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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Apr 27. 2024

골프

콜로라도는 여러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 독립한 지 100년째 되던 해인 1876년, 38번째로 미국의 주가 되었다고 하여 Centennial State, 로키산맥이 가로질러 경관이 수려하여 Coloful Colorado, Rockey Mountain State 등 다양한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 콜로라도의 주도인 덴버 역시, 도시가 1마일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하여 Mile High City,  스키와 골프를 거의 연중 즐길 수 있는 도시라 하여 Ski & Golf City 등 별칭을 가지고 있다.


덴버는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다. 9월 하순쯤이면 첫눈이 내려도 전혀 낯설지 않을 만큼 눈이 많다. 그러나 산악지역 이외에는 따스한 햇살에 금방 눈이 녹아버려, 눈이 내린 다음날이면 골프 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래서 겨울에도 스키와 골프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또 여름에는 기온이 높지만 비가 적고 습도가 낮아, 그늘 아래 있으면 선선하고 땀이 나지 않을 정도여서 한여름에도 골프를 즐길 수 있다.


덴버 유학시절, 나는 그동안 전혀 경험하지 못한 골프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때쯤 한국에서는 골프가 요원의 불길처럼 빠르게 번지기 시작했지만, 나는 일이 바쁘기도 하고 특히, 고급 스포츠로 칭할 만큼 그린피가 만만치 않아 쳐다볼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골프를 권하는 친구들에게 "내가 골프 칠 때까지만 살아라"라고 진담 섞인 농담을 할 정도로 나는 골프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덴버에 온 후 몇 개월이 지나고, 덴버 시내에 골프 박람회가 있었다. 함께 유학 온 친구가 박람회에 구경이나 가자고 해서 따라갔다가, 친구의 권유로 엉겁결에 그 당시 새로 나온 신형 그라파이트 골프채 세트를 새로 장만하면서부터 나는 골프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당시 퍼블릭 골프장 그린피가 10~20달러 정도여서 큰 부담도 없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비용이었다.

그 뒤로 학교수업이 없는 날이면 필드를 '야외도서관'이라 칭하며 몆몇 동료들과 골프를 쳤다. 가끔은 우리 교민들과 함께 필드에 나가기도 했다.


덴버에는 수많은 골프장이 있지만, 내가 주로 다녔던 골프장은 집 주변에 있는 곳이었다. 그중 가장 가까운 곳이 애플우드 골프장(Applewood Golf Course)이었다.

오늘의 첫 번째 덴버 투어 일정은 추억의 애플우드 골프장으로 정했다. 그곳을 향하는데 가슴까지 두근거리며 설레었다.

애플우드 골프장

골프장 입구부터 눈에 보이는 곳곳이 나를 아는 듯 손짓을 한다. 필드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입구의 연습장과 클럽하우스, 9홀이 끝나고 보이던 작은 연못도 그대로이다. 골프장을 감싸고 있는 테이블 마운틴이 길게 누워 있다. 모든 것이 그대로여서 정겹고, 아름답고, 고맙다.


이곳에서 나는 유학 온 친구들과 많은 땀과 웃음을 함께 했었다. 서울에 있는 그 친구들과 가끔씩 만나서 술 한잔 기울일 때면, 빠지지 않고 대화에 등장하는 곳이 여기 애플우드 골프장이었다.

 "꼭 한번 가서 옛 얘기하며 한 게임하자!"며 목소리 높여 잔을 마주치곤 했었다. 그만큼 이곳은 정이 많이 가는 곳이었다. 함께 가자던 그곳에 내가 혼자 왔으니, 돌아가면 그들을 약 올릴 만한 충분한  얘깃거리가 생겼다.


저쪽 1번 홀에서 티샷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왠지 익숙한 모습이어서 살며시 다가가 보니 한국 사람들이다. 남자 셋과 여자 한 분이 이른 아침 함께 라운딩을 준비하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라서 혹시 유학생이냐고 물으니, 여기 산지 오래된 교민이라 한다. 평일에 자유롭게 라운딩을 즐기는 여유로운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한국에서는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닐 것이다.

사진 몇 장 더 누르고,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뒤로하며 차를 돌렸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 추억이 있는 이곳에서 옛날 생각하며 골프 한 게임하고 돌아갔으면 좋겠다"며 진심 어린 얘기를 한다. 그러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우리에게 오늘은 일정이 빠듯하다.


다음날,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눈 또는 비가 올 거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예상외로 하늘이 맑았다. 로키마운틴 쪽은 짙은 구름이 있는 반면, 덴버 시내 쪽은 쾌청하지는 않아도 눈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당초 우리는 오늘 로키마운틴 국립공원에 가기로 했었다. 그러나 산악지역의 변화무쌍한 날씨 관계로 로키마운틴 국립공원 투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꼭 가보고 싶었으나, 아이들이 눈 내린 산간지역은 위험할 수 있으니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가족의 안전이 최우선이니 어쩔 수 없었다.

대신 골프채 대여가 가능하다면 골프를 치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이곳 숙소 호텔에서 가까운 잉글우드 골프장을 검색해 보라 했더니, 골프장 이름이 '로큰티'로 바뀌었는데, 골프채 렌트가 가능하다 한다.


차를 몰고 로큰티로 갔다. 클럽하우스에 들러 20년 전 이곳에 자주 왔었다고 얘기를 하니, 일흔이 훨씬 넘어 보이는 분이 잊지 않고 와줘서 고맙다며 따뜻하게 맞아준다.

남성용과 여성용 골프채 각 한 세트와 카트 두 개를 빌렸다. 여권을 보여주니, 시니어 할인까지 해준다. 이곳에 살지 않는 외국인에게도 시니어 할인을 해주는 것은 뜻밖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골프를 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옛날 가끔씩 연습장에도 함께 왔었고, 또 재미 삼아 함께 카트를 타고 라운딩을 한 경험이 있었다. 그 기억을 살려 함께 라운딩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도 그 추억을 기억하며 마냥 즐거워한다. 카트를 타고 함께 돌며, 중간중간 아이들이 티샷부터 홀아웃까지 라운딩을 경험하게 했다. 처음엔 헛스윙만 해대더니, 제법 공이 뜨고 앞으로 나간다. 공이 허공을 가로질러 나가는 걸 보고 아이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그 짜릿한 희열을 아이들이 몸으로 느끼고 있다.

9홀 라운딩을 하며, 두어 시간 더할 수 없는 행복을 가졌다.

로큰티 골프장의 라운딩


라운딩을 마친 아이들이 골프가 재밌다며, 이젠 골프를  배워보고 싶다고 꽤 진지하게 얘기한다. 이젠 성인이 되었으니 여유를 가지고 배워 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머지않은 날, 너희들이 결혼을 하고, 아들 며느리, 딸, 사위와 함께 라운딩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정말 행복하겠다!"라고 하니, 정말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아내와 아이들이 맞장구를 친다.

한바탕 크게 웃었다.


잘 쳐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머지않은 날, 오늘의 바람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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