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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May 01. 2024

덴버야, 잘 있거라!!

여행 9일째. 덴버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커튼을 여니 눈발이 날리고 있다. 엊그제 일기예보는 연이틀 덴버에 눈이 온다고 했다. 어제는 로키 산악 지역에만 눈이 내리더니, 오늘은 덴버 시내에도 눈이 내린다. 밤새 제법 눈이 쌓였다. 주차장에 있는 차들이 하얀 옷을 입은 채 처량하게 떨고 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 시동을 걸어 히터를 켜고 차량용 브러시로 눈을 털어냈다. 여러 날을 동고동락했던 애마가 까만 제 몸을 들어내며 씩 웃는다.

바람은 차고, 여전히 가는 눈발이 흩날린다.


채비를 하고 다시 창밖을 보니 서서히 눈이 그치면서 하늘이 조금씩 훤해지고 있다. 다행이다.

매일 허둥대던 아침이 오늘 처음으로 여유롭다.

어제 조시 선생님이 우리를 위해 싸 준 샌드위치로 아침을 때우며 어제의 뭉클했던 가슴을 나눈다.

정이란 무엇일까? 생각할수록 고맙고 행복하다.


오늘의 일정은 렌터카를 반납하고, 덴버공항에 가는 일만 남았다. 오후 7시 비행기에 맞춰 4시까지는 렌터카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가야 한다. 마지막 날인 만큼, 덴버 시내를 한 바퀴 돌며 여유 있게 마무리하기로 했다. 10시에 호텔을 나섰다. 아직 여섯 시간 정도 덴버의 시간이 남아있다.


딸아이가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가까운 콜로라도 밀스(Colorado Mills)를 둘러보자고 한다.

두 아이들 모두 쇼핑에 관심이 많지만, 특히 딸아이는 쇼핑몰 투어를 좋아한다. 딱히 사고 싶은 것이 없어도, 지나다가 쇼핑몰이 보이면 잠깐이라도 둘러보고 싶어 했다. 쇼핑을 하지 않더라도, 여행 중 잠깐씩 쇼핑센터를 둘러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 중 하나이다. 여행하는 중간중간, 라스베이거스를 비롯, 경유하는 도시들과 덴버의 주요 쇼핑몰 몇 군데를 짬나는 대로 투어를 했었다. 딸은 미리 인터넷에서 서핑해 둔 백 하나와 옷 두어 벌을 샀다. 덩치가 큰 아들도 국내에서는 쉽게 구하기 힘든 넉넉한 옷 두 벌을 챙기고 환하게 웃었다.

Colorado Mills

콜로라도 밀스로 향했다. 이곳은 종합 쇼핑몰로, 우리 가족이 덴버에 처음 왔을 때 많이 들렀던 곳이었다.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영화관을 비롯, 다양한 즐길거리, 먹거리도 있어 자주 왔었다.

입구에 다다르니 황토색 로고가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아직 쇼핑하기는 이른 아침, 차량들의 흐름은 그리 많지 않다. 어젯밤 내린 눈이 채 치워지지 않은 주차장엔 차량이 드문드문 서 있다. 딱히 살 것이 없기도 해서 차량으로 두 바퀴를 돌며 눈으로 만 옛 생각을 그렸다.


처음으로 한국어 자막 없이 오리지널 미국 영화(TAXI)를 보던 얘기, 스키복을 장만하고, 아내의 골프채를 사던 일, 즉석 스티커 사진에 푹 빠진 딸아이, 게임룸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던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왔다가 문을 닫아 막막했던 얘기 등, 그런저런 추억들을 얘기하며 천천히 차를 몰았다.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들추지 못했을 기억들이 새록새록 함께했다.


콜로라도 밀스를 벗어나 이제 차는 덴버시내를 향하고 있다. I-70번과 I-25번 도로를 갈아타며 덴버시내로 달렸다. 하얀 눈을 뒤집어쓴 로키마운틴을 배경으로 덴버시내 스카이 라인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동안 크고 작은 변화가 수없이 펼쳐졌을 덴버시 건물들이 불쑥 자란 키를 자랑하듯 우뚝우뚝 서있다.

다운타운에 들어섰다. 빌딩숲 사이로 흐르는 차량의 물결에 따라 천천히 시내를 돌며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즐겼다. 하루 정도면 덴버 시내 주요 명소를 도보로 돌아볼 수 있겠지만, 시간이 별로 없으니 아쉬운 대로 눈요기만 하고 스친다.

16번가 몰, 주 의사당과 주정부 건물, Coors Field 야구 경기장, 덴버 박물관 등 주요 건물들이 정겹게 눈에 들어온다. 거리에는 차량 이외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데, 한 무리의 아이들이 의사당 건물 계단을 내려오며 조잘조잘 왁자하게 떠들며 웃고 있다. 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온 모양이다. 천진한 아이들의 웃음이 예쁘고 귀엽다. 삭막할 만큼 썰렁한 한낮의 도심이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꽃이 핀 듯 활기가 넘친다.

덴버 시내 전경

시내를 돌고 나니, 시간은 오후 두 시를 넘어가고 있다. 아까운 시간이 마구 흐르고 있다. 공항에 도착하기 전,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 아이들이 선택한 미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피자였다. 시내 외곽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차를 몰았다. 조금은 한가한 주택가에 자리한 그곳은 맥주와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전형적인 미국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여유를 즐기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 눈에 뜨인다. 피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맛을 뛰어넘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마지막 만찬 치고는 조촐했지만, 모두 만족한 식사였다.


덴버 공항옆에 위치한 렌터카 회사로 차를 몰았다. 차 반납은 빌리는 것에 비하면 의외로 간단했다.

아이들이 반납 절차를 밟는 동안, 나와 아내는 짐을 내리고 차 안을 정리했다. 젊은 남자 직원이 다가오더니 차를 한 바퀴 둘러보고 차 유리창에 형광펜으로 확인했다는 표시를 한다. 그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우리가 함께 달려온 거리는 총 1,751 Mile(2,801Km)이었다. 8일 동안 먼 거리를 동고동락하면서 아무 사고 없이 차를 반납할 수 있다는 것에 깊은 안도를 느꼈다. 차를 한 바퀴 돌며, 고마운 마음을 담아 까만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애마가 씩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한다.


차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늘도 덴버 공항은 수많은 사람들의 입국과 출국 행렬을 받아들이며 북적이고 있다.

출국 수속을 밟고 비행기에 탑승을 하니, 땅거미가 서서히 기어들면서 사위가 적막한 어둠에 갇힌다.

어두운 활주로를 따라 천천히 달리던 비행기가 굉음과 함께 하늘로 솟아오른다. 아쉬운 이별이 손짓하며 따라온다. 또다시 긴 이별을 안고 떠난다.


"덴버야, 잘 있거라!!"

언젠가 그리움이 짙어질 즈음, 널 볼 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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