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애마가 세찬 고압 물살을 맞으며 괴성을 지르고 있다.
열흘 동안 좁은 산길과 밭두렁 길을 쏘다니며 흙탕물을 뒤집어쓴 몰골이 여간 꾀죄죄한 게 아니었다. 그런 그가 샤워를 하며 오랜만에 환하게 웃고 있다. 구석구석 물줄기를 맞으며 쏟아내는 누런 흙탕물이 작은 내가 되어 흘러내린다.
그와 내가 인연을 맺은 지는 불과 3개월 전의 일이다.
퇴직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타고 있던 차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차 없이 산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나는 어려운 결단을 했다. 차 없이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곧바로 폐차를 하고 2년여를 차 없이 살았다. 차 없이 사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웬만한 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다녔다. 운동을 많이 할 수 있어 건강도 챙기고, 경제적으로도 이익이었다. 가끔씩 가족과 장거리 여행을 할 때는 렌터카로 대체하면 되었다.
차 없는 불편을 행복으로 바꾸며 살던 내가 차를 다시 살 수밖에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손해평가사 시험 합격이 그것이었다. 지방출장이 불가피한 손해평가 업무의 특성상 차는 필수 동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세월을 자동차 업계에 근무한 친구의 권유로, 산길과 논·밭길에 적합하고 가성비 좋은 SUB로 차를 뽑았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주인을 잘못 만난 나의 애마가 지난 열흘간 울퉁불퉁한 산길과 포장되지 않은 길들을 다니느라 고생이 많았다. 그의 온몸 구석구석 비눗물로 닦아주고 물을 뿌려주니 말간 새색시 얼굴처럼 곱다. 오랜만에 나의 애마에게 작은 보상이라도 준 것 같아 사뭇 행복하다. 집에 돌아와, 내친김에 나도 목욕탕에 들렀다. 애마를 씻기우 듯 내 몸도 구석구석 씻어냈다. 온몸에 쌓였던 피로가 물줄기를 따라 흘러내린다.
목욕탕을 나서니, 어느덧 하늘은 어둑하고, 거리엔 가로등과 차량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서있다.
정겹던 과수원과 들판도 없고, 밤하늘 별도 보이지 않지만 몸과 마음은 한결 개운하다.
그런데, 또다시 훌쩍 떠나야 할 것 같은 마음, 이 맘은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