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딸은 갓 태어난 손녀의 손에 코를 대며 킁킁 냄새를 맡는다.
“엄마, 인간의 향기가 이렇게 가슴 설레게 할 수 있는 거야?
땀에 흠뻑 젖은 냄새도, 발에서 나는 쉰내도,
막 싸놓은 똥냄새까지도 이렇게 설레게 하네?
목욕 끝낸 후 촉촉한 볼때기의 촉감은 또 어떻고?
엄마!
향수나 몰약처럼 어디에 따로 담아놓을 수 있는 병 같은 게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먼 훗날 조심스럽게 꺼내보면 어떤 느낌일까요?”
“니 새끼니까 그~~렇~~게 이쁘고, 니 분신이니까 그~~렇~~게 설레는 거야!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출산할 수 있는 거래?”
탈무드에 “신이 도처에 갈 수 없어서 어머니를 세상에 보내셨대!
즉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생존과 관련된 신 같은 존재라는 것이지.”
나는 우리 딸이 그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흐뭇했다.
우리가 아바타라는 만화 영화를 3D 안경을 쓰고 봤을 때의 이상하지만 경이로움 같은 것?
딸은 손녀의 향기나 촉감을 3D를 넘어서 시각, 청각, 후각, 촉각을 총망라할 수 있는 4D로 만들고 싶어 했다. 먼 훗날 보관해 두었던 몰약을 꺼내 종종 만져도 보고, 냄새도 맡으며 손녀의 향기와 그때의 황홀함에
취하고 싶은가 보다.
내가 딸들 키울 때는 감히 누구에게 이런 얘기를 나눠본 적도 없었고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
몰라 날마다 허둥댔다. 밤새 보채는 아이를 끌어안고 눈물 흘리며 간절히 엄마를 그리워했던 때도 있었다.
엄마라는 존재 특히 딸들에게는 출산 경험을 공유할 수 있어서 더 특별한 관계다. 나에게도 엄연히
엄마가 계셨다. 그러나 대식구와 시부모님 모시는 엄마에게 전화로라도 맘 놓고 하소연해 볼
엄두도 못 냈다. 내 딸들 키우면서도 이런 감격스러운 일이 어찌 없었겠는가?
그때는 물리적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계신 부모가 나만의 부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 엄마도 여느 엄마들처럼 딸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고 애잔하게 생각은 하셨을 것이다.
그 당시 엄마들은 따뜻한 표현도 대놓고 할 줄 모르고 그렇게 할 마음의 여유도 없는 삶을 사셨다.
우리 세대에는 그렇게 살아왔고 그런 식으로 살아간다고 기대도 안 했다. 하지만 신비로운 황홀감에
빠져 육아하는 딸을 가까이서 지켜보니 친정엄마로서 무엇인가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것이 감사했다.
이렇게 자식들 가까이서 손주들 크는 모습 지켜보고 돌보면서 살아가는 것도 삶의 큰 이유가 될 것 같았다.
“하여튼 손녀가 허리 꼿꼿이 세우고 앉기만 해도.
거울 빤히 쳐다보다가 거울에 쿵쿵 찧어도.
유정아 부르면 엄마 쪽으로 살짝 얼굴만 돌려도 감동이잖아!
이렇게 하루하루 손녀 키우면서 앞으로도 쭈욱 재미 많이 느낄 것이야~~~.
그래서 손녀가 힘들어하고 보채도 행복 에너지가 빵빵하게 채워지겠지.
그 맛에 모든 힘듦을 헤쳐 나가겠지. 아기가 보채서 잠 못 자고 휘청거려도.
아팠을 때 마음 졸이며 밤새워 지켜볼 때도.
밥 제대로 안 먹어 속상할 때도, 모두 잊어버리고 살아간단다.
딸아! 오래도록 많이 많이 행복하여라!
네 엄마도 다 그렇게 너희 키운 거 알지?
네 엄니도 너희가 모두 성년이 되고, 결혼도 하고, 심지어 자식까지 두었어도,
항상 너희의 왕 팬이 되고 싶어 여전히 안달복달하는 거 보이지?”
무려 세 번이나 봤던 영화 <맘마미아>에서도 딸을 시집보내기 전날 밤, 엄마인 메릴 스트립은
딸 아만다 세이프 리드의 머리카락을 손가락 사이로 쓸어 넘긴다. 엄마의 눈가에 눈물이 아릿하게 번진다.
딸이 어린 시절 존재 이유만으로도 자기에게 무한한 기쁨을 주었던 장면을 회상한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흘러내리며’ <Slipping through my fingers> 노래가 잔잔하게 흘렀다.
딸을 키우면서 전율을 느꼈던 장면 하나하나를 열거해 가며 부르는 노래가 내 가슴에 먹먹하게 전해졌다.
혼자 키워낸 너무나 작았던 딸이 어느덧 결혼을 앞두고 자신을 떠나가는 엄마의 애틋함과 슬픔이었다.
딸에 대해 가장 많이 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머리카락처럼 세상으로
나가는 딸을 쓸쓸하게 미소 지으며 바라보는 엄마 모습. 그 장면이 너무 공감돼 눈이 시뻘게지도록
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하지만 요즘 우리 딸, 그때 딸이 주었던 향기에만 취해서 살기는 버거울 것이다.
6살 손녀는 공주병에 걸려 드레스가 평상복이 되었다. 가끔 유치원 갈 때도 아이보리색 웨딩드레스 같은
옷에 왕관까지 쓰고 등원했다. 당당한 딸과 달리 부끄러움은 항상 아빠 몫이었다. 손녀는 체육복 입고
가는 날을 제일 싫어했다. 유치원 다녀오면 바로 드레스로 갈아입고 TV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피곤하면 낮잠도 잤다.
드레스 액세서리인 면사포, 목걸이, 왕관을 사달라고 할 때는 엄청 욕심을 부렸다.
우리 딸은 그럴 때마다 어렸을 때 자기 모습이 불현듯 떠오르고 자기를 쏙 빼닮은 딸의 모습을 신기해했다.
그러면서 나를 쳐다보며 “엄마도 그때 힘들었지?”하며 생긋 웃는다.
날마다 놀이터에서 공주 드레스 입고 “나보다 더 아름다운 공주는 이 세상에 없다.”하며
우아한 몸짓으로 발레하고 노래도 열심히 불렀다.
놀이터에 있는 다른 엄마 아빠 할머니들을 흘깃흘깃 보며 춤출 수 있는 손녀의 용기가 가상하다.
그런 용기면 어떤 어려움도 꿋꿋하게 헤쳐 나갈 것 같은데......
손녀는 커가면서 또 다른 향기를 발산하여 엄마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아이들은 무한정으로
변하고 성장한다. 그 손녀가 어떤 식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커 갈지 부모도 선생님도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앞으로 손녀의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P.S : 4D 영화는 의자가 화면에 맞게 진동하거나 움직이고,
물, 바람, 안개, 폭풍, 냄새 등의 특수 효과가 제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