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마음, 어떻게 해야 하나

by 빛별

흔들리는 비행기에 갇힌 것처럼 불안하다. 마음이 텅 비어있다는 느낌을 주체할 수가 없다.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감정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누군가 이럴 땐 어떻게 하라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스무 살의 나는 그저 무서워했다. 기분을 잊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하고 운동을 해 보기도 했다. 그럴수록 갇혀있다는 느낌은 더 심해졌다. 몸을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할수록 몸을 더 다루기 힘들게만 느껴졌다.

학창 시절부터 암울했다. 수업 종이 울리고 아이들은 자리에 앉았다. 날 잘 괴롭히던 아이가 재밌는 장난감을 찾은 것 같은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손에 쥐고 있던 지우개를 뜯어 내 머리로 날린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다. 상황을 보니 일진 몇몇이 내 모습을 보고 키득대며 비웃고 있었다. 마치 ‘너 따위가 뭘 할 수 있는데’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보복이 두려워 그저 당하고만 있었다. 쉬는 시간에는 ‘어벤져 놀이’를 하자고 했다. ‘어벤져’란,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사람이 상대방의 팔뚝을 주먹으로 때리는 행위다. 정말 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이건 정당하게 가위바위보라도 해서 당하는 거니 그나마 낫다고 생각했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 팔뚝에 멍 자국이 있었고, 혹여나 부모님이 속상해하실까 봐 소매로 가리고 다녔다. 내가 누군가에게 괴롭힘 당하는 현실보다 이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날까 그게 더 두려웠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아빠가 돌아가셨다. 공부를 그리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던 나는 시험기간이라 학원에서 중간고사 대비 문제를 풀고 있었다. 선생님이 다급히 교실로 들어오시더니,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빨리 집으로 가보라고 하셨다. 막상 도착한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왠지 모를 쓸쓸함만 흐르고 있었다. 적막을 깨고,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빛별아, 누나야. 아빠가 돌아가셨어. 학교랑 학원에 알렸으니, 너는 지금 바로 짐 싸서 서울로 올라와. 잘할 수 있지?” 나는 정신없이 서울에 올라갔다. 돌이켜보니 그렇게 슬퍼하지도 않았다. 아빠 장례식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조문객이 안 오면 쪽방에 앉아 시험 문제를 풀었다. 순전히 시험을 위한 행동은 아니었다.

20살 때 특별전형으로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내 성적으로는 넘볼 수 없는 학교였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처음으로 받는 인정이었다. 그다음부터 인정받는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살기 시작했다. 나는 완벽주의자처럼 행동했다. 정확히는 완벽주의자처럼 보이고 싶었다. 인간관계를 넓고 다양하게 가지며 공부와 대외활동도 소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 했다. 그렇게 과시한 내 모습을 사람들이 보고 대단하다고 말해주면 그것이 곧 내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다 일이 터져버렸다. 교내 프레젠테이션 대회를 앞두고 급성 맹장염이 온 것이다. 발표날짜를 받아놓고 입원한 상태에서 ppt 하나만 만들어 놓고 발표준비는 아무것도 못했다. 발표는 보란 듯이 망쳤고, 좌절했다. 그저 상황이 안 좋아서 한 실수인데도 실패로 여겼다. 존재가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그 일을 시작으로 이따금 갇혀있다고 느낀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불안은 여전히 엄습한다. 환절기만 되면 독버섯처럼 불안이 피어난다. 하지만 나 역시 그만큼 성장해서, 내 인생에 찾아온 불청객과 잘 지내려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 나같이 우울을 겪고 있다면 해 주고 싶은 조언을 생각했다. 꼭 해주고 싶은 말은, 나아지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어느 날 찾아온 우울, 불안, 공포를 귀한 손님으로 받아들이자. 이 감정을 인생의 한 계절로 받아들이면 나의 일부로 받아들일 힘이 생긴다. 나는 이따금 불안이 찾아올 때,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라는 사인(sign)으로 여기기로 했다. 그러면 외부로 향했던 시선이 내부로 향하게 된다. 남들과 비교해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나이지만, 하루를 살아가며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조금 더 나아지고 있다면 그걸로 되었다고 믿는 것이다. 시간을 정해 할 일을 꾸준히 하는 것 역시 영혼을 지키는데 중요하다. 나의 경우는 매일 아침 성경 필사(옮겨 적는 것)을 하고 있고 하루 2시간 정해진 시간, 정해진 코스를 걷는다. 이걸 하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마음먹고 지키는 것이 위기의 순간에는 나를 지켜준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조언하고 싶은 것은 ‘불안을 이기는 것은 어쨌든 사랑’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 찾아온 불안을 내가 이겨 낼 수 없다. 내가 신을 믿는 이유는 이 불안으로부터 이따금 나를 해방해 줬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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