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으로 치닫던 봄이 지친 듯 풀썩 주저앉아 있는 틈을 놓칠세라 따가운 햇살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도 녹음 짙푸르고 하늘 맑은 6월 초, 열혈청춘의 북한강길 두 번째 도전을 위해 이른 아침 상봉역에 모였다. 이번 북한강 라이딩은 춘천에서 출발하여 서울로 오는 코스를 잡았다. 지난해 늦가을, 팔당댐에서 출발하여 춘천까지 북진 라이딩을 한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남진을 택한 것이다.
휴일 춘천행 기차는 앞·뒤 칸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다. 휴일이면 특히 라이더들이 많이 몰리는 북한강 길 라이더들을 위한 코레일의 적극적인 배려다. 감사의 마음을 안고 ITX 청춘열차에 몸을 실었다. 오늘도 자전거 칸은 춘천 가는 라이더들로 만원이다.
소양강 처녀상과 의암호
‘물과 안개의 도시’ 춘천은 언제 와도 마음이 포근하다. 춘천역에서 내려 공도를 타고 조금만 달리면 바로 의암호를 만날 수 있다. 호수 초입에는 의암호의 상징 ‘소양강 처녀상’이 애잔한 모습으로 서있다.
황혼이 지는 소양강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를 바라보며 가슴 조이던,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순정을 생각게 한다.
춘쳔역과 소양강 처녀상
'소양강처녀' 노래를 흥얼거리며 둘레길로 들어선다. 의암호 둘레길은 약 30km에 달한다. 데크로 연결되는 수변도로를 달리다 보면, 라이더들이 왜 이 길을 가장 사랑하는 길 중 하나로 꼽고 있는가를 알게 된다. 데크 길은 속도를 낼 수 없는 길이어서 오히려 좋다. 호수가 주는 수려한 풍광과 정감을 느끼면서 달릴 수밖에 없도록 길이 이어진다. 드넓은 호수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천천히 달리다 보면, 푸른 숲과 하늘, 반짝이는 윤슬과 자맥질하는 물고기, 하늘을 나는 케이블카가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며 가슴을 시리게 한다. 문득, 풍덩 호수로 뛰어들어 자연과 하나가 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도중에 애니메이션 박물관, 토이 로봇관, 춘천 인형극장 등 다양한 볼거리도 만날 수 있다. 그곳을 둘러보지 못하더라도, 너른 잔디밭에서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이 길의 매력이다.
의암호의 풍광
경춘선의 추억
우리 나이쯤 되면 경춘선 열차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가슴 한편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경춘선은 1939년 개통되어 70여 년의 세월을 옛길에 묻은 채, 2010년 12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철로가 자전거길이 되어 옛 추억을 더듬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 길 따라 유유자적 페달을 밟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산과 강을 따라 펼쳐지는 북한강 자전거 길은 의암호, 청평호, 운길산, 삼악산, 축령산 등을 지나며 아름다운 절경을 맛볼 수 있는 길이다. 또, 이 길은 대성리, 가평, 청평, 자라섬, 강촌유원지 등이 자리하고 있어 젊은이들에게는 만남과 낭만을, 노장년층에게는 추억과 향수를 주는 길이기도 하다.
당시 경춘선은 어느 역에 내려도 젊음이 넘쳐흘렀다. 열차 맨 마지막 칸에 앉아, 꽁무니로 끝없이 뽑아내는 두 줄기 철로를 바라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시절이 있었다. 주말이면 강촌 강변 모래사장에는 텐트가 늘 빼곡하게 들어섰고, 밤새도록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삼악산은 주말 등산객으로 북적였고, 가평, 청평, 대성리는 그 시절 젊은이들의 단골 MT 장소이기도 했다. 세월은 강물 따라 무심하게 흘러버렸지만, 가슴속 깊이 간직했던 추억까지는 휩쓸어 가지 못한 모양이다. 두 바퀴에 몸을 싣고 달리는 강가엔 아득한 추억이 길게 늘어서 있다.
추억 따라 흐르는 강
의암호를 시작으로 강촌, 삼악산, 가평, 청평, 대성리, 그리고 운길산역 밝은 광장 인증센터까지 70여 km를 달렸다. 달리는 곳곳마다 스치는 정겨운 풍경들이 아득한 추억을 소환하고 있다. 푸릇푸릇하던 나의 젊음이 낙엽처럼 떨어져 구르고, 날리고, 어디론가 바삐 달려가고 있다. 아련한 추억 따라 벅차오르는 가슴으로 페달을 밟는다. 우리에게 전할 말이 있는 듯 손짓하는 강물에게 눈길을 던지며 휘파람을 불어 본다.
북한강 깊은 강물이 그려내는 수채화를 가슴 시리게 담으며 달리는 강가엔, 먼 먼 기억들이 잠겼던 봉인을 풀고 뛰쳐나와 펄럭펄럭 춤을 추고 있다.
북한강 길은 잊었던 사람들을 생각게 하고, 내 젊은 시절을 회상케 하고, 흘러간 세월을 추억케 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