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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어가는 하루

by 윤기환

사과는 6월 중에 적과가 이루어진다. 착생수가 과다할 때, 해거리를 방지하고 좋은 과실을 수확하기 위해 알맞은 양의 과실만 남기고 따내야 한다. 얼마 전 적과를 한 어린 과실과 병충해 피해를 입은 과실들이 풀밭에 나뒹굴고 있다. 발에 밟히는 것과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사과다. 아이들 주먹만 한 부사는 아직 어린 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성인 주먹만큼 커가고 있는 아오리와 홍로들은 제법 사과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어떤 놈들은 이제 막 붉은빛을 띠기 시작하고 있다.


영주 땅 사과들이 햇빛과 바람을 먹고,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하루하루 익어가고 있다.


오후가 되니 폭염과 강렬한 햇살의 공격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1,200주나 되는 사과 과수원 나무주수 전수조사를 했다. 오래된 이 과수원은 비탈진 산에 산식으로 조성되어 있어, 정확한 나무주수 확인이 특히 필요한 과수원이다. 산비탈에 수령 40년이 넘는 나무를 비롯, 10년, 20년, 30여 년이 된 사과나무들이 저마다 세월의 무게만큼 뻗친 가지마다 과실을 달고 듬직하게 서있다. 계수기를 누르며 몇 차례 산비탈을 오르내리니 온몸이 땀으로 젖어 살과 속옷이 하나가 되어버렸다.

시원한 지하수 몇 바가지로 머리와 얼굴을 적시고, 과수원 주인이 내어준 냉수 한 병 들이키고 나니, 세상이 내 것이다. 나를 괴롭히던 작렬하는 태양조차 한순간 눈부시게 아름답다.


여름 한낮 오후, 강렬한 햇살에 산비탈 사과들이 익어가고 있다.

사과만 익는 게 아니다. 나도 벌겋게 익어간다.

영주 땅이 온통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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