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축하해

2025년 6월 13일 금요일

by 곽예지나

am 5:36


일기에 날짜를 쓰면서 새삼 알았다. 남편 생일이다. 이날 이때까지 전혀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이 순간 불현듯 깨달았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까지 쭉 기억하고 있었고 어제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 까맣게 잊고 있었을 뿐이다. 미역국을 안 끓여서 그런가?


생일을 특별하게 챙기지는 않아도 아침에 보통 미역국이라도 끓이는데, 남편이 저번주에 친정 엄마가 끓여주신 거 먹었으니까 이번에는 안 끓여도 된다고 해서 패스하기로 했다. ‘안 끓여도 된다고 해서 진짜 안 끓이면 좀 섭섭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우리 남편은 정말 안 섭섭해하는 사람이다. 말하는 그대로 생각하는, 겉과 속이 똑같은. 그래서 나처럼 한 마디하고 마음속으로는 백 마디쯤 생각하는 사람들은 남편과 같은 성격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남편은 유일하게 내 마음의 빗장을 무장해제 시키는 사람이다.


이렇게 성격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지만 기념일을 챙기는 우리의 마음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 것이다. 9년 가까이 사귈 때에도 100일 때 스티커 사진 찍고 선물 교환, 해남 땅끝 마을로 당일치기 여행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크리스마스 때 남편에게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 거예요.”라고 말하고 일찌감치 집에 들어가서 <나 홀로 집에>를 봤던 기억이 영롱하다. 최소한 생일 때 선물 주고받기는 했었지만 그 풍습도 결혼하고 나서는 사라졌다. 심지어 결혼기념일은 우리에게 아무 날도 아니다. 그냥 365일 중의 평범한 하루 정도?


과거에는 시간이 많았지만 기념일에 신경 쓸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현재는 시간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다. 아니, 보통 이런 문장은 서로 대조적으로 구성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 둘 다 없다니 좀 섭섭하네.

아무튼, 예를 들어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여 단 둘이 오붓하게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유림이를 누구에게라도 맡기고 가야 하는데 그럴 사람이 없다.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 그분들은 정말 급할 때를 위한 SOS다. 누군가가 아프거나, 유림이만 혼자 재량휴업일일 때와 같은 특수상황. 남편과 나의 결혼기념일과 같은 하찮은 날에 사용할 찬스가 아닌 것이다. 그럼 활보 선생님께 부탁해 볼까? 퇴근 준비를 하고 계시는 활보 선생님께, 오늘만 특별히 한 2~3시간 즈음만 더 봐주실 수 있는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럼 10살인 린아에게 12살인 오빠를 맡기고? 언젠가는 그런 일이 가능할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이런 상황이니 우리 둘 다 기념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은 더 다행스러운 일이다. 해마다 기념일을 아주 거창하게 보내는 추억을 가졌다면, 유림이에게 메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굉장히 좌절했을 것이다. 뭐 지금도 그렇게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다른 일에 비하면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 보통의 사람들이 하는 그 모든 것들을 다 누리는 삶이 나에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무수히 많은 나날들 속에서 터득했고 또 받아들였으니까.


어쨌든 오늘은 남편 생일. 미역국은 없지만, 오후에 꼬북이, 프링글스 가족들과 모임 하면서 케이크에 촛불 꽂고 다 같이 노래는 불러줄 수 있겠다. 이게 이벤트지 뭐.

아마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남편도 맞장구치며 “가족들 말고 다른 사람들이 축하해 주니까 특별하고 기분 좋더라.”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 환한 미소와 함께. 남편이라면 분명히.

am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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