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Oct 24. 2023

손녀를 위한 동화책을 만들었다


 

 



  누군가 오롯이 나 한 사람만을 위한 책을 만들어줬다면 기분이 어떨까?

작은딸이 육아 휴직을 무사히 마치고 올 3월에 복직했다. 여섯 살 손녀와 천방지축 여기저기 툭툭 튀어 나가 제어가 속수무책인 세 살 손자. 처음 몇 개월은 손녀도, 손자도, 나도 적응 기간이었다. 특히 손녀는 자기 영역에 침범하는 것을 다분히 불편해하는 자율성이 강한 아이다. 그래서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 손녀를 생각만 해도 버거웠다. 처음 손녀는 할머니가 자기 집에 와서 엄마가 회사에 갔다고 오해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고 버릇없게 하니 혼꾸멍을 내야지 가만둔다며 수군거리는 것이 더 힘들었다. 내 생각을 말할 수 없는 벙어리처럼 냉가슴을 앓았다. 손주들 몰래 눈물을 훔치며 감정을 추스를 틈도 없이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상식적으로 생각한 대로 잘못된 점을 따끔히 훈육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게 하면 엄마도, 아빠도 갑자기 없어졌는데, 더 힘들어하고, 더 마음 다칠까 봐, 더 어긋날까 봐, 노심초사해서 아주 소극적으로 대했다. 뾰족한 방법이 없고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더 슬프고 힘들었다. 그렇게 꾹꾹 참아내며 두어 달은 지낸 듯하다. 어느 날 퇴근한 딸에게 내가 느끼는 손녀와 나 사이에 심각성을 털어놓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정이가 너무 어려서 그럴 거야. 좀 더 클 때까지 어른인 할머니가 기다리겠다.’라는 안심 메시지를 딸에게 다시 보냈다. 어머니는 딸 마음도 헤아려야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월요병처럼 다시 맞이할 손주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콩닥콩닥했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딸한테 “손녀는 감정도, 예절도 스토리나 동화책으로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러니 주말에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여러 번 얘기해주고, 실제로 연습도 해봐.”라는 당부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 정도로 내 마음과 감정은 복잡했고 심각했다. 

  딸은 주말 내내 “할머니는 소중한 사람이다. 

할머니한테 말도 공손하게 하고, 행동도 공손하게 해야 한다. 

할머니는 우리 딸이 가장 사랑하는 엄마의 엄마다. 나도 우리 엄마가 소중하고, 무지하게 사랑한다.”라고 열심히 알려주었다고 한다. 


  월요일 딸 집에서 주말에 딸이 손녀와 함께 만들어 놓은 스토리와 그림이 들어있는 미니 책을 발견했다. ‘유레카! 바로 이거다.’ 너무도 훌륭한 스토리와 손녀의 그림이 들어있는 소중한 보물을 발견한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할머니가 어른이니 참아보자. 손주들이 크면 나아지겠지.’라며 체념하고 있었다. 나는 놀이로 만들어 놓은 책에서 강렬한 희망의 빛을 발견했다. 그렇지, 눈물만 흘리며 손주들이 커가기를 바라는 소극적인 자세로 대처하면 안 되지. 



‘나, 너희 할머니는 정면 돌파 형이야!’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래 손녀와 딸이 만들어 놓은 이야기책을 이용해 동화책을 만들자. 그래서 같이 감정을 나눠보자. ‘아마도 엄마랑 만든 이야기와 자기 그림이 들어 있는 동화책을 보면 태도가 달라질지도 몰라. 마음의 빗장을 풀지도 몰라’하며 열심히 구상했다. 딸과 손녀가 이미 만들어 놓은 스토리가 짱짱해서 구성이 수월하게 짜여 질 것 같았다. ‘그 스토리와 손녀 그림에 할머니 이야기를 얹히기만 하면 되겠구나!’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고 마음이 환해졌다. 


  내 스토리도 넣고 딸과 손녀가 직접 만든 스토리와 그림을 여기저기 적당한 공간에 배치했다. 준비 과정만으로도 내 가슴속 우울을 견디게 해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신이 났고 힐링이 되었다. 그동안 힘들었던 우울감이 사라지는 듯했고, 진정되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오랜만에 책을 편집하려니 컴퓨터로 작업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편집하는데 여러 날이 걸렸다. 


  사실 딸한테는 내가 손주들한테 겪는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의 힘듦의 정도 10중 2~3 정도만 이야기했다. 다행히 사위가 두 손주를 등원시키고 출근한다. 내가 두 손주를 돌보는 시간은 단지 오후 4시간 정도이다. 시간상으로 그렇게 많지 않은데 엄마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야속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감정도 예절이나 태도처럼 학습이 된다고 생각한다. 

손주들과 나누는 사랑의 눈빛과 말씨, 표정은 특별하다. 특히 어린 아이들도 그런 것은 느낌으로 안다. 나부터 상냥하고 푸근한 말투와 표정을 온전히 사랑을 담아서 대해야겠다는 다짐이 섰다.


  “글을 쓰는 행위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아주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은 에너지를 ‘수동적’으로 ‘소모’하는 것에 가깝다. 그러나 글을 쓰는 행위는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창조’하는 쪽에 가깝다.” (정여울 작가의 끝까지 쓰는 용기.) 

이렇게 책을 만드니 나에게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있었구나! 

책을 만듦으로써 치유가 되다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할머니표 반찬으로 가득한 식판 사진, 엄마, 할머니, 이모가 함께 찍은 사진까지 넣어서 구체적으로 편집하니 책이 되었다. 손녀를 위한 책을 인쇄해서 실물로 직접 보니 묘한 충족감이 들었다. 손녀를 위한 책을 만들었으나 사실은 나를 위한 선물이 되었고 너무 기뻤다. 드디어 포토에세이 북 같은 방식으로 책을 인쇄했다. 내가 요리조리 머리 써가며 구상했던 순간이 아련히 떠올랐다. 이 책으로 손녀의 감정이 한 뼘이라도 커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일었다. 


  사실 손녀는 이 책을 읽고도 할머니가 생각하는 마음을 알기에는 어린 나이다. 

그 후 손녀의 마음에도 해빙기가 찾아온 걸까? 

얼음이 녹듯이 조금씩 할머니에 대한 감정이 변화되는 것이 읽혔다. 

며칠 전에 이 동화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내어 또박또박 읽어주었다. 


거의 끝날 무렵 손녀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엄마 생각이 나설까? 

아니면 진짜 할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느껴졌을까?’ 

‘왜 눈물이 났냐?’고 겁나서 차마 묻지 못했다. 지금도 그것이 궁금하다. 


  그래도 예전같이 버릇없이 말하고 행동하면 이젠 나도 전전긍긍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곧바로 잘못된 말투와 태도를 고치라고 손녀에게 당당하게 요구한다. 수정해서 다시 말하는 것을 시킬 수 있을 정도로 서로 마음이 통하는 상태가 되었다. 훈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과정 중에 있다. 바로 이점이 내가 능동적인 글쓰기를 통해 손녀와 밀고 당기기에서 얻어낸 결과물이다.




작가의 이전글 명절과 여자의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