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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GARDEN Dec 03. 2023

[시 詩] 오일장

자유 작문 Free Composition

 




 오일장






  고향이 없어 타향도 없는 여자는

  걸을 때 그림자 밟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발목이 없는 모양이라고

  가을 나무들이 마른 입술을 떨구어

  뿌리에게 속삭였다.


  땅은 언제나 나무들의 것이었고,

  여자와 나무는 사이가 나빴다.

  그러니 고목(枯木)으로 죽진 않으련다. 


  여자의 유언이었다.

  그날부터 엄마는 세 시의 햇발에 조금씩 녹았다.

  이따금 볕이 강한 날엔

  가일층 사지가 투명하게 반짝이고 

  잎맥만 훤했다.


  어깨에 둘러멘 시장바구니 

  대신 들면 우리 엄마는 더 가벼워질까,

  헐레벌떡 세 시의 볕을 따라잡는 걸음마다

  낙엽 소리 요란해서

  나는 오늘 내 발목이 부끄럽다

 

  미소도 눈물도 날로 투명해지니

  애이불상(哀而不傷)이라,

  가을 나무가 얄밉게 속삭였다.


  장(場)이 파하던 날 엄마는 기어이 가뭇없어졌고

  나는 문득 나의 발목에서 잎맥을 본 것도 같았다.








 Fin.


* 애이불상(哀而不傷): 슬퍼하되 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슬퍼하더라도 지나치게 해서 몸과 마음이 상할 정도에 이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출처: 두산백과]


* 글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고향'이었어요. 열 명의 사람이 1시간 동안 각자 글을 쓰고, 2시간 동안 합평을 나눴습니다. 자유로운 글쓰기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어준다는 걸 매번 느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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