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는 장식품이 아니다
독일 일정의 시작은 브레멘-하멜른-트렌델부르크-카셀-알스펠트-하나우로 이어지는 메르헨가도다.
그림형제 족적을 따라가는 길, '동화가도'라고도 부른다.
야코프와 빌헬름 그림 형제는 평생에 걸쳐 독일 민담을 수집해 <그림동화>를 완성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때로 먼 지역까지 답사를 다니기도 했으며, 이 과정에서 각 지역의 인문, 지리적 특성을 작품에 녹여냈다.
특히 트렌델부르크와 자바부르크 등지에서는 동화 속 배경이 되는 고성의 모습을 그대로 차용했다.
중간에 들르게 되는 도시들은 독일 중세 도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그림동화>에 흥미가 없더라도 고즈넉한 소도시의 매력에 빠질 수 있는 코스다.
특히 대부분 도시의 관광 포인트는 '구 시가지(Altstadt)'에 밀집되어 있어 도보로 돌아보기도 편하다.
메르헨가도는 그림형제가 태어난 '하나우'를 기점으로, 브레멘을 종점으로 삼는 루트가 일반적이다.
하나우는 프랑크푸르트 바로 옆이라 이동도 편리하다.
하지만 우리는 브레멘을 기점으로 삼아 역방향으로 진행했는데, 이유는 이후에 로만티크 가도로 이어지는 루트를 연결하기 위해서였다.
여행의 시작인 브레멘은 독일 북부의 항구 도시이며, 독일 10대 도시 중 하나다.
축구팀 '베르더 브레멘'으로 유명하며, <그림동화>의 대표작 '브레멘 음악대'로도 널리 알려진 도시다.
동화를 보면 당나귀가 동물들을 모으면서 "브레멘으로 가서 음악가가 되자"라고 한다.
그만큼 예전부터 독일 북부의 경제, 문화 중심지로 발전한 곳이다.
지금도 구 시가지 골목 구석구석에는 거리 예술가들이 저마다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구 시가지 중심의 '마르크트 광장'에는 유럽 기사의 상징인 롤란트의 석상이 있으며, 화려한 파사드가 압권인 시청사, 성페트리 대성당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광장에서 베저강까지 이어지는 뵈트허 거리는 20세기 초 부유한 상인이었던 로트비히 로젤리우스가 사재를 털어 만든 상업지구로,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이 밀집해 있다.
지금은 주로 레스토랑, 펍, 기념품 가게 등이 밀집한 관광지다.
브레멘에서 첫 일정은 시내 중심가인 마르크트 광장이다.
호텔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브레멘 주요 관광지는 중앙역 근처에서 도보로 둘러볼 수 있는 거리에 밀집해 있으며, 호텔 앞에서 10번 트램을 타면 중앙역까지 한번에 갈 수 있다고 알려줬다.
호텔 매니저 말이 미심쩍었지만 설마 현지인 정보가 틀릴까 싶어 일단 트램에 올랐다.
과연 자판기가 있었으나 10유로 보다 액면가가 큰 화폐는 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일정 첫날이라 수중에는 잔돈이 없었다.
꼼짝없이 무임승차를 할 판이라 다음 역에 내려서 잔돈을 바꾼 뒤 다시 타기로 했다.
트램이 정차해 뒷문 쪽으로 가는데 양손에 맥주병을 들고 베르더 브레멘 유니폼을 입은 남자 한 무리가 우르르 트램에 올라탔다.
마침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었고 경기장으로 가기 위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몰려든 판이었다.
아내는 일찌감치 내린 상황인데 나는 인파에 휩쓸려 트램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아내를 부를 틈도 없었다.
트램은 문을 닫고 출발해 버렸고 나와 아내는 트램 창문 너머로 황당한 시선을 나눠야 했다.
아내는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지만 계속 불통이다.
평소에도 전화 확인을 잘 안 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전화기를 안 볼 줄은 몰랐다.
순간 화가 폭발했다.
계속 아내를 챙기느라 신경이 쓰여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다.
일단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길가에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숨을 골랐다.
어차피 트램 노선을 따라 직선로를 지나왔으니 철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다시 만날 터였다.
생각해 보면 내가 화가 난 건 내 사정이고 아내도 나름대로 황망할 터였다.
굳이 싸울 일은 아니었다.
괜히 시비 걸지 말자고 다짐하고 길을 돌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반대편에서 트램 철로를 따라 걸어오는 아내가 보였다.
아내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나를 보자 일부러 더 크게 웃으며 깡충깡충 뛰어 왔다.
얼굴을 마주하니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같은 생각인 게 보였다.
영어 젬병인 나는 해외에 나가면 급격히 위축되는 스스로를 마주하게 된다.
흡사 문맹이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해외여행을 하면 남편에게 의지하는 이유다.
특히, 중화권 국가를 여행할 때는 남편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아진다.
인사말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말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여행을 반복하다 보니 나는 나라를 불문하고 자연스럽게 남편이 만든 편안한 그늘에 익숙해졌다.
덕분에 남편은 아내 전담 가이드이자 보호자 역할을 하게 됐다.
엄마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아이처럼 나는 남편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놓치면 길을 잃은 국제 미아가 될 테니까.
그런데 인파가 몰리면 어쩔 도리가 없다.
트램을 타고 시내로 이동하던 중 갑자기 몰려든 사람 물결에 휩쓸려 남편을 놓치고 말았다.
남편 목소리를 듣자마자 트램 뒷문에서 뛰어내렸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고개를 돌려보니 남편은 건장한 독일 남자들 틈에 끼어 트램 안에 갇혀 있었다.
남편은 트램과 함께 멀어져 갔다.
당황한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고, 그걸 본 남편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멀어져 가는 트램을 보고 있으니 덜컥 겁이 났다.
고요하고 평화롭던 마을은 적막하고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다시 트램을 타고 따라가려 했지만 돈이 없었다.
어차피 계산은 남편이 다 하니 비상금도 챙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트램은 노선이 정해져 있었다.
그러니 남편은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나를 기다릴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한 정거장을 열심히 뛰어보기로 했다. 손에 든 핸드폰을 바통 삼아서.
멀리 남편이 시야에 들어오자 안도감이 들면서 적막한 동네가 다시 평화롭게 느껴졌다.
반가운 마음은 내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잠시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새삼 남편이 고맙게 느껴졌다.
이런 내 마음과 달리 남편은 허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편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남편은 잠시 아무 말 없이 뭔가 생각하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브레멘이 독일 북부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4월 초에 얼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해가 나고 지고의 차이, 바람 유무의 차이가 상당히 컸다.
날이 추우니 돌아다니기도 힘들었다.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곱은 손을 녹여가며 사진을 찍었다.
브레멘 상징이라는 '브레멘 음악대' 동상은 구 시청사 뒤쪽 구석에 숨어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어렵게 찾아낸 동상의 당나귀 앞발은 관광객들이 너도나도 쓰다듬어 주시는 바람에 금빛으로 반질거렸다.
앞발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나중에 보니 유럽 어딜 가나 동상 발가락은 죄다 반질반질했다.
고딕 양식의 성 페트리 대성당은 처음 본 유럽 성당이었다.
처음 보는 규모의 고풍스러운 성당은 꽤나 매력적이었는데 내부는 더 인상적이었다.
성전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컴컴한 성전 안에 관리인이 백열등 하나 밝혀놓고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그림 같아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다.
브레멘은 유럽 여행의 첫 번째 도시였던지라 온통 새로운 것 투성이었다.
성당에서 나와 광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반려견과 함께 다니는 사람이 무시로 보였다.
반려견을 데리고 기차역 안까지 돌아다니는 모습이 신기했다.
개가 편하게 다닐 수 있게 줄을 길게 늘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광장에는 목줄도 하지 않은 개들이 뛰어다녔다.
하지만 누구도 신경 쓰거나 주의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개가 멋지다며 다가가 쓰다듬어 주는 사람도 있었다.
일견 걱정스러웠지만 사실은 부러웠다.
독일인들은 반려동물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 있었다.
훈련을 잘 받은 탓인지 독일에서 본 견공들은 하나같이 점잖고 기품 있었다.
이런 배려의 마음은 사회 공동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했다.
버스, 트램은 장애인을 위해 휠체어 승강장을 완비했다.
다음에 들렀던 하멜른의 한 식당은 정문 옆에 큰 안내판을 내걸고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 위치를 안내하고 있었다.
오래된 건물이고 광장 보행로에 맞닿은 구조 탓에 진입로 개조가 불가능 해 건물 뒤편에 경사로를 낸 거였다.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마르크트 광장을 돌아 구 시가지 남동쪽의 슈노어 지구로 향했다.
슈노어 지구는 옛 건물들을 보수해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 등으로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중세 시대의 도로가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소개된다.
전쟁의 피해가 비껴간 덕분에 15~16세기의 모습이 잘 남아있다.
거리를 걸으면 꼬불꼬불한 벽돌길을 따라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늘어선 모습이 인상적이다.
독일 여행 내내 이런 풍경을 만났는데 슈노어 지구는 현대적인 색채가 가장 강한 곳이었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중세 분위기를 느끼지 못할 만큼 사람이 북적이는 곳이었다.
기념품 가게 쇼윈도 너머로 고양이 피겨가 보여 홀린 듯 매장으로 들어섰다.
고양이 인형이 많길래 주인장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도 고양이 집사란다.
잠시 서로의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며 신나게 떠들었다.
검지와 딱지의 사진을 본 그녀는 "우리는 모두 캔 따개(Dosenöffener)일뿐이지"라며 껄껄 웃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양이 키우는 사람을 '집사'라고 표현하듯 독일에서는 '캔따개'라고 불렀다. 세계 어디를 가나 집사들 하는 짓은 비슷한 가 보다)
아내는 결국 이곳을 시작으로 들르는 도시마다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특색 있는 고양이 피겨를 모으기 시작했다.
시내 구경을 마치고 먹을거리를 사러 마트에 들렀다.
마트를 둘러보니 생활 물가와 여행 물가의 차이가 피부에 와닿았다.
전자기기 등 공산품 가격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비쌌지만 음식 등 생필품 가격은 눈에 띄게 저렴했다.
미쳐 날뛰는 우리나라 장바구니 물가 생각이 나 한숨이 나왔다.
이어서 프랑크푸르트 마이닝거 공항 호텔에서 6000원 주고 물 한 병 샀던 기억이 떠올라 씁쓸했다.
마트에서 본 공병 수거기는 충격적이었다.
독일의 페트병, 유리병은 모두 0.25유로 정도의 보증금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병만 잘 모아도 적지 않은 돈을 돌려받게 된다.
투입구에 병을 넣으면 알아서 분류, 수거가 되어 무척이나 편하다.
이 때문인지 주위를 둘러보니 자동차 트렁크에 빈 병을 몇 상자씩 실어와서 반납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길거리에서 본 걸인들도 쓰레기통을 뒤져 병을 줍는데 열심이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좀 불편하지만 환경보호 차원에서 본다면 권장할 만한 시스템이다.
주류 판매점에서 만난 젊은 직원은 "우리는 빈 병 때문에 환경이 파괴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자랑할 만하다. 그리고 본받을 만하다.
이거 우리나라에도 꼭 도입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원리원칙을 중요시하고, 규칙을 칼 같이 지키는 독일인에 대한 선입견은 브레멘에 도착한 지 하루 만에 깨졌다.
무단횡단은 기본이고 길에는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비흡연자인 나는 무척이나 괴로웠다.
트램 정거장은 공인된 흡연장소였고 보도블록은 재떨이였다.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엄마도 담배를 물고 있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빠도 담배를 물고 있었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운전석 창문이 열리더니 손 하나가 빼꼼 나와 담배꽁초를 멋지게 튕겨냈다.
길거리에는 쓰레기가 넘쳐나고 처음 봤을 땐 그라피티 아트처럼 보였던 저질스러운 낙서가 눈에 들어왔다.
어질어질했다.
첫 번째 목적지인 브레멘은 생각보다 정신없이 지나갔다.
사전 준비도 부족했고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모자랐던 탓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전설이 서린 도시, 하멜른 Hamel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