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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사 김과장 Sep 23. 2024

"T발 C야?"

싸움의 시작은 언제나 하찮다


인천공항 탑승 대기 중



프랑크푸르트로 떠나는 비행기 시간은 오후 6시 반이었다.

여유 있게 준비해서 공항에 도착했지만, 대합실에 들어서자마자 아내와 다퉜다.

하품을 하는데 마침 아내가 내 등을 토닥였고, 나오던 하품이 도로 들어갔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상태가 되면 뭐라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몸속에 벌레가 잔뜩 기어 다니는 느낌이랄까?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고 이를 본 아내는 그대로 얼굴이 굳었다.

원일 제공한 사람이 되려 얼굴을 굳힌다? 

이해할 수 없었다. 

장기 여행에 대한 긴장감 때문인지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30분가량 서로 한 마디도 안 한 채 비행기를 기다렸다.

프랑크푸르트행 승객 체크인을 알리는 콜 사인이 들렸고, 이렇게 여행을 시작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억지로 화해를 시도했다.


아내 말인즉슨 오늘 사건은 도화선에 불을 댕긴 꼴이었단다.

여행 준비 기간 내내 내가 너무 날카롭게 굴어 말 걸기가 무서울 정도였다고 했다.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 인상이 험악해진 것도 한몫했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각종 수속과 계획은 대부분 내 몫이었다.

장기 여행이니 완벽하게 준비할 수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챙겨야 할 것들은 미리 준비해서 가야 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좀 더 다녀 본 내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여행 준비는 나 혼자 하고 있는 듯했다.

뭔가 억울했다.


혼자 다닐 때는 걱정할 게 없었다.

어디를 가건, 무엇을 하건 내 한 몸 건사하는 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족이 생기고 나니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앉았다.

그래서인지 '어디를 갈까', '무엇을 할까'하는 기대보다는 '어디로 가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이 때문에 계속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트레스의 근원은 낯설음이었다.

살아본 경험, 여행 경험 모두 풍부하고 언어적인 문제가 없는 중국은 계획 없이 가도 아무런 스트레스가 없는데, 이번 여행은 정반대였다.

하다 못해 대중교통은 어떻게 이용하는지, 음식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하나도 감이 오지 않았다.

그 막연한 불암감이 예민한 반응으로 이어졌고, 아내는 그게 못내 서운했나 보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넉살 좋게 나에게만 의지하고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 아내가 서운했다.

아내는 좀 헤매도 괜찮고, 고생해도 괜찮다며 그런 과정이 여행 재미가 아니겠냐고 반문했지만 바로 생각을 바꾸는 게 쉽지는 않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이 왔다. 

끙끙대며 캐리어를 끌고 가 공항 리무진을 기다리는 시간조차 설렜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붐비는 공항은 활기찬 에너지로 넘쳐났다. 


그런데 탑승 전 남편과 마찰이 생겼다. 

하품하는 남편을 미처 보지 못하고 남편 등을 토닥였는데 순간 얼굴이 찌푸려지는 게 보였다. 

멋쩍은 표정을 짓자 남편이 미간을 찡그린 채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미 일그러진 남편 표정을 보고 난 후라 나름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상했다. 

토라진 감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고 나는 그대로 입을 닫아버렸다. 

남편도 내 태도에 언짢은지 침묵했다. 


남편은 여행을 준비하는 내내 소소한 것들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쌀쌀맞은 태도에 말을 붙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이럴 땐 최대한 남편을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다. 

처음 가는 여행도 아닌데 평소와 다른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면 ‘남편이 먼저 이야기하겠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해심을 발휘해 남편 눈치를 보며 지냈는데, 기분 좋게 여행 떠나는 날까지 까칠한 남편 태도를 보니 참았던 서운함이 폭발했다. 


어색한 시간이 흘렀고 출발 시간은 다가왔다. 

묵을 깨고 남편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신경이 날카로웠던 것은 사실이라며 미안함을 내비쳤다. 

남편이 혼자 여행 준비하면서 받았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니 나도 미안해졌다. 

평소 워낙 꼼꼼하게 잘 챙기는 사람이라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믿고 일방적으로 맡겼던 것이 남편에게는 큰 부담이 됐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린 탑승을 앞두고 급한 화해를 했다.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했다.

비행 예상 시간은 12시간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가이드북을 독파하겠다던 아내는 이륙 후 6시간 동안 기내 상영 영화에 푹 빠져있었다.

앞으로 일정이 눈에 선했다.


독일 여행 테마는 '메르헨 가도'였다.

그림형제 발자취와 그들이 남긴 작품 배경이 된 지역을 답사하는 여정이다.

어차피 독일에서는 딱히 가보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이 없었기에, 전적으로 아내 의견에 따랐다.


사전 지식의 유무는 여행의 질을 크게 좌우한다.

웹 검색으로는 접할 수 있는 정보가 얕고 한정적이었기에, 출발하기 전 그림형제에 관한 논문을 한 권 읽었다.

그림동화는 비행기에서 읽어볼 요량으로 이북 리더기에 <그림동화> 전집을 담아 갔다.


기내에서 총 열 편의 작품을 읽었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책을 읽은 소감은 '당황스럽다'는 한 마디로 정리가 됐다.

그림동화 유래와 전승 과정에 대해서 예습은 했지만, 이를 감안하고 봐도 이야기 자체가 너무 뜬금없었다.

서사 구조가 미비한 작품도 많았고, 주제 의식이 딱히 보이지 않는 이야기도 다수였다.

'불량배들' 같은 경우에는 7살짜리 조카가 즉흥적으로 지어내는 두서없는 이야기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림동화>는 '메르헨 가도'라는 루트를 타기 위한 핑계일 뿐, 어차피 다 처음 보는 곳, 처음 경험하는 것들 천지일 테니, 흥미진진할 터였다.

그냥 민담에서 시작된 동화에서 개연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기로 했다.








비행기는 해를 따라 계속 서쪽으로 날아갔다.

생체 시계는 한밤중이지만 현지 시간은 대낮이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 도착 30분 전이 되자 아내가 비로소 가이드북을 보기 시작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늘에서 본 프랑크푸르트 경치는 장관이었다.

오래된 구릉 위로 오렌지 빛 석양이 내렸다.

산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드넓은 평야 한가운데를 라인강이 굽이돌았다.

그 주위로는 성냥갑 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뤘다.

두꺼운 구름을 힘겹게 통과한 햇빛은 하늘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대기 중에는 부유물질이 제법 있는지 노을이 부드럽게 확산했다.


꼼꼼한 입국 심사를 마친 후 짐을 찾아 셔틀버스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마이닝거 공항 호텔에 도착했다.

터미널을 나오자마자 셔틀버스 정류장이라 길 찾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들어선 호텔은 의외로 젊음이 넘쳐났다.

빨간 셔츠를 입은 젊은 스태프들이 프런트와 바에서 싱글거리며 손님을 맞았다.

샤워를 하고 난 후 셔틀버스 예약을 위해 프런트로 내려가니 바는 이미 만석이었다.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니 맥주 생각이 간절했지만, 통풍 때문에 일단 참았다.






설레는 기분은 잠시였고, 현실적인 문제가 불거졌다.

호텔 근처는 황무지였고 하다못해 구멍가게도 없었다.

호텔 바에서 파는 생수는 1.5리터짜리 한 병에 4.8유로(약 6000원)이었다.

미친놈들.


머리가 띵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공항터미널은 도보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셔틀버스는 3.5유로였다.

물가가 미친 것 같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바에서 물을 사서 방으로 돌아갔다.

3성급 호텔임에도 화장실엔 세면도구가 없었다.

침대 시트는 스프링이 하나하나 느껴졌다.

15년 전 내게 디스크를 안겨 준 하얼빈 사범대학교 외국인 기숙사의 그 침대 같은 느낌이었다.

캐리어를 바닥에 풀면 발 디디고 설 공간조차 없는 호텔 방은 1박에 8만 원이었다.

정신 나간 물가 덕분에 첫날부터 정나미가 떨어지려 했다.


6000원... ㅅㅂ...







누군가의 여행, 누군가의 일상



독일 일정의 시작은 브레멘이었다.

독일로 들어가는 비행기는 뮌헨 아니면 프랑크푸르트가 도착지라 어쩔 수 없이 프랑크푸르트에서 1박 하고, 다음 날 아침에 기차로 브레멘까지 이동해야 했다.

독일 중부에서 북부까지 한 번에 관통하는 동선이었다.


독일 열차 시스템은 처음 보는 사람에겐 악몽이었다.

열차 노선이 많지 않은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 열차 시스템은 거리, 속도 등에 따라 다양한 등급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 수많은 열차들이 같은 승강장을 공유한다는 것이었다.

방금 고속열차가 지나간 자리에 간선 열차가 들어오기도 하는 등 모르고 보면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어차피 자기가 탈 열차 번호와 정차하는 승강장 번호만 정확히 알면 크게 문제 될 건 없는 시스템이긴 한데, 일단 역을 경유하는 어마어마한 수의 열차 종류를 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착시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아, 이거 되게 어렵네'하는 거.

특히 직통 열차가 아니라 환승을 하게 될 경우 이런 현상이 심해진다.


하지만 쫄 필요 없다.

열차 번호와 승강장 번호만 정확히 알면 된다.

어차피 환승해야 할 플랫폼들은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승강장 지하로 내려가면 다 통한다.

막상 가보면 별거 아니다.

물론 이런 생각은 퓌센에서 뮌헨을 가는 길에 대차게 한번 고생을 한 후에 할 수 있었던 거고, 그전까지는 기차 탈 때마다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라인강을 따라 북으로 북으로


프랑크푸르트를 떠난 기차는 마인츠와 코블렌츠를 지나 쾰른으로 향했다.

라인 강변을 따라 펼쳐지는 경치는 그림 같았다.

조용히 흐르는 강물 뒤로는 드넓은 평야가 펼쳐졌고, 간혹 나타나는 야트막한 언덕 꼭대기에는 어김없이 작은 성채, 요새가 자리 잡고 있었다.


도로변에 자리한 가정집은 모두 길쪽으로 베란다를 냈다.

따뜻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창가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독일인들 모습이 부러웠다.

내가 덜컹이는 기차 창문을 통해 보는 경치를 그들은 자기 집 베란다에서 보고 있었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야트막한 산지는 경사면을 개간해 밭을 만들었는데, 모양이 희한했다.

보통 경사면에서 경작할 때는 계단식으로 층을 내고 밭을 일굴 텐데, 여긴 사면에 그대로 밭을 만들었다.

농부들이 저 비탈을 딛고 서서 농사를 짓는단 말인가?





그래서였을까?

독일의 전원 풍경은 우리나라와 '각도'가 달랐다.

땅이 좁은 우리나라는 평야가 끝나면서 곧장 높다란 산이 나타나 시야를 가로막는다.

하지만 여기는 지평선 끝자락이 산이다.

고저 차가 크지 않아 낮은 산지가 끝없이 이어지다가 지평선과 만난다.

평야와 산지는 마치 모래를 부드럽게 쓸어 올린 듯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래서인지 하늘이 훨씬 더 넓어 보인다.

우리나라 구릉은 좁은 하늘을 더 좁아 보이게 만드는 반면, 이곳 구릉은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 여유가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예정된 시간보다 6분 늦게 브레멘에 도착했다.

그 사이 열차 내에는 수시로 "몇 분 늦을 예정이니 환승할 승객은 미리미리 준비할 것"이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우리가 탈 열차는 환승 대기 시간이 18분 정도였기 때문에 문제없이 환승할 수 있었다.

숙소가 있는 브레멘-헤멜링겐 역에 내려서 주위를 둘러보고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시 중심에서 고작 몇 킬로미터 떨어졌을 뿐인데, 과거 경춘선 간이역을 보는 듯 소박하고 정감 있는 풍경이 눈을 사로잡았다.

언뜻 황량해 보이지만 햇살 따뜻한 가운데 새 지저귀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승강장 너머로는 마당을 예쁘게 가꿔 놓은 전원주택들이 늘어서 있었다.

집집마다 파르라니 깎은 잔디 마당에 아이들이 뛰놀았고, 무릎 높이도 안 되는 울타리들이 각 집의 경계를 말해줄 뿐 담장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집집마다 창가를 예쁘게 꾸미기 위해 경쟁이라도 하듯 풍성한 레이스를 단 커튼을 드리웠고, 창틀에는 색색의 화초를 장식했다.

다들 일터에 나가 있을 시간이라 지나는 사람은 없었지만, 동네 모습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브레멘-헤멜링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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