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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May 16. 2024

소년과 고향


  먼동이 트기까지는 아직 멀다. 들판은 한 치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짙은 어둠에 눌려 있다. 멀리 희미한 불빛 몇 줄기가 새벽잠에 겨워 깜빡깜빡 졸고 있다. 동지섣달을 넘어선 한겨울, 온몸으로 파고드는 칼바람이 매섭다. 국민학교 5학년을 마친 열두 살 소년은 그 밑으로 열 살, 일곱 살배기 남동생들의 손을 잡고 졸린 걸음을 종종거렸다. 소년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는 옷가지와 이불 보따리, 살림살이 짐꾸러기 하나씩을 이고 메고 말없이 발길을 옮겼다. 동네 어귀를 벗어나 들판을 가로지르는 철길에 들어섰다. 철로는 닿을 수 없는 거리를 유지한 채 소년의 길을 익숙하게 안내해 주었다.

무거운 발걸음이 차가운 침묵 속에 이어졌다. 이따금씩 동생들의 기침소리와 발걸음 소리만이 신 새벽의 적막을 두드렸다. 발길을 재촉하여 도착한 동산촌역이 안갯속 불빛에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서서히 동쪽하늘이 밝아오면서 길게 뻗은 시커먼 철마가 눈에 들어왔다. 소년은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생전 처음 열차에 올랐다. 기차는 희뿌연 연기를 토해내며 한바탕 꽥꽥 울어대더니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오르막길에 접어든 기차가 거친  숨을 내뿜었다. 소년은 성에가 잔뜩 낀 창을 입김을 불어가며 옷소매로 문질렀다. 차창 밖으로 뿌연 여명 속 고향 마을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소년의 고향은 철로 위에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덧없이 반백년의 세월이 흘렀다. 환갑을 넘긴, 귀밑머리 희끗한 그 소년이 오랜만에 고향 마을을 찾았다. 소년의 고향은 전주와 익산의 중간쯤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주변에 작은 언덕 하나 보이지 않는 평야 위에 서른 남짓한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동네 앞 너른 벌판에는 맑디맑은 시냇물이 주절주절 흘렀다. 마을 뒤로는 호남평야의 젖줄인 만경강이 눈이 시리도록 푸르게 펼쳐지고, 서쪽으로는 기찻길이 길게 달리던 마을이었다.  


  동네 어귀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길에 들어섰다. 콘크리트로 잘 정돈된 널찍한 길이 마을까지 이어져 있다. 소년이 어릴 적 이맘때쯤이면, 길 양편으로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깔려 한들거렸다. 달구지가 덜컹거리며 오가던 길 가운데는 소똥과 말똥 몇 덩이가 늘 뒹굴고 있었고, 그 자리엔 풀들이 듬성듬성 잘도 자랐다.

지금은 풀 한 포기 내어주지 않는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섰다. 젊은 청년이 자전거를 타고 무심하게 스친다. 또, 마흔 남짓한 여인네가 아이의 손을 잡고 지나다가, 낯선 이방인이 의심쩍은 듯 흘끔 쳐다본다. 소년은 눈인사라도 하고 싶었으나, 이미 지나친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옛 모습 그대로인 집은 없다. 기와집이 단 한 채 밖에 없던 마을에는 번듯한 양옥집들이 즐비하니 자리하고 있다. 2층으로 우뚝 선 집 앞마당에는 잔디가 깔리고, 담장이 높게 드리워진 집도 있다. 소년이 살던 집터를 지났다. 이미 오래전 외지인이 들어와 살고 있다는 그 집은, 블록담장과 굳게 닫힌 대문이 낯선 사람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다. 대문 사이로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측간 옆에 자그만 닭장과 뒤엄자리가 있었고, 맞은편엔 복숭아나무 한그루가 서 있던 앞마당은 새로 지어진 건물이 자리 잡아 흔적도 없다. 뒤란에 자리하고 있던 앵두나무 두 그루와 장독대에 피던 꽃들도 온데간데 없다. 술 한 잔 거나하게 드신 날엔 밤늦게 과자 한 봉지 사들고 삼 형제를 깨우던 아버지, 소년의 키만큼 높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장에 나가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대신해서 부엌과 앞뒤 마당을 분주히 드나드시던 할머니, 흙장난 치며 뒹굴던 동생들, 칠흑의 밤이면 멍석에 누워 손에 닿을 듯 쏟아지는 별들을 함께 바라보던 사촌누이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구부러진 골목길은 그대로이다. 동네 한가운데 고샅은 마을 아이들이 늘 모여서 놀던 곳이었다. 자치기, 말뚝박기, 공차기, 딱지치기, 땅따먹기를 하던 아이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뿔뿔이 제 갈 길을 찾아 하나 둘 고향을 떴다. 논밭 몇 뙈기의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서울로, 전주로, 대전, 인천 등지로 떠난 뒤 돌아오지 않았다. 몇몇은 지금도 안부를 물으며 살고 있지만, 대부분은 이 고샅에 어릴 적 흔적만을 남긴 채 소식이 없다. 모퉁이를 돌아가니 폐허가 된 집 한 채가 을씨년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반쯤 무너진 집채가 시커먼 입을 벌린 채 누워있고, 마당엔 잡초만 무성하다. 동네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버려진 집들이 군데군데 더 보였다. 정든 고향집을 버리고 떠났지만, 어느 하늘 아래선가 고향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을 옛 동무들이 아련하게 다가왔다.  


  들판으로 발길을 돌렸다. 동네 앞 너른 논배미를 가로지르던 냇가로 갔다. 동네 아낙들의 빨래터였던 이곳은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여름철 내내 소년과 마을 아이들은 이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 티 없이 맑던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물장구치던 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쟁쟁한데, 콘크리트 도랑으로 변해버린 냇가는 소년의 옛이야기를 묻어버렸다.

 

  누렇게 익어가는 나락이 고개를 숙인 논길을 따라 철로 위에 올랐다. 서울에서 전주를 지나 여수까지 이어지는 전라선 철길. 이 길을 따라 소년은 국민학교 5학년까지 십리길 학교를 걸어 다녔다. 철길은 소년과 동무들에게 또 다른 놀이터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엔 삼삼오오 짝을 이뤄 레일 위를 걷는 시합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철로 침목 위에 크레용으로 낙서를 하며 낄낄댔다. 겨울철엔 검불과 고춧대를 모아 불장난을 하며 언 몸을 녹였다. 어떤 날은 철로에 앉아 하루에 몇 번 밖에 오지 않는 기차를 한없이 기다렸다. 기차를 만나는 날에는 열차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열차가 서울까지 간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도 함께 실었다.


  수년 전 전라선 KTX가 새로 생기면서, 마을 동쪽으로 거대한 괴물처럼 가로지르는 고가철도가 고향 마을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꿔버리고 말았다.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늘 소년의 가슴속에 두 줄기로 달리던 옛 철길은 구조물이 거둬지고 잡초만 무성한 채 길게 누워 있다. 50년 전 새벽, 소년이 고향을 떠나며 차창을 바라보던 그 철길은 없다. 그래도 그 길에 묻힌 기억의 흔적을 따라 걷는다. 고향 앞뜰이 눈에 들어온다. 드넓던 들녘에는 비닐하우스와 물류창고가 들어서 있고, 저 멀리 보이던 황방산은 동산촌 아파트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철로 위에 선 소년에게 고향의 옛 모습은 없다.


  서쪽하늘에 해가 걸리면서, 스멀스멀 땅거미가 기어드는 마을 골목길에 다시 들어섰다. 가끔씩 고향땅을 밟을 때마다 정겹게 반겨주던 어르신들은 이제 이 골목에 없다. 소년이 뛰놀던 골목길엔 어색한 사람들만이 이따금 스쳐가고, 불빛을 밝힌 담장 너머로 낯선 목소리만 흘러나온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늪에 갇혀 겨우겨우 정 부치고 살며 그리던 고향은 이제 서먹한 얼굴로 변해버렸다. 50년이나 더 늙어버린 소년의 고향은 가슴 깊은 곳에 먼먼 그리움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갑자기 육중한 열차가 어둠이 스며드는 고향마을의 초저녁을 소란스럽게 가르고 지나간다. 기차는 눈 깜빡할 사이에 소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무심하게 흘러버린 세월이 기차의 꼬리를 물고 철로 위를 따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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