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삼월 딸이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했다.
1980~1990년대 타지에서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만신창이가 되었던 내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두 딸 키울 땐 양가 부모님들은 멀리 계시고 비빌 언덕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황혼 육아에 매여 노년의 안온함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일하는 작은딸과 사위를 도와줘야 한다는 일념으로 손주들 등•하원을 맡겠다고 자처했다. 하지만 딸의 출근 날짜가 가까워 오자, 여섯 살 손녀와 세 살 손자 돌볼 생각만 해도 가슴에 돌덩이를 얹어 놓은 듯 갑갑했다.
딸에게 혼자 둘을 보는 일이 힘드니 돌보미를 구하자고 부탁했다. 딸은 아무리 돌보는 분과 함께 있어도 아이들은 할머니한테만 엉겨 붙어서 별 의미가 없다며 다른 방법을 찾아본다고 했다. 그 해결책은 딸이 먼저 출근하고, 사위가 두 아이 등원시키고 출근하는 ‘유연 근무제’였다. 나는 손주들이 하원하고 딸이 올 때까지 서너 시간만 돌보면 됐다.
‘아하! 이런 정부의 육아 정책이 있었지!’
그 말만 들어도 숨구멍이 트이고 훨훨 날아갈 듯 가뿐했다. 각자 1/3씩만 담당하여 육아 바퀴가 돌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만약 유연 근무제 없이 나 혼자 손주들 등•하원을 책임졌다면 더 힘들고 외로웠을 것이다.
사위는 아침마다 치열한 등원 전쟁을 치르고 출근길 전철에서 셋이 소통할 등원 기록을 남긴다. ‘먼 훗날 자기도 육아 현장에서 긴박한 삶을 살았고, 아빠로서 제 몫을 다하려고 무지 애썼다.’는 것을 알면 스스로 감동할 것이고 가슴 벅찬 추억이 될 것이다.
아이를 출산한 엄마에게 산후조리원 동기가 있듯이 나에게도 놀이터에서 만나는 특별한 육아 동지가 있다. 그곳에는 많은 아이들이 논다. 손자와 나이와 성별이 같은 자녀를 둔 아빠 둘과 나는 자연스럽게 육아 동지가 되었다. 한 아빠는 육아휴직 중이고 다른 아빠는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을 활용하여 아이 하원을 책임지고 있다.
한 아빠는 괴물 놀이를 잘해준다. 그는 자기 아이를 위해서 몸을 사리지 않는다.
손자는 그 아빠를 보면 뒤에서 쫓아가 깔깔깔 웃다가 괴물 놀이에 동참한다.
“괴물이다. 유준이 잡자.”하며 큰 소리로 액션을 취할 땐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손자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작은 놀이터에 울려 퍼지면 내 마음도 덩달아 춤을 춘다.
할머니가 해주지 못하는 것을 그 아빠가 대신해 줘서 정말 고맙고 나도 실컷 웃는다.
그는 같은 어린이집 학부모가 아니고, 같은 아파트에도 살지 않지만, 같은 시간대에 같은 놀이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아이들과도 열심히 놀아준다. 놀이터에 있는 보호자들은 내 아이 네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학습 공동체 품앗이 동지들이다.
며칠째 괴물 놀이를 해주는 아빠가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 손자도 은근히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오늘 드디어 그가 나타났다. 손자는 너무 반가웠는지 공룡 발걸음 흉내를 내며 다가간다. 등 뒤에서 공룡처럼 으르렁거리고 따라다니며 아는 체를 한다.
“괴물이다. 유준이 잡으러 가자”하며 깜짝 놀라 달아나는 손자 손을 덥석 잡는 모습이 정말 정겹다.
큰 리액션에 손자와 같이 있는 아이들도 덩달아 웃는다. 아이들은 재미있게 놀아주는 사람을 기억하고 기다리나 보다. 그 아빠 덕분에 같은 공간에 있는 많은 아이들이 행복해 보인다.
또 다른 아빠는 손자와 공놀이를 잘해주고 번쩍 들고 안아서 풍차 돌리기를 해준다. 손자는 너무 재미있다며 “또또’”를 외친다. 그가 발재간을 부리며 공을 이리저리 굴리면, 손자는 공을 쫓아다니느라 땀을 뻘뻘 흘린다. 이런 모습도 이 놀이터에서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아직은 공놀이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아들이 함께 하기를 바라며 더 열심히 놀아 주는 아빠 마음이 보인다.
놀이터에서 지켜보니 엄마들과 달리 아빠들은 동작이 크거나 잡기 놀이 같이 몸으로 하는 놀이를 잘해준다. 아이들은 아빠들을 쫓아다니며 폐가 열리고 가슴이 활짝 펴질 정도로 깔깔거리며 웃고 뛰어다닌다. 아이들의 정서, 신체, 감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아빠들과의 놀이를 더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며칠 전 그들에게 주말농장에서 따온 상추와 쑥갓, 깻잎을 조심스럽게 건네주었다.
쑥갓 향이 너무 좋고 햇볕 짱짱하게 받고 자란 채소를 삼겹살과 맛있게 먹었다며 고마움을 전한다.
두 달 후 복직할 아빠는 이 놀이터랑 할머니가 주신 채소가 많이 그리울 것 같다고 했다.
복직하면 더 이상 이 시간대에 이 놀이터에 올 수 없다며 울컥하더니 말끝을 흐린다.
채팅방이라도 열고 싶다고 말하는 육아 동지가 정말 고맙고 진심이 느껴졌다.
현대는 물질 만능주의, 개인주의가 팽배해 자기만 아는 격렬한 경쟁 속에 살아간다. 하지만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에는 보호자들의 배려, 격려, 돌봄의 강이 부드럽게 흐른다. 자기가 준비해 온 간식을 나눠주며 정을 주고받는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며 웃고 소통하는 재미가 있다. 나는 손주들이 맺어준 인연과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즐겁다. 어디서 관계를 맺든 자리에 맞는 목적과 공감대가 있다. 현재는 손주들을 돌보기 때문에 놀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남다르다. 특히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을 사용하는 두 아빠와 다른 육아 동지들과의 만남은 무척 소중하고 특별하다.
그날 아침 TV 뉴스에서 저 출산율을 해결하기 위해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다는 소식을 듣는데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
놀이터에서 줄넘기 줄로 낚시하는데 눈감고 소원 빌라고 하는데 이렇게 눈을 감음 무슨 소원을 빌까?
뜨거운 여름 아파트 근처에서 매미 잡아서 날개도 입도 만져보게 해주는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