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
'피리 부는 사나이' 전설로 유명한 독일 북부의 소도시다.
1284년 6월 26일, 하멜른에서 130여 명의 아이들이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기록만 남아 있을 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기록으로 남지 않아 수많은 사람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이 사건을 모티프로 만든 이야기다.
도시에 쥐떼가 창궐하자 시장은 "쥐떼를 소탕하는 이에게 포상금을 두둑이 안겨주겠다"라고 공포했다.
이때 우리의 하피남이 등장, 마법의 피리를 불어 쥐떼를 끌어모아 도시 밖으로 나가 베저 강에 집단 투신하게 만들어 상황을 종결했다.
그러나 사람이 화장실 가기 전과 다녀온 후의 마음이 다르다고 했던가...
하멜른 시장은 포상금이 아까워 이리저리 핑계를 댔다.
그러자 하피남은 "님 X 돼 보세요"라며 피리를 불었고, 이번엔 아이들을 단체로 낚았다.
하피남은 아이들을 끌고 마을 밖으로 유유히 사라졌고 마을은 졸지에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 통곡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혹자는 이 이야기가 14세기 유럽을 초토화 한 흑사병과 관련된 전설인 것으로도 보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다.
하멜른 구 시가지는 전쟁 포화를 피해 간 몇 안 되는 도시다.
그 덕분에 중세 도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지나간 길, 쥐들이 빠져 죽은 강 등 동화 속 디테일이 구 시가지 곳곳에 남아있다.
구 시가지는 지름 500m 정도에 불과한 원형으로 느긋하게 걸어 다녀도 하루면 다 둘러볼 수 있다.
구 시가지가 오히려 하멜른 시내보다 더 깨끗하고 정돈된 분위기며, 번잡함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여유 있는 중세 소도시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하멜른 구 시가지로 접어든 순간, 아내와 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성을 내뱉었다.
'유럽유럽'한 전통 가옥이 자를 대고 그은 듯 정확하게 줄을 맞춰 늘어서 있었다.
좁은 골목 바닥은 돌을 박아 만든 포장도로였다.
비록 트렁크를 끌고 가는 동안 육두문자를 좀 내뱉긴 했지만 마을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다.
'하피남'의 도시답게 시내 곳곳에 쥐를 활용한 디테일이 차고 넘쳤다.
심지어 호텔 방문을 고정시키는 쐐기도 생쥐 모양이었다.
20여 일 독일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하멜른이었고, 그 이유는 상당 부분 호텔 때문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오래된 집을 개조한 탓에 실내 공간 활용은 비효율적이었다.
딱딱한 독일 악센트가 인상적이었던 여주인은 마스카라가 번져 판다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울었나 싶었는데 다음 날도 메이크업이 똑같은 걸 보니 그냥 자기 스타일이었나 보다.
괴이한 외모와는 달리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마음이 꼭 옛날 동네 아주머니 같았다.
욕실은 깨끗했으며 넓은 침실과 옷장, 테이블이 있는 여유 공간은 우리 두 사람에게 차고 넘쳤다.
객실 뒷문을 열고 나가면 테이블이 여럿 놓인 호텔 뒷마당이 나왔다.
햇살 좋을 때 골목으로 흘러든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시는 기분은 환상적이었다.
호텔 아침식사는 최고였다.
매일 아침 신선한 빵과 햄, 치즈, 과일, 시리얼, 요거트 등이 식탁에 올랐다.
호텔 주인은 요청하기만 하면 바로 갓 내린 커피를 가져다줬다.
식탁에는 주인이 직접 만든 잼이 종류별로 있었고, 도시 특색을 살린 쥐 주머니 안에는 언제나 따뜻한 삶은 달걀이 숨어 있었다.
서버로 쓴 도마 모양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맛은 두말하면 잔소리.
단언컨대 두 달 여행하는 동안 가장 행복한 아침을 느꼈던 곳이었다.
이곳의 아침 식사에 감동받아서 집에 돌아온 후 유럽식 아침식사를 시도해 봤다가 포기했다.
동네에서 신선한 빵과 치즈, 햄 등을 구하는 건 불가능하더라.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결혼식의 집(Hochzeitshaus)'은 하멜른 명물이자 랜드마크다.
17세기 초에 세워진 건물로 지금은 관광안내소로 이용된다.
광장 쪽에 면한 벽면에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인형 시계가 있는데, 매일 세 차례 음악과 함께 인형극을 상연했다.
결혼식의 집 옆에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집(Rattenfängerhaus)'이 있다.
1603년, 당시 하멜른의 시 의원이었던 헤르만 아렌데스가 지었다고 하는데, 사실 하피남 전설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곳이다.
단지 피리 부는 사나이의 집 바로 옆 골목이 하피남이 아이들을 이끌고 사라졌다는 골목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 전설 때문에 지금도 저 골목에선 음악과 춤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하멜른 박물관'이 있다.
구 시가지 중심을 가로지르는 대로 한가운데 있는데 안에 들어가면 옆 건물과 연결된 이중 구조다.
정문으로 들어가서 박물관 안을 둘러보다가 3층에서 옆 건물로 다리를 건너가게 된다.
이후 옆 건물을 돌아보고 다시 박물관 건물로 돌아 나오게 되어 있다.
내부에는 하피남과 관련된 콘텐츠들 외에 하멜른의 역사, 인물에 관한 전시도 함께 진행 중이었다.
고풍스러운 집기들, 흑사병에 대한 기록, 흑사병의 주범인 쥐의 미라 등이 인상적이었다.
하멜른 박물관은 충격적인 곳이었다.
4층 짜리 작은 건물 안에 장애인을 위한 리프트를 설치해 놨다.
심지어 새로 지은 건물도 아니고 중세시대 건물 내부를 개조했다.
그걸 보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애당초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지도 않은 건물에 그 큰 구조물을 집어넣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을지 상상하니 아찔했다.
비단 이곳뿐만 아니라 독일은 어딜 가든 사회적 약자와 동물에 대한 배려가 뿌리 깊게 배어 있었다.
선진국이 괜히 선진국이 아니다.
구 시가지를 둘러보고 나서 호텔로 들어가는 길에 석양이 짙게 깔렸다.
봄에 접어들었는데도 독일 태양은 겨울과 같은 높이로 뜨고 졌다.
골목을 뚫고 광장까지 들어온 햇빛이 사람들을 비춰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오후 6시가 지나면서 상점 셔터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7시에 문을 연 상점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해는 8시가 돼서 졌다.
훤한 대낮 같은 초저녁, 을씨년스러운 거리를 보노라면 피리 부는 사나이가 하멜른 시민들을 몰고 가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멜른에는 저녁이 있는 삶이 있었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소도시 사람들은 친절했다.
여행객들을 상대해야 하는 관광지 사람들이니 친절이 몸에 밴 탓일까?
무뚝뚝한 독일인에 대한 선입견은 여기서 깨졌다.
버스 안에서 잔돈을 찾지 못해 허둥대는 나를 보고 싱긋 웃는 버스 운전기사 미소가 푸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