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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푹푹 나리고
눈 나리는 날의 만둣국
by
오리아빠
Jan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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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 한 단을 다 못 쓰고 남겨둔지 사흘, 그것을 어찌 쓸까 고민하던 내짝님이 만두를 만들자고 꼬셨다.
단순하게 말해 2천 원 아끼기 위해 몇만 원 쓰자는 이야기라 어이없기는 했지만, 벌써 밀가루가 물을 뒤집어쓰고 뽀얀 등허리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등이라도 밀어줘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하는 백석 시가 생각날 즘 오라는 냐타샤 대신 흰 가루와 밀대라니,
이런 날은 창 안에 담겨 눈 나리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면 얼마나 좋으냐고 목놓아 울어봐도 소용없어 장난스럽게 불편한 심기를 비추기는 했는데, 느닷없이 엄니가 밀대를 잡으셨다.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 살림에서 열외
되신 지 몇 해, 오랜만에 소근육을 움직여 예전의 역할을 맡으셨으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회춘이라도
하셨다는 말인가?
잘 밀어진 만두피에 만두소 한 숟가락을 넣고 붙일 때 귓불처럼 말랑하게 만져지는 만두피의 보드라운 촉감이 아까의 심통을 기억 바깥으로 밀어 버려 기분이 좋아졌다.
노인이 밀고 할멈과 영감이 만든 눈 나리는 날의 만두,
그 어떤 날보다 과하게 맛있었던 것은 맑고 깊은 다시 육수의 뜨끈한 국물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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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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