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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함’은 황무지를 비옥하게 만든다

by 책밤

죽음을 앞둔 한 농부가 있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성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한량이었다. 마음 한구석에 근심을 안은 채 죽음을 기다리던 농부는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다. 그리고 아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내가 포도밭에 귀중한 물건을 숨겨뒀으니 내가 죽고 나면 찾아보거라.”

아들은 아버지가 죽자, 포도밭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보물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아들이 열심히 파헤친 땅에서는 여느 해보다 많은 포도가 열렸다.


흔히 ‘공부는 엉덩이로 한다.’라고 말합니다. 족집게 강사를 찾아다니며 요점만 익히려는 사람에게는 와닿지 않는 이야기겠지만, 오랜 시간 공부에 매진하는 사람이 큰 성취를 얻을 수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에게 이런 꾸준함은 오히려 미련함으로 여겨지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은 초 단위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하룻밤 새 일확천금을 얻는 꿈을 꾸며 새로움을 찾아 나섭니다. 그렇게 유행을 좇기에 바쁘다 보니 땀 흘려 일해 얻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합니다.


위 이야기의 농부는 정말 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땅속에 귀중한 것을 숨겨두었다는 거짓말로 아들이 열심히 땅을 일구게 했으니 말입니다. 아들은 넓은 포도밭을 파헤치며 보물을 찾아 헤맸습니다. 하지만 보물이 나올 리가 없었습니다. 아들은 원망 섞인 말을 내뱉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보기 좋게 일궈놓은 땅을 보며 자기 인생에서 가장 성실하게 몸을 움직인 날이었음 깨닫습니다.


마흔은 많은 것을 얻음과 동시에 많은 것을 잃는 시기입니다. 젊은 시절보다 많은 돈을 벌지만, 몸의 어느 한 군데에서는 이상 신호를 보냅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쌓는 인간관계는 늘어가지만, 진짜 친구라고 부를만한 인연과는 점점 멀어집니다. 또 승용차로 어디든 편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그만큼 두 발로 걷는 시간은 줄어듭니다.


이렇듯 마흔은 얻는 기쁨만 느끼기에는 잃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사라져가는 것 중에서 가장 안타까워해야 하는 것은 건강도 친구도 아닌 바로 ‘성실함’입니다. 열정은 어떤 일을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해내는 밑거름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열정은 삶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자세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마흔에 바라본 세상은 어떤가요? 많은 것을 경험해 봤기에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는 일상입니다. 누군가는 쉴 새 없이 추천되는 짧은 영상을 보며 “이렇게 즐길 거리가 넘치는 데 무슨 소리야.”라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잠시 웃고 넘겨버리는 가짜 호기심입니다. 절대 가슴속 열정을 되살릴 불씨가 되지 못합니다.


시작은 보석을 찾기 위해서였지만 어찌 되었든 넓은 땅을 손수 일군 농부의 아들처럼 성실하게 무언가를 해보십시오. 맨땅을 파헤치는 의미 없는 일일지라도 꾸준히 한다면 어느 순간 포도 넝쿨이 자랄 수 있는 틈새가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라난 싹을 잘 가꿔서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겁니다.

마흔에는 세상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손가락을 휘저어 넘겨버리는 가짜 호기심이 아닌, 땀 흘려 일구는 진짜 호기심을 마음에 품는 사람만이 뻗어나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삶에 무게를 더하는 이야기>


노자의 『도덕경』에는 ‘구 층 높이의 누각도 한 줌 흙을 쌓아서 만들어진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손가락 틈을 빠져나갈 정도로 미세한 흙도 쌓고 다지기를 반복하면 구 층 높이의 화려한 누각이 됩니다. 지금 하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때 되새겨볼 말입니다.

하루는 초등학생 딸아이가 열심히 종이접기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가장 마지막 페이지인 것을 보니 종이접기의 말미를 장식할 거대한 무언가를 만들려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색종이 한 장을 집어 들어 접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몇 분 뒤 아이의 손바닥 위에는 작은 원기둥 형태의 무언가가 놓여있었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빠에게 아이가 말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대단한 걸 보여드릴게요.”


아이는 그렇게 말한 뒤 몇 시간을 종이접기에 매달렸습니다. 작은 아이라고만 여겼는데 무언가에 몰입하는 뒷모습이 장인의 자태였습니다. 마침내 작품이 완성됐는지 아이가 큰 소리로 엄마와 아빠를 불렀습니다. 큰 기대 없이 아이의 방에 들어갔는데 작은 원기둥들이 모여 꽃을 이루고 그 꽃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모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처음 아이가 만든 작은 원기둥은 큰 모빌을 이루는 꽃, 그리고 그 꽃을 이루는 꽃잎이었습니다.


한 줌 흙이 쌓여 구 층 높이의 누각이 되고, 작은 원기둥이 모여 화려한 모빌이 됩니다. 마흔에는 그런 귀중한 한 줌의 흙, 작은 원기둥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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