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슈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주말 오전이었다. 환한 볕이 그의 집 옥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던 슈슈가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나는 슈슈 앞에 서서 등으로 햇볕을 막으며 바닥을 발로 쿡쿡 찌르던 중이었다. 그러다 슈슈의 질문에 일순간 세계가 정지하는 걸 느꼈다. 분명 난생처음 받은 질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확고하게 대답했다. 답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니.” 주마등 같은 것이 지나갔다. 아주 긴 시간 내 안에 숨어있던 진실이 슈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더럽게 외롭겠네.” 그건 진실이 제 이름을 불린 순간이었다. 내 마음의 빗장이 덜컥 소리를 내며 열렸다. 정작 슈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커다란 티셔츠 아래로 훤히 드러난 내 다리가 부끄러웠다. 아무래도 다음엔 그와 함께 쪼그려 앉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슈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닥에 담배를 비벼 끄고 일어섰다. 불씨가 내 속살을 지진 것처럼 온 신경이 곤두섰다. “뭐해. 들어가자.” 어느덧 문 앞에 선 슈슈가 나를 불렀다. 외로움을 권태로 칭칭 싸맨 남자가 거기 있었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슈슈한테 끌렸던 이유. 그건 그가 공허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공허함은 나의 공허함과 주파수가 같았다. 불건강한 공명에 끌려서 시작한 관계의 끝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 당시 나에게는 시한부라도 좋으니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넌 꼭 어릴 때 헤어진 쌍둥이 같아. 내가 어떤 말을 꺼내면 곧바로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알아차려.” 그렇게 말하는 슈슈는 기뻐 보이기도 했고, 두려워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나와 슈슈의 사고에는 닮은 지점이 많았다. 덕분에 나는 슈슈를 관찰하고 돌보면서 나의 연약하고 상처 입은 자리를 돌볼 수 있었다. 그는 나를 대신해 분노했고, 나는 그를 대신해서 울었다. 거울 보고 살풀이춤을 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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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슈는 항상 왜냐고 물었다. 무표정한 얼굴에 시니컬한 말투로 딱 한 마디, 한 글자, 왜. 처음에는 뭐가 못마땅한가 했는데, 질문 그대로 들으면 된다는 걸 이내 깨달았다. 슈슈의 질문은 관심의 표현이었다. 나 역시 그에게 왜냐고 묻는 일에 익숙해졌다. 슈슈도 나도 에너지가 강한 편이라, 비등한 힘으로 상대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게 처음이었다. 덕분에 그와 나는 매일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떠들었다. 대화하다 보면 그동안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사유의 영역에 아무렇지도 않게 훌쩍 다다르곤 했다. 기적 같은 나날이었다.
나는 아직 알 필요 없는 것들을 이런저런 이유로 지나치게 일찍 배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정작 제 나이에 배웠어야 하는 것과는 담을 쌓았다. 모르는 사이 놓친 세계를 슈슈를 통해 빠르게 보완했다. 남들은 일찍부터 찬찬히 몸으로 익혀온 지식을 나는 고작 몇 달 안에 배웠다. 가령, 옷을 사고 입는 게 누군가에겐 무척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슈슈를 보면서 처음 깨달았다. 자타공인 단벌 숙녀였던 나에게는 마음에 드는 브랜드를 찾아내고, 거울 앞에서 시착을 하며 만족스러워하는 타인의 모습을 보는 게 제법 신선한 구경이었다. 슈슈는 화장품이나 피부과 시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보톡스랑 필러가 뭐가 다른지도 그 덕분에 알았다. 그러니까 슈슈는 품위유지비가 제법 드는 사람이었다. 바르는 건 선크림이요, 그리는 건 눈썹과 입술뿐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슈슈 스스로가 무척 즐거워 보여서 일정한 꾸밈비를 자기표현의 영역으로 쓰는 건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처럼 재능 있는 사람들이 외적인 모습 때문에 사회에서 발언권을 얻지 못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야. 조금만 꾸미기 시작하면 정말 많은 게 편해질걸? 넌 똑똑해서 금방 할 거야.” 슈슈는 확신했다. 내면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람은 우선 외면을 평가한다는 이야기였다. 이전 같으면 거부감부터 들었을 말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 좀 더 마음을 열고 들으려 애썼다. 그리고 주변의 실제 사례들을 보고 들으며 나는 그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외면은 서류 평가 같은 거구나.’ 세상이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는 걸 꼭 마음 깊이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더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이라면, 그저 외우면 됐다. 무엇보다 외워 두면 써먹을 수가 있었다.
마침, 당시 다니던 직장의 대표가 외적인 부분에 상당히 민감한 사람이었다. 그는 학벌이나 취미에 따라 공공연하게 직원들 계급을 나누기도 했다. 직장 생활을 편하게 하면서 발언권도 얻으려면 아무래도 외관에 좀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 주에 같은 옷을 두 번 입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눈화장도 했고, 옷차림에 따라서는 힐을 신기도 했다. 그러자 나에 대한 대표의 평가는 놀랍도록 좋아졌다. 참 얄팍하다 싶으면서도, 마음에 드는 옷을 보고 신나 하던 슈슈를 떠올리면 조금 이해가 됐다. 정작 슈슈는 나의 변화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너라고 내가 옷을 그지같이 입었으면 좋아했을 것 같아?” 한껏 비아냥거리는 그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태극전사나 형광 쫄바지 정도면 감당 못 했을 것 같기도 하다고 혼자 고개를 끄덕였을 뿐.
나는 여전히 쇼핑을 즐기지 않는다. 꾸밈비용이 높아지는 것도 지양한다. 다만 필요에 따라 외적인 부분을 신경 쓰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졌다. 만약 내가 슈슈를 만나지 않았다면 외적인 부분이 사회에서 미치는 영향을 알아차리고 수용하는 데에 훨씬 많은 시간이 들었을 것이다. 옷은 정말 단편적인 예시일 뿐이다. 슈슈의 눈과 귀, 영혼을 공유하면서 나는 사회가 어떤 구조로 움직이는지 비로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