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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아빠 Feb 19. 2024

고무신 배

비 오는 날의 기억

아이들 양육할 때 제일 조마조마했던 때가 초등학교 입학 무렵 아닌가 싶다.


차조심을 강조하며 뼈에 각인해도, 낯선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머리에 못질해도, 늘 깜빡이는 아이들 집중력 때문에 사라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이 제일 컸던 때가 그때다.


하여 아이의 학령기가 시작되면 대부분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배정받기 원해 학교 부근으로 이사하지만, 70년대 대한민국은 산업화 때문인 갑작스러운 인구 이동에 교육행정이 발맞추지 못하면서 교실이 부족해 오전반 오후반 2부제 수업과, 한 반 70명 밀집 수업이 당연했던 때라 학교가 멀어도 하소연 못했다.


어쩌다 학교와 집의 거리가 상당히 멀었는데 유진상가 옆 인왕초교에서 집까지는 대략 2.5km, 동네에서 학교까지 같이 다녔던 형, 누나, 친구의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뺑뺑이 운빨이 떨어져 아마도 나 혼자 다니지 않았나 싶다.


그나마 하교 때는 선생님 따라 친구들 손잡고 학교 정문에서 큰길 어귀까지는 나왔지만, 그다음은 오로지 혼자 해결해야 하는 당황스러움, 7세에 등하교의 어려운 숙제를 매일 혼자 감당해야 했다.


무서운 개를 만날까 두려워 손에 막대기 들고 고갯길을 오르내리며 석축과 철제 난간을 막대기로 쓸고 다니던 일상에서 남대문 시장에서 물건 떼와 구파발 방향 고개 넘는 리어카 뒤를 밀면 하드 하나 사 먹을 돈을 받는 맛을 알아 덩치 큰 형들 틈에서 가끔 기다리기도 했던...


그러나 제일 난감했던 건 비 오는 날,


학교 갈 땐 비가 없었는데 집에 와야 하는데 쏟아지면 문제 해결능력이 부족한 일곱 살 아이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냥 첨벙거리며 걷는 수밖에, 걷다 재미없으면 흐르는 물줄기를 막아 댐 만들고, 고무신 닮은 싸구려 운동화 벗어 배 띄우고,


그렇게 한참을 놀다 신발을 삼아 타고 집에 돌아오면 일단 등짝을 한 대 맞았고, 강제 목욕한 뒤 따뜻한 이불속에서 포근히 잠들었다.


오도카니 창밖을 바라보니 세피아톤 영상이 지그시 감은 눈 사이로 지나간다. 베일 듯 각 잡힌 사각거리는 이불속에서 포근함에 빠져 까무룩 깊고 오래 잠들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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