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전반을 같이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환상 대신 편안함이 자리한다. 환상은 '깨어짐'과 친밀한 반면 편안함은 '누적 및 강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이나와 나도 지금처럼 편해지기까지 여러 번 깨어짐의 단계를 거쳤다. 연애 초반, 아직 모든 걸 오픈하고 싶지는 않았던 때의 일이다. 그날, 이나는 서울에서 저녁 약속이 있었다. 친구 집에서 하루를 묵고 우리 집으로 넘어올 계획이었는데, 짐이 너무 많아서 짐만 먼저 두고 가도 되겠느냐고 연락이 왔다. 회사에서 근무 중이던 나는 이나가 보낸 사진을 보고 경악했다. 이 건장하고 씩씩한 사내는 나랑 같이 영화 볼 때 쓰겠다며 커다란 TV 모니터를 챙겨서 지하철을 탄 것이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일주일 정도 지낼 옷가지와 작업할 노트북은 기본 옵션이었고, 나중에 보니 어디서 전기 포트도 튀어나왔다.
나는 출근 전에 마지막으로 봤던 내 방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엉망으로 벗어놓은 속옷과 잠옷, 쌓여있는 옷가지, 널브러진 헤어드라이어와 고데기… 내가 설거지를 했던가… 아니 했을 리가… 나도 모르게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한숨을 쉬자, 옆자리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듯 안부를 물었다. 괜찮다며 웃어 보였으나 가슴이 갑갑했다. 같이 즐겁게 지낼 시간을 생각해서 저 무거운 짐을 들고 오는 사랑스러운 남자 친구에게 내 이미지 관리가 필요하니까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나는 집이 엉망이니까 현관에 짐만 내려놓아 달라고 애원했다. 이나는 웃으며 알겠다고 했지만, 잠시 뒤 온 연락은 나를 절망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자기야, 내가 진짜 안 보려고 했는데, 현관문 여니까 그냥 다 보이던데…? 그래서 그냥 방에 두고 왔어.”
그야말로 내 밑바닥을 다 드러내 보인 날이었다. 물론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훨씬 서로가 편해졌다. 허물을 숨기고 만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후폭풍도 세지는 법이니, 불시에 덜컥 들킨 게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당시 이나가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의 심정이란… 아,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이런 치부는 조금 더 늦게 공개해도 괜찮지 않았냔 말이다! 그렇다. 환상을 깨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를 요구한다. 물 엎지르듯 일이 벌어져 버렸다면, 동지여, 우리 그냥 마음 비우고 축배나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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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매번 데이트 뭐해?” 질문을 한 친구는 매주 데이트 일정을 짜는 걸로 제법 골머리를 앓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나와 나는 마땅히 해 줄 말이 없어서 목을 긁적였다. 우리는 순도 99% 홈 데이트 파이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을 시켜놓고, 함께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두런두런 떠드는 게 우리의 가장 즐겁고, 질리지 않는 데이트 방식이었다.
애당초 우리는 영화를 보는 소모임에서 만났다. 처음 따로 만났을 때도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보러 갔다. 나중에는 아예 공간을 대여해서 큰 화면으로 인생 영화를 보면서 가까워졌다. 그런데 매번 영화를 보겠다고 공간을 대여하려면 비용이 상당했다. 심지어 애니 같은 경우 우리는 시즌 서너 개도 우습게 해치웠다. 퇴근하자마자 야식을 차려놓고 새벽까지 애니를 보다가, 이제 진짜 자야 해 하고 누워서는 한 시간쯤 더 떠들고 나서야 겨우 잠들었다. 그렇게 며칠을 들여서 작품의 완결까지 함께하는 건 홈데이트여야 가능했다. 영화 한 편을 봐도 영화관에서 보는 것과 집에서 깔깔 웃고 대화하며 보는 건 전혀 다른 활동이었다. 명장면을 돌려보면서 박수를 치고 눈물을 흘리는 건 집이라야 하는 것이다.
매번 집에만 있으면 갑갑하지 않으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여행 욕구가 전무하다. 만약 주말마다 어딘가 낯선 장소로 훌쩍 떠내야 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얼마나 서로가 피곤했을지,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여행은 중원과 판타지 세계로도 충분하다는 게 이나와 나의 공통 입장이라 천만다행이다. 물론 외출할 때도 있다. 영화관, 만화카페, 전시회, 어디든 콘텐츠가 있는 곳이면 즐겁다. 쉬는 날에 각자 원고를 하나씩 끝내놓고 심야 영화를 보는 건 또 얼마나 뿌듯하고 즐겁든지. 영화가 끝나고 살랑살랑 밤거리를 걸으면 이상하게 에너지가 차올라서 곤란했던 적도 많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서 더 재잘거리다가 해가 뜨기 전에야 겨우 잠드는 데이트, 최고이지 않은가. 갑자기 거주 공간이 사라지거나, 세상의 모든 콘텐츠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우리의 데이트 아이디어가 고갈될 일은 없을 것이다.
최근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이런 데이트에 대한 만족도는 나보다 이나가 훨씬 높은 듯하다. “자기는 ‘좋다’라고 부드럽게 표현하지. 내 입장에서 말하잖아? 그냥 만족도 극!상!이야.” 한껏 과장해서 팔을 벌리며 스타카토로 소리치는 이나를 보자 또 웃음이 터진다. 이나는 콘텐츠를 좋아하면서부터 줄곧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타인과 함께 즐기고 싶어 했다. 하지만 본인만큼 작품을 즐겨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더 이상 타인에게 작품을 권하지 않을 때쯤 나를 만난 것이다. 나는 누군가 작품을 추천하면 꼭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라도 보는, 상대의 취향을 듬뿍 흡수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사랑하는 짝꿍의 추천 작품이라니. 얼마든지 시간과 감정을 투자할 용의가 있다. 이나는 자신이 추천한 작품을 내가 진심으로 즐겨줄 때 뿌듯함과 보람을 느낀다. 내가 침대에 누워서 이나의 추천 웹툰을 보고 있으면, 이나는 옆에 누워서 그런 나를 구경한다. 감정표현이 풍부한 내가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울고 웃는 게 번번이 신기한 모양이다.
나는 원래도 가리는 콘텐츠가 거의 없었지만, 이나를 만나면서 취향 폭이 훨씬 넓어졌다. 특히 애니 작품 수가 늘었고, 무협 관련 만화와 각종 웹소설 분야가 신설됐다. 취향 자체가 이나 쪽이 훨씬 대중적이라서 다수의 감각을 익히는 게 용이했다. 영화만 해도 나는 예술 영화(아트 필름)를 선호하는 편인데, 이 영화들은 대개 이나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래도 이나는 뭐든 나와 보는 게 즐겁다며 기꺼이 시간을 투자했다. 재미없는 영화였다고 해도 열과 성을 다해 떠들어주었다. 그러면서 이나는 아트 필름에 제법 익숙해졌다. 아트 필름만 상영하는 극장들과 그곳의 에티켓을 알게 됐다. 또 영화를 고를 때 박스오피스 순위나 배우 대신 감독이나 제작사를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집 안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하는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백 쌍의 커플이 있으면 100개의 생활 양식이 존재하는 게 당연하다. 반동거, 동거, 결혼, 각자 생활, 어떤 형태이든지 또 남들이 거기에 뭐라고 이름 붙이든지 간에, 둘에게 좋은 방식이면 충분하다. 그러니 오늘도 미숙 씨는 “우리 딸이 행복하면 됐어~. 엄마는 그게 제일 중요해~.”하며 웃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정말 정말 이런 일상이 즐겁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