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한 마리가 고기 한 덩어리를 입에 물고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다. 까마귀가 고기를 한 입 맛보려는 순간, 길을 지나던 여우가 까마귀에게 말을 걸었다.
“까마귀님, 까마귀님이야말로 기세가 높고 풍채가 아름다워서 새들의 왕이 될 자질이 충분합니다. 목소리마저 우렁차다면 분명 새들의 왕이 될 것입니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까마귀는 여우에게 자기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입에 물고 있던 고기를 내던지고 기세 좋게 울어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우는 재빠르게 달려가 떨어진 고기를 낚아채며 말했다.
“까마귀야, 네가 새들의 왕이 되려면 먼저 현명함을 갖춰야 할 거야.”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합니다. 까마귀도 여우의 달콤한 말에 신이 나서 감정이 한껏 고조됩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어대고 정신을 차려보니, 고기는 이미 여우의 손에 넘어간 뒤였습니다. 으스대던 까마귀에게 돌아온 것은 억울함과 배고픔이었습니다.
『논어』 「학이」 편에서 공자는 “말을 교묘하게 하고 보기 좋게 얼굴빛을 꾸민 사람 중에는 어진 이가 드물다.”라고 말합니다. ‘교언영색(巧言令色)’, 즉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꾸미다’라는 뜻입니다. 간사한 꾀를 부리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야기 속 여우는 까마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속에도 없는 말을 내뱉습니다. 까마귀가 고기를 내던지게 만들기 위해서 ‘교언영색’ 한 것이죠.
인생에서 여우같은 사람을 많이 만납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고깃덩이를 얻기 위해서, 때론 관계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교묘한 말을 하고 낯빛을 꾸밉니다.
“너 정도 위치면 중형차 이상은 타야 하지 않겠어? 이번에 새로 출시된 차가 있는데 내가 특별히 직원 할인까지 넣어서 맞춰줄게. 시승이라도 한번 해봐.”
“내 친구 중에 너처럼 배려심 깊은 애가 없는 거 같아. 그래서 말인데, 혹시 약속일을 좀 바꿀 수 없을까? 그날 내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이해해 줄 거지?”
“우리 부서에서 OO 씨만큼 문서를 잘 만드는 사람이 없어. 이번 건은 OO 씨 일은 아니지만 한번 맡아서 해줄 수 있겠나?”
칭찬의 말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속절없이 자기 것을 내어주고 맙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칭찬은 한 귀로 흘려보내는 것이 맞습니다. 만약 관계가 소원해질까 봐 염려된다면 오히려 낯빛이 번지르르한 그 사람과는 연을 끊는 것이 낫습니다. 그들의 칭찬에 잠시 기뻐한 대가로 억울함과 배고픔을 느끼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남이 해주는 칭찬은 가려들어야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에게 하는 칭찬은 넉넉해도 좋습니다. 다만 타고난 본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만약 이야기 속 까마귀가 자기 목소리와 생김새를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면 여우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았을 겁니다. 여우가 말하는 ‘우렁찬 목소리’를 까마귀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까마귀의 울음소리는 높고 단단한 소리에 가깝지, 사자의 포효처럼 우렁차지 않습니다. 평소 까마귀가 자신의 특색있는 목소리를 인정하고 사랑했다면 분명 여우의 말이 교묘한 속임수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겁니다.
마흔에는 내 모습,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사랑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칭찬의 말을 꾸밈없이, 또 넉넉하게 전합니다. 그렇게 교언영색 하는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마흔이 되어 갑니다.
<삶에 무게를 더하는 이야기>
거짓된 칭찬은 환심을 사기 위한 말, 즉 ‘아첨’이기도 합니다. 아첨의 말에는 알맹이가 없습니다. 그저 상대의 기분을 살피며 좋은 단어를 나열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책의 퇴고를 위해 집 근처 도서관에 들렀습니다. 주로 머무는 자리에서 열심히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얼굴이었습니다. 당황한 표정을 짓는 내게 그는 이어서 말을 건넸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인데요.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정중하게 말하는 그의 태도에 흔쾌히 옆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자리에 앉은 그는 내게 말을 건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자신은 AI 기술을 활용해서 지역 분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한 권을 쓰고 있고, 마침 내가 눈에 띄어 사연 하나를 들려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보다 몇 살 아래로 보이는 그의 열정이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첫 번째 책 출간 과정을 들려주었습니다. 출간 작가라는 제 말에 그는 반갑고 놀랍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제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초고가 완성되면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몇 주가 흘렀습니다. 그가 장문의 문자 한 통을 보내왔습니다. 그는 책의 초고가 완성되었다는 말과 함께 나의 출간작을 모두 읽어봤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소 민망한 칭찬의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문자의 마지막 줄에 예상치 못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책을 제작하는 데 생각보다 큰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 그리고 일정량의 책을 사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당황한 마음을 추스르고 잠시 고민한 뒤 답장을 보냈습니다. “작가님, 인터뷰 즐거웠습니다. 앞으로의 집필활동을 응원하겠습니다.”라고요.
사실, 호의로 책 몇 권을 사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자에 담긴 칭찬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나의 첫 책과 두 번째 책이 어린 딸과의 추억을 담은 이야기라 인상 깊게 봤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책은 딸아이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아니라, 딸아이가 성년이 되었다는 가정하에 쓴 편지글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제 책을 읽지 않고 그저 교언영색 한 모양이었습니다.
이제는 상대의 아첨하는 말에 쉽게 휘둘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교묘한 말과 거짓된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봅니다. 그렇게 마흔에는 ‘알맹이 없는 칭찬’은 듣지도, 하지도 않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