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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GARDEN Oct 31. 2023

시작하며(3/3)_사랑해야 한다

영화 에세이 (Film Essay)

    





    사랑해야 한다

     빨강이 나를 사랑한 이유는 그와 내가 닮아서였다. 내가 슈슈를 만난 것도 그와 내가 닮아서였고. 슈슈를 사랑한 건 덜컥 그를 이해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사랑과 이해는 우로보로스의 머리와 꼬리 같아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먹으며 맴맴 원을 그렸다. 당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싶었다. 온전히 이해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어서, 그건 앞으로도 내가 영영 해줄 수 없는 일이어서, 세계의 무수한 밤은 애달파 까맣게 익고 익다가 떨어졌다. 당신을 이해하지 못해서 우는 순간에도 내가 아는 건 고작 나의 괴로움뿐이었다. 존재의 비참함은 도무지 깨지지 않는 견고한 자아에서 비롯한다. 나는 너일 수 없고, 너는 나일 수 없다.

     그런 생각은 종종 우리를 아주 쉽게 냉소적으로 만든다.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하게 한다. 타인을 공격해서 유리한 자리를 선점하려는 이들도 있다. 얄팍한 관계들이 곰팡이처럼 몸을 뒤덮는다. 외로움에 대한 공포는 사람을 일종의 공황에 빠뜨린다. 


     그럴 때 나는 존재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사람의 설계 방식을 곱씹는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이를 생각해 보자. 그 아이는 자신의 정신적 자아는 물론이고 신체적인 자아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아이는 자신을 보는 보호자를 통해 조금씩 세계와 자아를 인식해 나간다. 이후에도 다양한 환경과 사람들을 겪으며 스스로를 재정립한다. 인생은 이 행위의 무한한 반복이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고, 나를 알 수 있는 것도 나 자신뿐이다. 하지만 내가 나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조우가 필수적이다. 자아에 대한 인식은 타자와의 부딪힘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관계 안에 있을 때 비로소 개별자로 존재할 수 있다. 혼자서도 충분히 괜찮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래서 어리석다. 너 없이는 나도 없고, 내가 없으면 너도 없다.


     특히 사랑은 개별자들을 강력하게 충돌시킨다. 그 사랑의 부딪힘이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존재하게끔 돕는다. 사랑에 빠진 사람을 떠올려 보라. 그를 잘 아는 친구들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전혀 다른 인간이 되지 않던가. 한때 어리석다고 타매했던 일도 사랑에 빠지면 얼마든지 대수롭지 않게 행할 수 있다. 기이할 정도로 친근하게 느껴지는 타인을 통해 놀랍도록 낯설고 생경한 자신과 마주한다. 그 알아차림은 가슴 벅차게 행복하고 경이롭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면 기쁘고 즐거운 것처럼, 우리는 스스로를 알아차릴 때 생각보다 훨씬 더 큰 행복을 느낀다.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은 행복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냥' 좋아하는 거 말구요

     누구보다 행복하고 싶은 나는 무엇도 ‘그냥’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으려 한다. 사람도, 사물도, 영화도, 책도 ‘그냥’ 좋아하는 건 속상하도록 게으른 일이다. 무언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건,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서로 사랑하게끔 설계된 인간 존재의 가장 아름다운 지점을 포기하는 행위다.


     ‘그냥’을 믿지 않는 작업을 영화로 시작하려 한다. 내가 어떤 영화를 왜 좋아하는지 탐구해 나갈 것이다. 우연히 영화와 관련된 전공을 졸업했고, 남들보다 많은 영화를 봤다. 그러나 쉬이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건 그간 영화를 게으르게 대한 나 자신을 알기 때문이다. 영화 앞에 떳떳해지고 싶다. 영화를 사랑할 준비가 됐다. 그러니 이 탐구 작업은 가장 먼저는 영화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다. 절절한 짝사랑이 아니기를 빈다.


     두 번째로 이 작업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의 수단이다. 나는 제법 오랜 시간 구원자가 나타나서 내 존재의 구멍을 메워주기를 바랐는데, 최근 몇몇 사건을 겪으면서 그런 구멍이 애당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들었다.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무엇을 이루고 싶어 하는지, 어떤 일들을 괴로워하는지 등등, 나는 나를 무척 잘 알고 있으면서도 허튼 기대에 빠져 많은 가시밭길을 걸었다. 필요한 과정이었다지만 지나친 반복 학습은 지양하자.

     무엇보다 내가 나로 살기 위해 노력할 때, 당신이 당신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들이는 필사의 노력을 전심으로 지지할 수 있다. 내가 너일 수 없고, 네가 나일 수 없는 사실에 아파하는 건 이제 지겹다. 새로운 꿈을 꾸자. 나는 나 자신으로, 당신은 당신 자신으로, 그렇게 온전한 두 개인이 손을 마주 잡고 걸어가는 꿈이다. 어쩌면 그게 사랑의 최종적인 형태일 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사람들이 이 글을 읽게 될지 무척 궁금하고 설렌다. 일기장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공간에 글을 쓰는 건 타자의 세계를 두드리고 참여를 청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궁금하다. 내가 나를 궁금해하는 만큼 그렇다. 영화를 향한 사랑 고백이자 사랑의 실천이며, 나에 대한 탐구이고, 당신이 당신으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이 전심의 지지가 부디 잘 전달되기를.




Fin.


* 이미지 출처: 네이버 도서

* 소제목으로 사용한 '사랑해야 한다'는 에밀 아자르의 장편소설 ⟪자기 앞의 生⟫의 마지막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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