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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소백산

by 윤기환

이른 아침, 소백산 자락에 안개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비로봉 정상은 아예 하늘속에 숨어버렸다.

달리는 차창으로 풀내음 머금은 바람이 스민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길을 따라 달린다. 안개 걷히듯 하루가 서서히 열리고 있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오후가 되면서 한 방울씩 비를 뿌리더니, 급기야 추적추적 땅을 적신다. 이미 시작한 착과수조사는 마쳐야 한다. 우비를 뒤집어쓰고 빗속에서 겨우 작업을 마쳤다. 내렸다 그쳤다 반복하던 비는 급기야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울부짖듯 퍼부어 버린다. 이미 계약자와 시간 약속을 한 과수원으로 차를 몰았다. 빗속을 뚫고 과수원에 도착했지만, 야속한 비는 그칠 줄 모른다. 비에 젖은 몸이 갑자기 한기가 든다. 우리가 춥게 보였던지 과수원 주인이 따뜻한 차 한잔을 내주신다. 그분의 따스한 정만큼 온몸이 훈훈해진다. 담소를 나누며 과수원 현황만 파악한 후, 내일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 가까이 소백산 자락이 뿌연 가슴을 열고 우뚝 서있다. 그 품에 내가 안긴다.

안개 자욱히 품은 소백산이 어머니의 품속 같이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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