수레에 던져진다. 카메라는 축 늘어진 여자의 팔만을 가까이에서 보여준다. 바로 그 순간 카도카와의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 화면 가득 담긴다. 동시에 시종일관 들리던 무리의 경쾌한 노래가 끝나고 박수가 터져 나온다.

     창백한 몸이 하나, 둘, 계속 쌓여간다. 수레가 시체를 가득 싣고 조금 전 지나왔던 길을 힘겹게 돌아가면, 길 양쪽에 자리한 일본 병사들이 잠시 수레를 보는 듯하다가 이내 고개를 돌린다. 카도카와만이 길 한가운데까지 걸어와 이 모든 광경을 목격한다. 그의 시선에는 언제나 전우인 병사들과 무고한 난징의 민간인이 함께 걸린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어느 소속의 사람인지를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





     이런 연출이 여러 번 반복된다. 처음에 관객은 비극을 목격하는 카도카와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비극을 목격하고 있는 카도카와라는 개인을 목격한다. 자주 초점을 바꾸며 옮겨 다니는 카메라처럼, 관객의 인지 역시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카도카와라는 인물로 계속해서 초점을 옮겨 다닌다.


     ⟨난징! 난징!⟩은 카도카와 외에도 많은 인간 군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국적도 입장도 다양하다. 일본군 소위, 일본군 병사들, 도망친 중국군, 맞서 싸우는 중국군, 독일인과 미국인, 난징의 민간인들, 독일인의 비서인 중국인, 난징에서 매춘을 하던 중국 여성들, 위안소에 있는 일본 여성, 영어를 할 줄 아는 일본의 통역관 등등.

     그러나 그 많은 인물 중에서도 루 추안 감독은 일본군 병사 카도카와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카도카와는 가해국의 병사지만 양심이 선명하게 살아있어 고통받는 인물이다. 그는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고 또 동시에 목격자이다. 개인으로써 가장 입체적인 자리에 서는 것이다.


     루 추안 감독이 만들고자 한 영화가 항일(抗日) 영화가 아닌 반전(反戰) 영화라는 사실이 이러한 주인공 선택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

     그는 진영 논리를 지우고, 전쟁이라는 상황에 놓인 각 개인에게 집중하고자 끝없이 노력한다. 일본이 여전히 난징 대학살을 인정하지 않고 축소하려 함에도, 피해국의 감독이 자국의 참담한 역사를 그리는 영화에서 가해국에 먼저 연민의 시선을 보냈다는 점은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미시적인 차원, 즉 개인의 영역에 가까워질수록 국경이 얼마나 희미해질 수 있는지, 정치와 대의가 얼마나 희미해질 수 있는지에 감독은 집중한다.

     진영 논리 이전에 개인이 있다. 그 사실을 명확하게 조명하기 위해 감독은 영화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그렇다면 ⟨난징! 난징!⟩의 주인공을 감싸고 있는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이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오펜하이머⟩의 주인공도 살펴보도록 하자.







To be continued →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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