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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Apr 27. 2024

ep. 2

주체로서의 성장



‘형님은 성장하는 캐릭터인 거 같아요’





의도치 않게 스시 일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바빴고 외워야 할 것도 많았다. 청결과 안전을 동시에 신경 쓰면서 음식을 빠르게 만든다는 건 주방 경험이 전무한 내게는 뇌가 제대로 가동하지 못해 우두커니 서 ‘이제는 뭘 해야 하지’를 끊임없이 묻게 만들었다. 손목에 기름이 튀겨져도, 사시미에 손가락들이 베어 뜨거운 피들이 떨어져도 음식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을 뿐 다친 상처를 인지할 쯤은 집에 와 손을 씻을 때였다. 새벽부터 잡아왔던 긴장의 끈이 풀려 감긴 눈꺼풀로 침대에 쓰러지기를 반복. 다시 일어나 일을 하러 가는 3 잡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직간접적으로 느껴지는 사장님의 압박과 일을 잘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난 30분 일찍 출근을 했다. 그날에 해야 할 수량들을 전날의 판매량으로 체크하고 주방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모든 세팅을 끝내는 것이 처음 목표였다. 냉장고 불을 켜고 에어컨, 튀김기, 밥통의 버튼을 차례대로 하나씩 누르고 프라이팬에 테리치킨을 한가득 올려 익히는 동안 칼을 들어 롤에 들어갈 아보카도를 4등분으로 칼집을 내는 것. 배우는 게 더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시간을 투자함으로써 노력으로 실력을 메우려는 의지 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사장님들이 한국에 들어가셔서 다른 지점 사장님과 일하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부족한 나에게 여러 가지 피드백을 해주며 일에 대한 섬세함을 가르쳐 주셨다. 음식이 거의 다 만들어질 때 사장님께서 ‘정민 씨는 이 가게의 보물이야. 보물.’이라며 지나가는 말을 해 주셨는데 못 들은척하고 튀김기 앞에서 더 요란하게 튀김을 튀겼다. (부끄러우니까..)




롤을 말며 무심히 던진 사수의 저 말은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 같은 것이었다. 성장한다는 건 그 정도를 점점 크게 하거나 이전보다 나아진다는 뜻이다. 나아진다는 건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진보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피드백을 잔소리라고 생각하기보다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배움이라고 생각하는 자세. 그 배움을 잊지 않고 바로 삶에 대입해 적용하려는 태도가 내가 현재 지니고 있는, 타지에서의 삶을 살아낼 수 있는 무기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우리의 노력이 빛을 바라지 못한 채 차갑게 식어갈 수 있다. 나 역시 7번의 수험생활을 통해 좌절감과 우울의 깊은 늪 속에서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도전을 두려워했고 더 이상의 고통을 감내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이 살아있다면, 삶을 살아내고 있다면 잔인하지만 당연한 인과관계를 받아들이라 말하고 싶다. 인생을 생기 있게 만드는 사랑, 자녀의 양육, 야먕, 우정 등의 충만한 생활은 고통이 배제할 수 없다. 생과 죽음, 믿음과 배신, 기대와 실망. 우리의 삶은 충만하게 살든지 아니면 삶을 아예 포기하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인생의 본질은 변화, 즉 성장과 쇠퇴로 만든 한 벌의 투구와 갑옷이다. 정당한 괴로움을 회피하려는 시도는 모든 심리적인 병의 원인이 된다.


난 살아 있다. 여전히 배우고 있다.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서가 절대 아니다. 벌레 같은 생활을 수도 없이 했고 마음먹은 생각들을 3시간 이상 가본 적이 전무할 정도로 의지가 나약하다 못해 아예 없는 사람이다. 도전을 제일 싫어하지만 가만히 누워서 밤새 쇼츠만 보는 나를 더 싫어한다. 그런 사람일수록 당위성에 자신을 매달아야 한다. ‘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에 ‘할 수 있다’는 인간의 의지를 뒷받침하면 ‘해야만 해서, 난 할 수 있다.‘ 는 문장이 된다. 미디어 중독에서 피하고 싶으면 잠을 자면 되고 잠을 자야 되는 이유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근해야 하는 환경을 만들면 된다. 가장 좋은 것은 일이라는 당위성.


’ 출근한다는 건 돈을 번다는 것이다 ‘에 주된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여러 가지 세부 목적들을 만들고 분산시켜야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은 의지, 업무적인 일을 처리하면서 느끼는 개인적 성취, 성장 그리고 쉴 수 있는 주말이 있는 삶이라면 그 쉼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자신만의 쉼을 찾아 탐구하는 자세. 물질적 보상은 이 수많은 목적 중 한 가지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비단 일 뿐만 아니라 결혼, 연애, 자녀 양육, 대학 진학 등 많은 것들에게 이것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렇지 않으면 돈이라는 한 가지 목표에만 매몰되는 객체의 삶으로 전락할 수 있다.




변화란 형태와 색채에 아름다움과 생동감을 주는 조형 원리라 말하고 조형은 여러 재료를 이용하여 형태를 만듦을 의미한다.

성장과 좌절, 기대와 실망, 사랑과 이별의 과정을 거치며 자아라는 형태를 만들고 그것에 경험이라는 색을 입혀간다면 언젠가 충만한 삶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강(自强)이라는 호를 오랫동안 가까이서 날 지켜 봤던 은사님께 하사 받았다. 스스로 힘써 몸과 마음을 가다듬다라는 뜻이다.


비로소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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