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여름이나
2023년 국내외를 놀라게 만든 뉴스가 있었다. ‘대한민국 합계출산율 0.7명’
합계출산율이란, 한 여성이 가임 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한다. 15~49세 여성들의 실체 출산율을 연령대별로 조사하여 합치는 거친 계산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인구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합계출산율이 약 2.1명이라는 점, OECD 평균 합계출산율은 1.51명이라는 점, 그리고 현재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인 국가가 한국뿐이라는 점은 세계에 경종을 울리기 충분했다. 그렇게 0.7이라는 숫자는 세계로 퍼져나갔다.
출산이 가능한 여성이자 95년생인 나는 이 통계의 직접적인 대상자다. 그러나 솔직한 체감으로는, 그게 대체 나랑 무슨 상관인가 싶다. 지금 내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떠올릴 때 ‘출산’은 순위권 바깥, 그것도 아주아주 먼 바깥 어느 끄트머리에나 희미하게 존재한다. 앞으로도 영영 출산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 출산을 목표로 하는 행위가 없기에 그렇다. ‘이런! 이상적인 가임기 연령이 2~3년밖에 남지 않았잖아! 서둘러야겠어!’, ‘사십에 애를 낳으면 초등학교 입학식은 오십 전에 가겠군. 그 정도면 괜찮지.’ 이런 생각이 머리에 없다는 게 문제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단 한 번도 ‘출산’과 ‘결혼’이 꿈이었던 적이 없다. 삶의 주된 목표가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일’ 혹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인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머리로는 그 일에 행복이 있다는 판단이 좀처럼 서지 않았다. ‘언젠가 만나는 사람이 정말 결혼을 원한다면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결혼은 내게 그렇게 큰 구속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막연히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나라는 사람이 내게 붙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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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초반, 나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이나의 입장이 나와 비슷할 거로 생각했다. 당시 이나는 새로운 꿈을 위해 이제 막 도전을 시작한 참이었다. 맨 처음 봤을 때 그는 당분간 연애할 마음이 없다고도 말했다. 그래서 계획과 달리 우리가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도 당연히 그가 결혼을 염두에 둔 사람은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난 원래 서른둘쯤 선 봐서 결혼하려고 했어.” 담백한 이나의 폭탄 발언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정말 문자 그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렇구나. 연애 생각이 없었던 거지, 나이가 차면 곧바로 결혼할 생각이었구나. 내가 너무 날 기준으로 넘겨짚어서 생각했구나.’ 당장 결혼하자고 말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나가 자기 삶에서 결혼을 당연히 일어날(혹은 일으킬) 사건으로 마음먹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묻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일을 처리하면 이렇게 후폭풍이 닥치는 법이었다.
이나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나는 며칠간 은은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뒤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화두로 나왔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물어보았다. 암만 해도 이나가 결혼을 꿈꾸는 이유가 있겠거니 싶었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그냥 같이 살아도 되는 거잖아. 꼭 결혼해서 서류상으로 묶일 이유가 있나 싶기는 해. 이러나저러나 별 차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런데 너는 원래부터 결혼을 염두에 뒀던 거잖아? 너한테 결혼은 어떤 의미야?” 이나는 예의 그러하듯 담백하게 답해주었다. “그치. 그냥 같이 살아도 되지. 음, 그런데 나한테 결혼은, 가정(家庭)이야. 결혼한다는 건 가정을 꾸리겠다는 거지.” 2차 충격 소화의 시간이었다. 결혼 자체에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는 게 포함되어 있었다니. 유유상종인 것인지, 나는 지금껏 주변에서 ‘결혼은 곧 출산’이라고 사고하는 친구를 본 적이 없었다. 그제야 이나의 가까운 친구 중에는 결혼한 사람이 제법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이나와 오래 만나기를 바랐다. 또 이나의 삶을 이해하고 지지하며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주고 싶었다. 그러니 이나 삶의 중요한 가치관 중 하나인 결혼과 출산을 나와 무관한 이야기로 치부하고 넘길 수는 없었다. 그런 태만은 나의 가치관에 위배됐다. 그때부터 나는 진지하게 결혼과 출산 문제를 재검토했다. ‘만에 하나, 언젠가, 어쩌면, 혹시라도’ 같은 단어를 붙여가며 해본 적 없던 상상을 이어갔다. 그러자 뜻밖에도, 괜찮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평소 이나가 나를 대하던 방식을 떠올리다 보니 어떤 역경이 오든 서로 충분히 도우며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그동안 간과했던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 결혼도 출산도 혼자 하는 일이 아니었지…’ 독박 육아. 독박 살림. 내가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가정의 풍경이 모두 그러했다 보니 무의식에서 디폴트 값이 된 모양이었다. 결혼도 출산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인식했으니 그저 고생길로만 보이는 게 당연했다. 사고가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만약 이나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세간에 존재하는 ‘연애하는 사람 따로, 결혼하는 사람 따로’라는 말은 사실 당연한 소리던가. 또 나만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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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함께 산다’는 게 어떤 일인지, 그게 얼마나 따뜻하고 다정하고 정다울 수 있는지 이제야 배우고 있다. 가족과 지낼 때도 알 수 없었던 감각을 완전한 타인인 이나와 지내며 알게 되다니, 묘한 일이다. 지금 내게 일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하루 끝에서 날 마중 나온 이나의 모습을 볼 때라고 주저 없이 답할 것이다. 둘이 지내면서 처음으로 나의 평일 일정이 아주 늦어졌던 날이 기억난다. 22시쯤이면 마칠 거로 생각했던 일정은 23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땐 자정이 가까웠다. 내가 늦는다고 이나가 투정을 부릴 리는 없었다. 오히려 천천히 오라며 그동안 본인 할 일을 착실히 잘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집에 있다는 사실이 나의 걸음을 다급하게 만들었다.
뛰다시피 지하철 계단을 올라오자 거기 이나가 환하게 웃으며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이리 오셔~.” 팔을 벌리는 이나에게 달려가 안겼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시간도 늦었는데 집에서 기다리지.” 말과 달리 마음은 한없이 몽글몽글하여 울지 않도록 애써야 했다. 잘 잤어? 좋은 아침. 오늘도 힘내. 저녁에 봐. 그렇게 당연하게 인사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기적 같았다. 그동안 몇몇 이들이 내게 ‘가족’이나 ‘집’에 대해 말하면서 보여주었던 행복하고 포근한 신뢰의 아우라는 이런 감각에 맞닿아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먹먹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이나가 말하는 가족이 어떤 감각과 울림을 가지는지 더 알고 싶어졌다.
(2/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