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길입니다. 교차로에서 빨간불 신호에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이내 택시 옆으로 큰 버스 한 대가 뒤따라와 섭니다. 별생각 없이 택시의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탄 택시가 뒤로 후진을 하는 것이 아닌가요. 순간 놀라 정면을 바라보니 내가 탄 택시가 후진한 것이 아니라 옆 차선 버스가 조금 먼저 출발을 한 것이었습니다. 가끔씩 겪는 이런 착각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택시의 창문을 옆 차선의 버스가 빈틈없이 가립니다. 그래서 택시의 창밖 풍경은 마치 하나의 커다란 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버스가 조금 먼저 출발하자 창밖의 벽은 그대로인 채 내가 탄 차가 후진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만약 창문이라는 한 프레임 안에 버스와 비교할 수 있는 다른 풍경, 예를 들어 가로수 한 그루만이라도 있었다면 버스가 움직이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을 때죠.
우리는 때로,
‘내가 그때 왜 그랬지?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평소의 나라면 절대로 그러지 않았을 텐데.’
라며 후회하는 일이 있습니다.
대개 자신의 평소 습관이나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하지 않았을 법한 일을 하는 경우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경우에 발생합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생각의 창문이 큰 버스에 가려져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뭔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이라면 의도적으로 마음의 여유 공간을 만들어 비교 대상을 만들어보세요. 그러면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인지, 아니면 창밖 버스가 움직이는 것인지 금세 알아챌 수 있습니다.
택시의 작은 창문을 가득 메운 버스처럼, 우리의 사고를 마비시키는 자극적인 요소들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SNS에는 누가 더 완벽하고 화려한 삶을 사는지 경쟁하는 게시물들이 쉴 새 없이 올라옵니다. ‘감성’이라는 구실은 자기 자랑을 거리낌 없이 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사용될 뿐입니다.
이런 보이지 않는 거대한 경쟁의 흐름은 ‘생각의 창문’을 가려 실제로 자신의 마음이 움직였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마치 옆 차선 버스의 움직임에 내가 탄 차가 움직인 듯한 착각처럼 말이죠.
이럴 땐 마음의 여유 공간에 가로수 한 그루를 심어 보세요.
누가 뭐라고 하든, 어떤 일이 닥쳐오든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가로수 한 그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