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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GARDEN Nov 18. 2023

시선의 방향 6_⟨오펜하이머⟩와 ⟨난징! 난징!⟩

영화 에세이 (Film Essay)



이전 글과 이어집니다.


※ Spoiler Alert ※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장면 묘사가 많이 등장합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의 주의를 요합니다.






     당신의 적은 어떻게 생겼는가?

     ⟨오펜하이머⟩는 한 인물에 대한 깊은 이해를 추구하는 영화가 아니다. 대량 살상 무기의 개발 및 사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영화도 아니다. 서사의 형태로 본 바 ⟨오펜하이머⟩의 핵심은 정치다. 


     이야기는 오피의 청문회로 시작해서 스트로스의 청문회로 끝난다. 오피 VS 스트로스라는 대립 구도가 서사를 움직인다. 관객의 흥미는 자연스럽게 이기고 지는 문제로 귀결된다. 영화의 엔딩이 스트로스의 패착을 다루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스트로스는 과연 마땅한 응징을 받을 것인가?’ 하는, 러닝타임 내내 쌓아온 권선징악에 대한 관객의 기대 심리를 엔딩에서 보상해야 한다. 아무리 원자 폭탄 개발 과정을 다루고, 오피 내면의 갈등을 다루었다고 해도 영화의 배경은 정치 세계인 것이다. 컬러와 흑백으로 진영을 만들어 대립각을 세우고, 선한 쪽과 나쁜 쪽을 구분하는 영화의 태도마저 정치적이다.



     ⟨오펜하이머⟩라는 정치 드라마에서 스트로스는 오피의 적대자다. 스트로스가 오피에게 갖는 개인적 원한이 사건을 만들어 내고 서사를 움직인다. 대결 구도를 더 첨예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야기에서 그가 차지하는 무게는 오피와 대등해야 한다. 주인공의 라이벌이 얼마나 다면적이고 납득할 만한 인물인가에 따라 갈등의 강도가 결정된다. 주인공을 응원하던 관객이 그의 라이벌을 이해할 때 드라마는 심화된다.


     그러나 ⟨오펜하이머⟩에서 스트로스는 지극히 평면적인 인물로 다루어진다. 열등감을 이기지 못하고 개인적 원한을 앞세워 정치 모략을 세웠다가 몰락하는 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스트로스는 이야기를 진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비중으로 단순하게 존재한다. 그래서 그는 살아 숨 쉬는 개인이라기보단 극을 위한 도구에 가깝다. 개인을 살아 숨 쉬게 만들지 못하면 세계가 그들을 집어삼킨다. 이 경우 세계는 오피라는 인물을 혼란스럽게 뒤섞어 신화적으로 포장한 것과 동일한 세계, 즉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세계다.



     놀란 감독이 오피의 이야기를 오늘날, 이 시점에 불러온 이유가 정치에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영화가 집중적으로 표현한 것이 오피의 내면이기 때문이다. 오피의 대척점에 스트로스라는 부족한 라이벌을 두고 서사를 진행했지만, 영화 내용 대부분은 오피의 감정 표출로 채웠다. 정치 드라마라는 하드웨어에 전기(記) 영화라는 소프트웨어를 넣은 셈이다. 이런 형태는 나아갈 방향을 하나로 특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힘을 약화할 수밖에 없다.


     오피의 갈등과 후회로부터 이어지는 ‘오펜하이머 모멘트’를 다루고 싶었다면, 오피의 적대자는 필히 오피 자신이어야 했다. 오피의 선택 이전 세계와 이후 세계가 더욱 섬세하게 무게를 가지고 그려졌어야 했다. 오피가 내린 결정에 어떤 가치관이 작용했는지 집요하게 파헤쳤어야 했다. 영화는 그 모든 일에 집중하기보다 변칙과 변주를 찾아다녔으므로 결국 감독의 자아만을 남겼다. 오피의 이야기는 많은 논의를 끄집어낼 ‘소재’로 그쳤고, 감독의 손에서 관객의 손으로 넘어왔어야 할 오롯한 하나의 질문은 간데없다.


     그렇다면 ⟨난징! 난징⟩이 그리는 적(敵)의 초상화는 어떤 모습일까?







To be continued →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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