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날은 1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였다. 내가 아침에 가지고 간 동지 팥죽을 손주들은 맛있게 먹었다.
“유정아? 오늘이 동지니 하현달이 맞다.”
“어떻게 알았어.”
“아빠와 달 공부를 한 적이 있어요.”
손녀는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을 종이에 그렸다.
“초승달, 상현달은 왜 그리지 않았니?”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할머니, 보름달은 15일에 뜨죠?
그러면 하현달은 언제 떠요?
얼른 인터넷으로 찾아봐요.”
나는 손녀의 호기심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검색했다.
“하현달은 음력으로 22 ~23일이네. 상현달은 7~8일, 초승달은 2~3일에 뜬대.”
하지만 손녀는 복잡한 지 더 이상 할머니의 설명을 듣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다.
“우리 유정이는 어릴 때도 하늘을 자주 올려다봤었는데. 지금도 그렇구나!
아주 좋은 습관이고 좋은 생각이야.
그래서 가끔 생각지 못한 멋진 자연을 관찰할 수 있었지.
지나가는 구름을 보고 양털 모습 같다고 말했어.
하얀 연기 내뿜고 잽싸게 날아가는 비행기도 봤지.
장마 끝나고 무지개도 자주 봤잖아.
운 좋을 땐 쌍무지개도 봤었지. 정말 황홀했었는데!”
자연을 관찰하는 자세가 좋다며 손녀 등을 토닥여 주었다.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솜사탕처럼 부웅 떠다니는 것 같아요.”라며 손녀는 환하게 웃었다.
발음도 잘 안 되는 세 살 손자는 오늘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름, 구름빵, 새, 나무, 비행기”라고 외친다.
피카소는 “모든 아이는 예술가다. 문제는 우리가 어른이 된 후 ‘어떻게 예술가로 남을 것인가’이다.”
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원래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는가?’
어른들은 전진만 할 뿐 눈을 돌려 위를 보거나 멈추어서 보지 않는 것 같다.
어른인 나도 언제부턴가 하늘을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올려다본 기억이 거의 없다. 뭐가 그리 바쁜지! 내 시야에 적당히, 평온하게 펼쳐진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놓치며 살아간다.
어느 날 안과에서 검은 천을 둘러쓰고 고성능 자동 시야기로 검사를 했다. 위, 아래, 좌우로 어느 선까지 볼 수 있는지 빛의 민감도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빛이 곳곳에서 번쩍번쩍하는 순간 버튼을 눌러야 했다. 검사하는 동안 조금 불안했다. 내 시야가 점점 좁아진 것을 검사자인 나도 인지할 수 있었다.
‘신기해서일까?
아니면 머리 위의 다른 공기 맛을 느끼기 위해서일까?’
아이들은 오늘도 그네를 타며 머리를 뒤로 젖혀 하늘을 본다.
“할머니 아파트가 거꾸로 보여요. 나무도, 미끄럼틀도 거꾸로 보여요.”
세 살 손자는 아예 미끄럼틀 위에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눕는다.
그 옆에 손녀도 나란히 누워
“하늘, 구름, 새가 날아가요”하며 눈에 보이는 것들을 열심히 조잘거린다.
그런 아이들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나도 바쁘게 생활하면서도 틈틈이 넓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푸드둥 힘차게 날아가는 새도 본다. 길가에 핀 꽃들을 눈여겨본다. 눈부신 태양, 폭신한 구름, 푸르른 나무를 눈앞에서 볼 수 있어서 무한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