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꾼이 한 소나무를 쪼개고 있었다. 그는 나무를 쪼개기 위해 소나무를 깎아 만든 쐐기를 사용했다. 끝이 뾰족한 쐐기는 소나무를 쪼개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몸통이 이리저리 쪼개진 소나무가 말했다.
“나를 베어버린 쇠도끼보다 내게서 비롯된 저 쐐기들이 더 원망스럽구나.”
나무를 목재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도끼로 베어낸 뒤 알맞은 크기로 쪼개야 합니다. 그때 나무를 효과적으로 쪼개기 위해서는 끝이 뾰족한 사선 모양의 쐐기가 필요합니다. 쐐기를 군데군데 박아 놓고 그 뒤를 번갈아 가며 내리치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나무를 쪼갤 수 있습니다.
이야기 속 소나무도 목재로 쓰이기 위해 나무꾼에게 베이고 쪼개졌습니다. 그런데 소나무는 쇠도끼에 당하는 아픔보다 쐐기에 찢기는 아픔이 더 크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쐐기가 소나무인 자기에게서 비롯됐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날카로움이 몸통을 헤집고 있으니 그 속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한 편이라고 여겼던 이에게 배신당했을 때 고통은 배가 되는 것입니다.
한 야구선수가 불명예스럽게 은퇴했습니다. 승부조작에 가담해 몇 년 동안 수억 원을 편취한 혐의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게 된 것입니다. 십 년 가까이 팀에 헌신한 선수가 돈 때문에 승부를 조작했다는 사실에 팬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동안 한배를 탔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자신들 몰래 선체에 구멍을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때론 배신자에게 입은 경제적 손해보다 정신적 충격이 큰 탓에 재기불능 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한편, 차갑게 등 돌린 사람을 붙잡아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믿어달라고 말한 적 있나요? 그렇게 믿고 싶었던 사람은 당신 아닌가요?”
맞습니다. 상대방을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여긴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입니다. 상대가 달콤한 말로 유혹했을지 모르지만, 한입 맛보기 위해 덤벼든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상대방의 배신으로 상처가 났지만, 그 부위를 덧나고 곪게 만드는 것은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그러니 배신을 당하더라도 상대를 원망하기 이전에 자기 마음을 돌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마흔에 주위를 돌아보면 이런 지인이 꼭 있습니다. 야심 차게 사업을 시작했다가 본전도 찾지 못하고 빚만 얻은 사람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 ‘좋은 사업 아이템이라고 홍보하는 탓에 투자했다.’, ‘친척이라 믿을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돈 앞에서는 남이더라.’라는 식의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등 뒤에 비수를 날리는 사람이 ‘나쁜 놈’입니다. 하지만 그런 배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니 만약 그가 날리는 비수가 내 몸에 박혔다면 눈물 흘리며 ‘어떻게 네가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비수를 뽑고 상처 부위를 틀어막아야 합니다.
마흔에는 불현듯 찾아오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얼굴빛을 꾸미며 다가오는 사람에게 믿음을 주고 상대가 그 믿음을 저버렸다며 비통해하는 굴레에 빠지는 것을 보면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지금껏 마음을 다잡고 굳센 걸음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지만 딛고 선 땅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믿음을 준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같은 배를 탄 사람 중에 목적지까지 함께 할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만약 선체에 구멍을 뚫는 사람이 있다면 가차 없이 그를 바다로 내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내치며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오히려 배가 침몰하기 전에 그를 몰아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삶에 무게를 더하는 이야기>
선입견은 상대방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마음의 눈을 가립니다. 대개 선입견은 남의 안 좋은 면을 찾으려는 시도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야.’, ‘그는 언제나 나를 지지해.’, ‘굳이 세를 나누자면 그는 나와 한 편이야.’와 같은 좋은 선입견입니다.
그런데 상대의 속마음을 넘겨짚어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배신당할 가능성을 높이는 일입니다. 그러니 남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내 마음 또한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 중에 인상이 참 좋은 분이 계셨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함께 식사했는데 그분의 직업은 자동차 판매점의 지점장이셨습니다. 그 뒤로도 몇 차례 식사 자리를 가졌고 친분이 쌓여 개인적인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항상 긍정적인 기운을 전하는 분이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그러는 사이, 그분을 마음속으로 ‘내 편’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십 년 가까이 타던 차를 바꿔야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고민 없이 그분에게 연락했습니다. 그분은 직접 시승을 시켜주며 차에 대한 세부적인 것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문제 없이 계약하고 몇 주 뒤 새 차를 인계받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차를 운행하던 중에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차량 수납장 안쪽에서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물건이 나온 것입니다. 순간 새 차 특유의 냄새도 덜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그래서 그 분에게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정확한 해명을 듣지 못한 저는 매장을 찾았고,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좀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매장에 전시되어 있던 차량을 제게 판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시승을 하다가 잠시 넣어둔 물건을 제가 발견한 것이었고요.
차에 특별한 하자가 없으니 전시 차량도 잘 타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애초에 그분의 밝은 기운은 저를 지지하고 응원하기 위함이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그 사람의 의도가 어떠했든 그 마음을 감사히 여기며 그를 내 편으로 여긴 것은 저 자신이었습니다.
마흔에는 이런 마음의 상처가 수시로 생깁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도 상처받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불신의 삶을 살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늘어나는 마음의 상처를 잘 치유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화를 낼 기운조차 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상대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대신 내 마음을 돌보기로 합니다.
저는 그 분에게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고 뒤돌아서 매장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그분의 전화번호를 검색한 뒤 이름 옆에 몇 글자를 추가했습니다. ‘사기꾼’이라고요. 물론 거친 욕설 한마디도 덧붙였습니다. 그렇게 훌훌 털어버리는 것이 내 마음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