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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밤 May 07. 2023

익숙함의 진짜 모습

닳아가는 칫솔모는 너에 대한 내 마음일까

매일 아침 눈을 뜨고 꿈결의 정신이 현생으로 돌아오는 가장 첫 길목엔 칫솔이 있다.

무의식의 양치질이 시작되면 그날의 할 일, 생각나는 사람, 걱정거리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린다.

오늘은 문득 칫솔모가 닳아 무뎌져 양치가 미지근한 기분이 들어 새 칫솔을 꺼냈다.

빳빳하게 균일한 모습으로 서 있는 칫솔모는 '새것'이라는 느낌에 설렘까지 줬다.

치약을 쭉 짜서 입속으로 가져가니 웬걸, 그 설렘은 곧 사라지고 잇몸 구석구석을 과하게 찌르는 칫솔모에 불편함이 느껴진다. 심지 마지막 헹굼에는 피를 보았다.

그러다 내 이빨 모양을 고스란히 반영해 높이가 제각각인 닳아버린 칫솔을 바라본다. 한 달? 두 달? 얼마나 썼을까.

'이 칫솔도 처음엔 찝찔한 피맛을 봤겠지?'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마음의 무뎌짐에 대해 생각해봤다.


'새로움'은 가슴에 두 방망이질을 해대는 삶의 활력소인 것은 분명하다. 우린 늘 '신상'에 열광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오늘은 보잘것없던 닳아버린 칫솔에서 '오래됨', '익숙함'의 소중함에 생각을 집중해본다.

조금씩 닳아 내 이빨에 꼭 맞춰져 적당한 상쾌함을 선사하는 고마운 녀석이다.


이런 생각은 어느새 너에게까지 이어져 바삐 양치하던 손을 멈추게 했다. 오래되어 둥글둥글진 우리의 마음도 처음엔 '새로움'이라는 옷을 입고 시작했을 것이다. 균일하게 서있는 빳빳한 새 칫솔처럼.

그 시작을 잊지 않고 지금의 둥글둥글한 마음을 더 소중하게 여기려 노력해보려 한다.

오늘은 쓰던 그 칫솔이 왠지 잇몸 구석구석을 상쾌하게 해 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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