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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GARDEN Nov 11. 2023

시선의 방향 4_⟨오펜하이머⟩와 ⟨난징! 난징!⟩

영화 에세이 (Film Essay)



이전 글과 이어집니다.


※ Spoiler Alert ※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장면 묘사가 많이 등장합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의 주의를 요합니다.




     

     세계의 모습

      누구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는가? 관객에게 그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앞서 보았듯, 이 질문에 대한 ⟨난징! 난징!⟩의 답변은 영화의 발언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시선의 방향 2’ 참고). 감독은 카도카와라는 주인공을 통해 진영 논리를 지우고 고통받는 개인에 집중한다. 이런 태도는 세계를 축조하고 보여주는 방식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화의 도입부로 돌아가 보자. 일본이 난징을 점령했다는 정보가 관객에게 제공된다. 주인공 카도카와가 참호를 걸어가고, 난징을 공격하는 대포들이 보인다. 중국군이 난징 성문을 굳게 지키고 섰다. 그들 앞에 우레 같은 군화 소리와 함께 무장한 병사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 역시 중국군이다. 중국군과 중국군이 대립한다. 



     영상이 흑백인 탓에 관객은 대사에 더 의존해서 상황을 인식한다. 다수의 중국군은 사령관이 도망쳤으니 자신들도 이곳을 나가겠다고 소리친다. 소수의 저항군이 명령 없이는 후퇴도 없다며 그들을 막아선다. 생존의 기로 앞에서 진영은 이미 망가졌다. ⟨난징! 난징!⟩이 선택한 흑백의 힘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발휘된다. 동포는 기어이 동포의 얼굴을 밟는다. 돌무더기와 흙더미로 막아둔 성문의 꼭대기, 한 줄기 빛을 향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드민다. 영화는 색(色)을 잃고 뒤엉킨 개인들을 묵묵히 관찰하고 기록한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도망치는 이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는가? 남기로 결정한 이는 무엇을 지키고자 남았는가? 그들은 왜 그래야만 했는가, 낮은 소리로 되물을 뿐이다.





4:3 / 16:9 / 2.35:1 화면비 *⟨플라워 킬링 문⟩


     폐허가 된 도시의 황량한 풍광이 2.35:1의 가로가 긴 화면비에 담긴다. 주변부가 훤히 보임에도 시종일관 답답한 느낌이 드는데, 이는 카메라가 도무지 하늘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러닝타임 내내 하늘이 제대로 등장하는 건 도입과 엔딩 두 번에 불과하다. 이런 연출은 난징에 있는 사람들이 국적과 지위를 막론하고 모두  전쟁이라는 비극 안에 갇혀 있음을 시사한다. 동시에 이 비극이 하늘과 무관한 땅의 이야기, 즉 인류가 자처한 비극임을 정확하게 천명한다. 


     ⟨난징! 난징!⟩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은 이름 없는 개인의 얼굴이 미디엄샷으로 잡히는 모습이다. 흑백의 인물 사진을 본 적이 있다면, 흑백에서 무명의 얼굴이 눈빛으로 자아내는 감정이 얼마나 짙고 강렬한지 알 것이다. 사람의 눈이란 참으로 선명한 흑과 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필두로 피사체의 눈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진실을 가지고 렌즈 너머의 타인을 응시한다. ⟨난징! 난징!⟩은 바로 그 무고한 눈빛들이 지르는 고요한 비명으로 가득 차 있다.






     한편 피해자들의 맨살은 유난히 희다. 햇빛을 비추면 속이 보일 것처럼 기이하게 희다. 도자기 같은 몸은 어느 순간 힘없이 축 늘어져서 더욱 사람의 것 같지 않다. 이는 앞서 말한 얼굴을 연출하는 방식과 무척 대조적이다. 두 방식이 번갈아 나올 때 얼굴과 몸은 더 이상 같은 유기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화면을 가득 채운 얼굴과 형형한 눈은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선연하게 살아 숨 쉬는 개별적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지만,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새하얀 몸은 대수롭지 않게 취급되는 이질적인 물건으로 보일 뿐이다. 이런 간극이 인지부조화를 일으킨다. 도대체 사람이라는 게 어떤 존재였지? 관객은 모종의 혼란스러움을 느끼다가 인간다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한다. 영화는 분절되고 낯설어진 개인의 신체를 통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난징 민간인들의 참담한 현실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 그리고 명백한 무죄를 드러낸다.



     이처럼 ⟨난징! 난징!⟩의 감독은 집요하게 개별자를 좇는다. 개별자 간의 부딪힘은 곧 인간성 간의 부딪힘이다. ⟨난징! 난징!⟩이 그려내는 전쟁의 공포는 비인간성이 어떠한 제재 없이 인간성을 물리적으로 압제하면서도 그런 만행을 천연스럽게 합리화한다는 데에 있다. 이는 추후 다룰 주요 인물 간의 갈등을 통해 더 살펴보도록 하자. 

     영화가 주인공 설정과 세계를 축조하는 방식, 각 인물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모두 일관된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쌓여갈수록 발언은 강화된다. 현상이 더욱 다면적이고 다층적으로 변모하면서 밀도는 높아진다. 


     그렇다면 ⟨오펜하이머⟩가 세계를 축조하는 방식은 어떨까?







To be continued →


* 이미지 출처: IMDb, 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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