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소시오패스가 가득하다. 이전 다니던 회사에도 소시오패스가 가득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남편의 회사에도 소시오패스가 가득하다는 점이다. (물론 인성이 좋은 분들도 정말 많다.)
회사가 소시오패스만 뽑는가 싶었는데, 입사할 땐 멀쩡하던 사람이 점점 맛탱이가 가는 걸 보면 대기업이란 환경이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
팀원들에겐 업무별로 KPI가 주어지는데, 이 정량적 지표와 기타 정성적 지표를 기반으로 나의 고과가 정해진다. 고과는 S/A/B/C가 있고, 기본적으로 S 5% A 15% B 60% C 20%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이다 보니 동료들이 나의 적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열심히 해봐야지!로 시작한 순수했던 마음은 어느 순간 내가 쟤들보단 잘해야지가 되고, 시간이 더 지나게 되면 내가 저 새끼보다 무조건 고과를 잘 받아야지가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최악의 경우, 리더에게 은근슬쩍 동료(경쟁자)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경우도 있다.
혹은 경쟁에서 뒤처진 순한 동료를 보며, 이번 년도는 저 새끼가 고과를 깔아주겠군. 하며 내심 안심을 하는 것이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은 구성원들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너무 힘들었다. 항상 동료의 행태를 살펴야만 했다. 누가 실장님에게 칭찬이라도 듣는 날이면, 그날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이 조급해지고, 심지어는 주눅까지 들게 되었다.
아.. 저 새끼 나보다 6개월 후배인데, 나보다 고과 좋은 거 아니야? 아 그럼 미칠 거 같은데..
더 이상 이렇게 살다가는 나도 소시오패스가 될 것 같았다. 인성파탄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쓸데없는 조급함을 느끼며, 불안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놈들과의 경쟁을 멈추기로 결심했다. 남들 상관 말고, 그냥 어제보다만 발전하자 생각했다. 각자 맡은 일이 다른데, 남들 쳐다봤자 마음만 조급해지고, 나에게 득 되는 것 하나 없을 것이라 계속해서 마음을 다잡았다.
매일 집에 와서 일기를 썼다. 내가 오늘 잘한 점 2가지, 내일 개선할 점 1가지. 내가 쓴 예시는 아래와 같다.
나는 오늘 A 업무를 납기 내로 완료/보고까지 했다. 너무 기특하다.
나는 오늘 보고장표 작성 시, 숫자에 오류가 하나도 없었다. 난 정말 꼼꼼해.
내일은 데이터를 좀 더 깨끗하고 깔끔하게 가공해야지. 오류를 제로화해 보자!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쓰윽 읽고 회사로 출근했다. 얼른 오늘의 목표를 달성하고 집에 와서 나에게 칭찬받을 생각에 신이 났다.
그러자 몇 개월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리 스트레스를 받으며 동료들과 경쟁하던 시절, 나의 고과는 꼴랑 B였다. 그러나 어제의 나와 경쟁하기 시작한 후, 나는 최고 고과인 S를 받은 것이다. 심지어 임원에게서 상까지 수여받을 수 있었다.
나 자신도 많이 변화했다. 조급하고, 전전긍긍했던 과거와는 달리 나 자신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늘 고민하며 발전할 수 있었다. 가장 좋았던 점은 남들과의 비교로 인한 쓸데없는 감정소모에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이다.
무게중심을 나에게로 돌리며, 나는 스트레스 없이 나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에서 악귀로 진화하지 않고 인간됨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7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회사는 고과를 내세워 끊임없이 사람들을 경쟁시킨다. 회사 입장에서는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다. C급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 더 잘하려고 발버둥 치게 만들거나, 제 발로 나가게 만들 수 있으니.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는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료 간 힘 합쳐도 모자랄 판에 동료와 고과 경쟁이라니.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 회사에서 남의 돈 벌려고 마음먹은 순간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이 시스템에 적응해야만 한다.
남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일수록 본인에게 집중해 보자. 남들과의 비교로 얻는 부정적 감정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어제의 나보다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 보자. 그래야 무너지지 않고 견딜 수 있다. 즐길 수 있다. 즐기는 자는 아무도 이기지 못한다.
나는 앞으로도 남들이 아닌,
어제의 나와 경쟁하며 발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