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여름이나
우리는 정말 다른 인간이야.
이나와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앞선 에피소드들에서 짐작했겠지만, 우리는 생활 습관부터 살아온 배경, 작업 방식, 작품 취향까지 양극단에 위치할 만큼 차이가 크다. 나는 한 번쯤 이 차이를 시각화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온 게 ‘닮음지수, 다름지수’ 기록표다. 던 리스트에서 봤다시피 내가 이런 걸 참 좋아한다.
기록표의 크게 여섯 개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1. 가치 찾기
2. MBTI
3. 관심사
4. 유튜브 구독 채널
5. 문화 취향
6. 버킷리스트
순서에 따라 기록을 마친 다음, 표를 보면서 우리가 몇 퍼센트 정도 닮았고, 몇 퍼센트 정도 다른지 논의했다. 우리는 닮음지수 35%, 다름지수 90%로 최종 협의를 마쳤다. 서로가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표로 작성하자 3번부터 6번까지는 충격적일 정도로 차이가 컸다. 반면 1번 가치 찾기 파트는 오히려 공통 분모가 훨씬 큰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 이나와 내가 잘 지내는 이유가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
여름: ①사랑 ②자유 ③감사 ④호기심 ⑤아름다움
이나: ①사랑 ②감사 ③소통 ④자유 ⑤건강
우리는 사랑하고 감사할 줄 아는 게 행복을 위한 기본 소양이라는 데에 마음 깊이 동의한다. 그리고 사랑과 감사를 바탕으로 한 자유야말로 모든 이들이 누려야 할 권리라고 믿는다. 주된 가치관이 비슷하면 일상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화로 타협점을 찾기가 수월하다. 만약 ‘명예, 권력, 승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안전, 소속감,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만난다면, 그들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디에 초점을 맞춰서 어떻게 해결할지 조율하기 위해 극심한 난관을 겪을 것이다. 반면 관심 분야(3~6번)가 극명히 다르다는 건 다양성과 포용력을 길러줄 수 있다. 나와 이나를 하나의 점으로 생각하고 이 두 점을 연결했을 때 그려낼 수 있는 범위가 넓을수록 우리의 세계는 다양해질 터였다. 극명하게 다른 두 별이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 다르지만 닮았고, 닮았지만 다르다. 그 필연적인 간극에 인생을 현명하게 살아낼 수 있는 어떤 돌파구가 있는 게 아닐까.
***
결혼과 출산에 대한 문제 하나만 놓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제각기 입장이 다르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나처럼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상대가 원할 시 고려해 본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나처럼 결혼과 가정을 꾸리는 게 삶의 당연한 과정 중 하나인 사람도 있다. 좀 더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위해 지금은 누굴 만날 생각이 없다는 사람. 비혼을 지향하는 사람. 결혼도 출산도 원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이 몇 년째 없다는 사람. 결혼했지만 출산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사람. 결혼을 원하지만 법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사람. 결혼 생각은 없으나 출산에는 마음이 큰 사람 등등. 심지어 같은 선택지를 고른 사람이라고 해도 각자 이유를 들어보면 수십 갈래로 나누어진다.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공통 가치가 있던 시대가 신기하게 느껴질 만큼 사람은 각양각색이다.
그리하여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란 나의 이야기뿐이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내 곁에 있는 이들이 걸어가는 길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소담하고 보배롭다는 사실을 되새긴다. 통계청 사이트에 들어가서 혼인율과 이혼율, 출산율을 살펴보면서 수치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무수한 가능성을 상상한다. 10년 뒤, 20년 뒤, 어쩌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미래의 어느 한 장면에 우리는 과연 함께 서 있을까.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미지(未知)를 도리어 달가워하며, 나는 명백하게 존재하는 현재를 기록하고 있다. 꿈꾸던 미지수가 현재로 도래하는 그때 전혀 다른 빛깔을 가질지도 모르는 오늘을. 이나 너와 내가 함께 있는 이 순간을.
⟪기까스로 1인분⟫ 1부 여름이나, 마침.
TMI.
2부 사랑의 기원, 가족
3부 플래닛 멜랑꼴리아
4부 나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있는 세계
- 가능하다면 위의 글들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