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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Oct 23. 2024

“할머니, 나도 눈물 나요. 눈물 닦아주세요.”



  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을 무척 부러워한다. 말은 자기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는 것으로

설득력, 상상력, 순발력이 있어야 잘 전달된다. 젊었을 때 ‘인생은 영업의 연속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았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고 능력 있는 전문가라도 혼자만 알고 잘 전달하지 못하면

헛된 것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물건을 살 때도, 판매자가 자기의 생각이나 계획을 설득하고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을 자신감 있게

말하면 나는 쉽게 샀다. 어느 순간 물건을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의 의지로 거래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요즘 세 살 손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봇물 터지듯이 뱉어낸다. 그런 모습을 보고 말하는 능력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말로 하는 것, 글로 쓰는 것,

몸으로 표현하는 것 등. 그중에서 말로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 나는 제일 부럽다.


  “할머니 꿀 주세요.”

  일곱 살 손녀는 하얀 절편에 꿀 찍어 먹는 것을 좋아했다. 처음 전통 무늬 모양  절편을 먹을 때

이 떡은 “옛날 선비들이 좋아했어. 부잣집 아이들은 꿀을 찍어 먹었지!” 뭐든지 잘 먹지 않는 손녀에게

그 이야기는 머릿속에 콕 박혔나 보다. 손녀는 꿀 찍은 절편을 동생 입에도 넣어준다. 순간 너무

아파 소리 없는 눈물이 손녀 얼굴에 흘러내렸다. 누나 손까지 깨물어버린 것이다.

누나가 아파서 눈물 흘리는 것을 본 유준이는 자기도 아프다며 영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오만상을 찌푸린다.

  “할머니, 나도 눈물 나요. 나도 아파요. 눈물 닦아주세요.”

 하며 울먹이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유준이는 둘째 아이 특유의 시샘과 모방이 탁월하다.

  자기가 불리하다 싶으면 울면서 “할머니, 꼭 안아주세요.”하고 달려들면 안아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일종의 회피 행동일까?’




  요즘 열감기가 심해서 둘째 손자가 어린이집을 일주일 동안 못 갔다. 우리 집에서 점심도 먹고

약도 먹고 잠도 자야 했다. 하필 올해처럼 더운 여름, 우리 집 에어컨이 고장이 나 한증막이 따로 없었다.

그땐 고장 난 줄도 모르고 바깥 날씨 탓만 했었다. 너무 더워 잠을 못 자고 자꾸 보채는 아이!

순간 눈앞에 있는 자기 엄마 아빠 결혼사진을 가리키며, “엄마 아빠 보고 싶어요.”하며 울먹인다.

자기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말을 이렇게 적절한 상황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뭉클했다.

아이들이 어떤 말을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서는 뇌가 잘 돌아가야 한다. 어른도 자기 생각을

말하고자 할 때 머릿속에서 빠르게 얼개를 짜야한다. 그때 상황 분위기를 파악하고

주제나 목적에 맞는 말을 해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떻겠는가?


  손자는 요즘 보는 족족 하고 싶은 말을 자기만의 언어로 툭툭 던진다.

오늘은 할머니네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보는 아저씨가 분리수거할 쓰레기를 한가득 안고 탔다.

그날따라 엘리베이터 안에 사람들로 가득 찼다.

  “아저씨 어디 가?”

  “쓰레기 버리러 가지!”

  “그다음에 어디 가?”

  “회사에 가겠지?”

  회사에 걸어서 가는지? 엄마처럼 차 타고 가는지, 아빠처럼 지하철 타고 가는지 다 물어봤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좁은 공간에서 손자는 지치지도 않고 할머니만 알아듣는 말투로 물었다.




  아이들한테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1년 전만 해도 이렇게 생각이 많은 아이가

자기 의사 표현을 제대로 못 해서 끄떡하면 맨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애를 태웠던 적이 있었다.

인지 능력과 언어 발달 속도의 차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시기였다. 세월이 흐르니 이렇게 말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 머릿속의 생각도 언어이고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언어도 생각이다.


말하는 것은 뇌 성장, 인지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적절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그만큼 상상력과 관찰력이 좋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충실하게 듣는 형으로 다른 사람 말에 귀 기울이고 잘 웃어주는 사람이다. 논리 정연하게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내 주장을 전달하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손자가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이들의 상상력과 배우는 능력은 끝이 없는 듯하다. “부모의 말이 아이의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킨다. 일상 어휘, 감정 어휘, 생각 어휘를 삶에서 실천하다 보면 부모의 말은 풍성해지고 아이의 사고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저자 김종원의 <부모의 어휘력> 중에서) 아이들이 자기 마음이나 감정을 표현하려는 모습을 보면 매 순간 감탄스럽다. 이런 시도를 계속 칭찬으로 북돋아 주고,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면 더 큰 성장을 할 것이다. 하지만 손자는 할머니의 제안이 자기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가차 없이 “아니야!”를 외치며 귀여운 상 남자 기질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부분 아이는 자연이나 풍경, 벌레나 꽃을 보고 궁금해서 질문을 자주 한다.

그런데 우리 유준이는 유독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보이는 사람에 관해 물어보는 것이 남다르다.

어린이집 하원할 때 마주치는 엄마 아빠 할머니들에게 인사하고 아는 체하느라 바쁜 선생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빨리 인사하고 헤어져야 다른 아이들 하원을 도와주는데 터덕거린다.

  그래도 인사 잘하고 사람을 알아보려는 관찰력과 표현력에는 찬사를 보낸다.


  사람이 대화의 상대를 찾는 건 살아 있는 한 줄곧 따라다니는 본성일지도 모른다.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 아이의 생각과 말이 조금씩 트이게 될 것이다.

  손자의 생각 주머니가 어떻게 생겼는지 활짝 열어보고 싶은 충동이 밀려온다.

우리 손주가 상황을 꿰뚫고 정확히 표현하는 능력은 할머니를 늘 놀라게 한다.

끝도없이 화수분처럼 생각을 쏟아내는 손자가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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